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왕 나라 안위에 한숨 쉬며 걷던 길…죽어서도 용이 되어 백성 지켰다네

발행일 2018-01-14 20:04:06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41> 토함산지구 ‘왕의 길’

용연폭포는 기림사에서 1㎞ 남짓 되는 거리로 사계절 산책하기에 딱 좋은 코스다. 기림사를 두루 둘러보고, 명부전 앞 오래된 감나무가 있는 길을 따라 돌아가면 산책로가 이어진다. 길섶에는 기림사에서 재배하는 차나무들이 겨울인데도 파릇함을 유지하고 있다. 잎 하나 뚝 따서 입에 넣고 싶을 만큼 싱싱하다.

제법 계곡이 깊어지면서 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엄습해 오는 길. 활엽수들이 소나무를 에워싸고 늘어서서 가을이면 단풍이 물들어 아름다운 길. 굵은 바위들이 낯익은 풍경을 만들고 낙엽에 묻힌 계곡을 따라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왕이 걸었던 역사의 길이다.

용연폭포 일대에는 ‘둑중개’라는 멸종위기 2급의 민물고기가 서식하고 있다. 경주국립공원사무소는 용연폭포 일대를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중요한 자연자원 보호를 당부하고 있다. 둑중개는 냉수성 어류다. 물이 맑고 여름에도 수온이 20도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는 하천의 상류에 주로 서식한다. 돌 밑에 잘 숨으며 수서곤충을 먹고산다. 3월에서 4월에 돌 밑에 알을 낳아 수컷이 이를 보호한다. 한국의 고유어종이면서 기후 변화에 민감한 종으로 산림벌채와 수질오염 때문에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어 보호어종으로 지정됐다.

용연폭포는 4∼5년 전까지만 해도 호수가 깊고 유역면적이 꽤 넓어 여름에는 물이 떨어지는 소리와 산개하는 물안개로 찾는 사람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지금은 태풍 등으로 퇴적물이 쌓여 폭포의 수역이 급격하게 좁혀들어 그 위엄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주변을 에워싼 암벽과 풍광이 선경으로 느낄 수 있도록 아름답기는 여전하다.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과 김유신 장군으로부터 만파식적과 옥대를 받아 환궁하는 길에 기림사를 지나 계곡에서 쉬게 되었다. 이때 세자가 옥대의 용문양 조각은 그냥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용이라고 말했다. 신문왕이 두 번째 용문양 장식을 떼어 물에 놓자, 용이 되어 승천하면서 폭포가 생겨났다는 전설이 용연폭포와 함께 전해지고 있다. 용의 승천하는 몸부림 같은 물줄기는 가늘고 약해졌다. 폭포도 갈수록 위엄을 잃어가고 있다. 친절하게 데크를 설치해 폭포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했지만, 신비감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불령봉표

불령봉표(佛嶺封標). 용연폭포에서는 1㎞, 모차골에서는 3㎞ 지점에 있는 글이 새겨진 아름드리 바위다. 표석의 주소는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불령고개이다. 가로 1.2m, 세로 1.5m의 화강석이다. 바위 표면에 ‘연경묘 향탄산인 계하 불령봉표(延慶墓 香炭山因 啓下 佛嶺封標)’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조선시대 순조 31년 1831년 10월에 세운 것이다. 조선 23대 임금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를 모신 연경(효명세자의 묘호)묘의 봉제사와 그에 따른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숯을 만드는 산이니 일반인이 나무를 베는 일을 금지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불령고개 일대는 조선시대 고급 숯인 백탄(白炭)의 생산지로 전해지고 있다. 백탄을 만들기 위해선 나무가 많이 필요했으므로, 벌채를 막고자 봉표를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불령표석 주변에 숯 가마터 흔적이 남아 있다.

불령봉표는 신라시대에 이어 조선시대 역사의 산물로 보존대책이 필요하다. 깊은 산 속이라 분실될까 걱정스럽다. 장정이라면 지게에 얹어 누구나 너끈하게 들고 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다. 문화재, 기념물, 지방유형문화재 등으로 지정해 유실되거나 훼손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 조선시대 문화와 생각들이 고스란히 담긴 표석이 이렇게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주말이든 휴가를 내어서든 왕의 길을 걷는다면, 답답하게 막혔던 가슴도 시원하게 뚫리게 하는 힐링로드로 엄지 척이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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