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힐링로드]

문무왕 나라 안위에 한숨 쉬며 걷던 길…죽어서도 용이 되어 백성 지켰다네

<41> 토함산지구 ‘왕의 길’

2018.01.14

산책로 곳곳에 뿌리가 드러난 나무, 이상하게 꼬인 나무, 연리지 등의 나무들이 이색적인 모습을 연출한다.<br>
산책로 곳곳에 뿌리가 드러난 나무, 이상하게 꼬인 나무, 연리지 등의 나무들이 이색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경주 국립공원 토함산지구는 범위가 넓다.
역사문화자원 또한 풍부하다.
불국사, 석굴암, 기림사와 골굴사, 용연폭포와 왕의 길, 황룡동의 또 다른 황룡사지, 장항리의 5층 석탑, 무장봉 등 세계적인 문화유산들이 널려 있다.
국립공원 토함산지구는 역사문화기행에서 빠뜨릴 수 없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코스다.
추령 고갯마루에서 동북쪽으로 깊게 팬 계곡으로 들어가 모차골, 추원사, 수렛재, 불령봉표, 용연폭포, 기림사로 이어지는 약 6㎞ 산길이 신문왕이 걸었던 ‘왕의 길’로 소개되고 있다.
경주시가지의 문무왕탑지에서 추령재를 넘어 동해 문무왕릉까지 이어지는 왕의 길을 축소한 토함산판 왕의 길이다.
이 왕의 길은 문무왕과 신문왕이 넘었던 길이다.
마차가 다녔다는 모차골, 수레가 넘은 수렛재 등의 천년역사 흔적이 묻어나는 지명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왕이 손을 씻었다는 세수방, 옥대조각을 떼어 물에 놓으니 용이 되어 승천해 큰 소와 폭포가 되어버린 용연폭포 등의 전설을 간직한 곳도 있다.
조선시대 왕의 명령을 기록한 ‘불령봉표’ 내용의 한자가 선명하게 새겨진 바윗돌이 언덕에 누워 있어, 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선인들의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길이다.
오늘 비록 샐러리맨으로 살고 있지만, 가벼운 차림으로 왕이 넘었던 길을 걸으며 왕이 되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계절 따라 각양각색으로 변신하면서 걷는 이들마다 색다른 감흥을 느끼게 하는 ‘토함산 왕의 길’은 최고의 힐링 등산길이다.
 

◆왕의 길
왕의 길 6㎞를 이어가면서 나무계단, 흙 무너짐 방책 등의 구조물이 친환경적으로 설치 돼 있다.<br>
왕의 길 6㎞를 이어가면서 나무계단, 흙 무너짐 방책 등의 구조물이 친환경적으로 설치 돼 있다.
‘왕이 되고 싶다면 경주로 가라.’
경주 곳곳에는 왕이 걸었던 길이 널려 있다.
왕이 걸었던 길을 걸으며, 왕이 생각했던 바를 내가 생각하면서 왕이 되어보는 것이다.
왕이 되고자 걸었던, 왕이고자 했던 사람의 길, 왕이 되어 진정한 왕도를 생각하며 걸었던 신라의 길이 경주 곳곳에 깔렸다.

백성들의 안위를 생각하며 문무왕과 신문왕이 걸었던 토함산 추령재를 넘어가는 ‘왕의 길’은 마음을 울컥하게 하는 뜻이 깊은 길이다.

문무왕은 염원했던 삼국통일을 이루고, 줄기차게 백성들을 괴롭혀 왔던 왜구를 물리쳐 백성들의 평안을 도모하고자 추령재를 넘나들면서 동해안을 지키는 병참기지를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이를 이루지 못하고 영면에 들면서, 동해에 묻혀 왜구들의 침략을 봉쇄하기로 하고 용이 되었다.

경주시와 경주국립공원사무소가 안내하는 왕의 길 표지판은 경주 시가지의 반월성과 안압지에서부터 능지탑을 지나 추령재, 모차골, 세수방, 용연폭포, 기림사, 감은사지와 이견대, 문무왕릉까지를 간단한 지명표지로 지도를 그려두었다.

