공자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는 ‘도동’…서원건축 규범 완벽히 갖춘 곳

발행일 2017-11-21 20:19:5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3> 대구 도동서원

도동서원을 지키며 김굉필 선생의 뜻을 이어가는 후손이 있다.

달성군 현풍면에 있는 한훤당 고택은 김굉필 선생의 11대손 김정제 선생이 1779년 구지면 도동서원 옆에서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이 마을이 250여 년 동안 서흥 김씨 세거지 역할을 하고 있다. 도동서원에서 8㎞ 정도 떨어져 있다.

6ㆍ25때 일부 소실되기도 했으나, 1954년 중건해 현재 카페와 한옥스테이 공간으로 일부 리모델링됐다. 

이곳에는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종손 김병의(98) 어르신과 그의 아들 부부가 거주하며 도동서원을 지켜가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한훤당 김굉필 선생 차종손 김백용(74)씨를 만나러 한훤당 고택을 방문했다.

종손은 김병의 어른이지만, 아들인 차종손 김씨에게 그들 가족의 삶에 대해 들어보기로 했다. 

이 집안의 종부(차종손의 며느리)가 운영하는 한옥 카페에서 만난 김백용 차종손은 한눈에 딱 봐도 선비였다.

“한때 항해사가 되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세상 구경을 하는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고 밝힌 그는 “어릴적 꿈도 많았고, 넓은 세상으로 나가 마음대로 살고 싶었지만, 결국 모든 꿈을 접고 운명처럼 차종손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 항해사 되고자 그와 관련된 대학을 지원하려다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다. 집안 어르신들의 반대에 부딪혀 꿈을 접어야 했다.

종갓집 장손으로 태어나 종손으로 살아가야 하는 압박감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쳤지만, 결국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집안 어른들의 뜻에 따라 현풍고등학교에서 교사로 34년간 재직하다 2004년 교감으로 퇴직하고 나서 실질적인 문중을 이끌고 있다.

한 문중을 이끌어 간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란다. 

그는 “어머니의 삶은 무척 고단해 보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다가오는 제사와 집안 행사 때문에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고 한다.

1년 365일 고택과 서원을 방문하는 손님들 접대로 본인들 입에 들어가는 것조차 아껴 손님 상에 올려야 했다. 향상 손님이 먼저였다.

그는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고함을 지르거나 길거리에서 비틀거려 본적이 없었다”며 “‘누구 집 자손 이’란 이름표를 달고 다녔기에, 행여 집안 욕보일까봐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종손으로 살아가기에 겪는 중압감은 만만치 않다.

김백용 차종손은 “아들과 며느리에게 다급하게 하지 않는다”며 “때가 되면 스스로 자신들이 다가올 수 있도록 기다린다”고 말했다. 

아버지 김병의 어르신도 40대 중반에 할아버지의 병환으로 회사생활을 그만두고 종손으로서 역할을 하고자 종택으로 들어와야만 했다. 대를 이은 종손의 운명이다. 

김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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