또 지도와 함께 ‘왕의 길은 신라의 시작부터 조선후기에 이르기까지 감포와 경주, 장기와 경주를 이어주던 길이다.
이 길은 사람과 문화를 이어주던 곳이지만, 왜구가 침략하던 주된 통로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길에는 많은 이야기가 전한다.

특히, 이 길은 용성국의 왕자인 석탈해가 신라로 잠입했던 길이며,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의 장례행차 길이며, 용이 된 부왕인 문무왕에게 신라의 보배인 옥대와 만파식적을 얻고자 신문왕이 행차했던 길이기도 하다.
이 길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것은 왕과 용, 그리고 광명과 피리이다.
이처럼 용이 왕이 되고, 왕이 용이 되어 광명으로 나라를 밝히던 길, 신라 시작을 누천년에 이어가기 위해 미래의 비전을 모색하던 길이 바로 이곳이다 라는 신상구의 글을 표지판에 적어 두었다.
추령재에서 기림사까지 이어지는 신문왕 호국행차 길을 안내한 표지판이 모차골과 기림사 뒤편 계곡 입구에 설치돼 있다.<br>
추령재에서 기림사까지 이어지는 신문왕 호국행차 길을 안내한 표지판이 모차골과 기림사 뒤편 계곡 입구에 설치돼 있다.

추령재에서 가파른 고갯길을 버리고 마차가 다니기 편한 등고선을 따라 계곡으로 접어들면, 민가가 듬성듬성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왕의 길’ 안내 표지판을 따라 마을 안길로 들어가면 추원사가 보이고 제법 깊숙한 계곡까지 마을이 형성돼 있으며, 큼직한 입간판을 세운 식당과 펜션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 ‘왕의 길’ 시작을 알리는 입간판이 서 있다.
모차골에서 시작해 추원사, 수렛재, 세수방, 숯 가마터, 불령봉표, 용연폭포를 지나 기림사에 이르기 직전 계곡에서 ‘왕의 길’ 끝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기림사 주차장에서 추령재 입구 주차장까지는 대략 6㎞ 거리다.
왕복하려면 12㎞ 거리로 편한 걸음으로 4시간은 잡아야 한다.
기림사 내부의 보물과 이야깃거리를 찾는 시간은 따로 계산해야 한다.


◆지명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과거의 흔적은 우리가 듣고 말하는 지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왕의 길을 오가면서 보이는 지명과 유적은 조상들의 생각과 생활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흔적으로 소중한 문화자산임이 틀림없다.

△모차골: 마차가 다니던 곳이라 하여 ‘마차골’로 불리다가 모차골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에서 동해로 이르는 빠른 길은 추령재를 바로 넘는 일이다.
워낙 재가 높고 가팔라서 마차와 수레는 등고선을 따라 마차골로 우회하는 길을 택했던 것 같다.

△수렛재: 수레가 넘어다녔던 고개라는 의미로 이름이 붙은 고개다.
좁은 등산길 좌우로 능선과 계곡이 아찔하게 이어지는 곳이 많다.

△말구부리: 추령재 높은 고개를 피해 비교적 평평한 지역으로 돌아 길을 냈지만, 비탈길에 수레를 끌던 말들이 구부러졌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
△세수방: 신문왕 일행이 긴 여정에 쉬면서 손을 씻었던 개울에 붙여진 이름. 겨울에는 낙엽이 계곡을 덮어 물은 보이지 않지만, 물소리가 음악처럼 흐르기도 한다.

△숯가마: 신라시대에서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최근까지 숯을 만들었던 곳으로 짐작되는 흔적이 남아 있다.

△용연폭포: 신문왕이 받은 옥대의 용 장식 하나를 떼어 물에 담그자 진짜 용이 되어 승천하고 깊은 연못과 폭포가 생겨나 이름이 붙은 폭포.
모차골로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머리 위로 훌쩍 키 높은 나무들이 양팔을 벌려 하늘을 받치고 있다.
겨울바람이 지나는 소리가 들린다.
멀리서부터 엄청난 수의 매미가 동시에 우는 소리처럼 우∼우∼웅 거리며 바람이 머리 위를 붕붕 날아가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계곡에는 낙엽들이 무릎까지 쌓였다.
마치 갈색비단을 깔아둔 듯한 낙엽더미가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낙엽 아래 불규칙하게 깔린 돌들의 함정을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이색적인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등산길로 강력히 추천한다.


◆옥대에서 용이 날다
용연폭포는 기림사에서 1㎞ 남짓 되는 거리로 사계절 산책하기에 딱 좋은 코스다.
기림사를 두루 둘러보고, 명부전 앞 오래된 감나무가 있는 길을 따라 돌아가면 산책로가 이어진다.
길섶에는 기림사에서 재배하는 차나무들이 겨울인데도 파릇함을 유지하고 있다.
잎 하나 뚝 따서 입에 넣고 싶을 만큼 싱싱하다.

제법 계곡이 깊어지면서 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엄습해 오는 길. 활엽수들이 소나무를 에워싸고 늘어서서 가을이면 단풍이 물들어 아름다운 길. 굵은 바위들이 낯익은 풍경을 만들고 낙엽에 묻힌 계곡을 따라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왕이 걸었던 역사의 길이다.

용연폭포 일대에는 ‘둑중개’라는 멸종위기 2급의 민물고기가 서식하고 있다.
경주국립공원사무소는 용연폭포 일대를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중요한 자연자원 보호를 당부하고 있다.
둑중개는 냉수성 어류다.
물이 맑고 여름에도 수온이 20도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는 하천의 상류에 주로 서식한다.
돌 밑에 잘 숨으며 수서곤충을 먹고산다.
3월에서 4월에 돌 밑에 알을 낳아 수컷이 이를 보호한다.
한국의 고유어종이면서 기후 변화에 민감한 종으로 산림벌채와 수질오염 때문에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어 보호어종으로 지정됐다.

용연폭포는 4∼5년 전까지만 해도 호수가 깊고 유역면적이 꽤 넓어 여름에는 물이 떨어지는 소리와 산개하는 물안개로 찾는 사람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지금은 태풍 등으로 퇴적물이 쌓여 폭포의 수역이 급격하게 좁혀들어 그 위엄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주변을 에워싼 암벽과 풍광이 선경으로 느낄 수 있도록 아름답기는 여전하다.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과 김유신 장군으로부터 만파식적과 옥대를 받아 환궁하는 길에 기림사를 지나 계곡에서 쉬게 되었다.
이때 세자가 옥대의 용문양 조각은 그냥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용이라고 말했다.
신문왕이 두 번째 용문양 장식을 떼어 물에 놓자, 용이 되어 승천하면서 폭포가 생겨났다는 전설이 용연폭포와 함께 전해지고 있다.
용의 승천하는 몸부림 같은 물줄기는 가늘고 약해졌다.
폭포도 갈수록 위엄을 잃어가고 있다.
친절하게 데크를 설치해 폭포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했지만, 신비감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불령봉표

불령봉표(佛嶺封標). 용연폭포에서는 1㎞, 모차골에서는 3㎞ 지점에 있는 글이 새겨진 아름드리 바위다.
표석의 주소는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불령고개이다.
가로 1.2m, 세로 1.5m의 화강석이다.
바위 표면에 ‘연경묘 향탄산인 계하 불령봉표(延慶墓 香炭山因 啓下 佛嶺封標)’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조선시대 순조 31년 1831년 10월에 세운 것이다.
조선 23대 임금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를 모신 연경(효명세자의 묘호)묘의 봉제사와 그에 따른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숯을 만드는 산이니 일반인이 나무를 베는 일을 금지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불령고개 일대는 조선시대 고급 숯인 백탄(白炭)의 생산지로 전해지고 있다.
백탄을 만들기 위해선 나무가 많이 필요했으므로, 벌채를 막고자 봉표를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불령표석 주변에 숯 가마터 흔적이 남아 있다.

불령봉표는 신라시대에 이어 조선시대 역사의 산물로 보존대책이 필요하다.
깊은 산 속이라 분실될까 걱정스럽다.
장정이라면 지게에 얹어 누구나 너끈하게 들고 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다.
문화재, 기념물, 지방유형문화재 등으로 지정해 유실되거나 훼손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
조선시대 문화와 생각들이 고스란히 담긴 표석이 이렇게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주말이든 휴가를 내어서든 왕의 길을 걷는다면, 답답하게 막혔던 가슴도 시원하게 뚫리게 하는 힐링로드로 엄지 척이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