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체가 ‘죽계별곡’의 산실…아홉 굽이 흐르는 물 마치 노랫소리 같구나

발행일 2015-06-30 01: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25> 영주 순흥, 죽계구곡



“붉은 살구꽃 어지러이 날리고, 향긋한 풀 우거질 땐 술잔을 기울이고/ 화려한 누각 고요하면 거문고 위로 부는 여름의 훈풍/ 노란 국화 빨간 단풍이 산을 수놓은 듯하고, 기러기 날아간 뒤에/ 아, 눈빛 달빛 어우러지는 모습 그 어떠합니까”

고려 후기의 문인 근재 안축이 지은 유명한 죽계별곡 가운데 5장 부분이다. 이 경기체가는 무신들과 권문세족에 억눌려 있던 신진사대부 계층이 창작한 운문 장르이다.

평민이 부르던 고려속요와 다르게 귀족계급에 의해 불리어진 시가로, 현실도피적 생활에서 오는 풍류적 표현으로 나타났다. 이 노래를 지은 안축은 소백산 동쪽 영주 순흥에서 태어났다. 문과에 급제하고 영주지역에서 세력기반을 가지고 중앙에 진출한 신흥사대부의 한 사람이 되었다. 1340년경 상주목사가 되어 고향을 방문했을 때 소백산 죽계지역을 중심으로 주옥같은 시가를 지었으므로 죽계별곡이 되었다. 이 노래 가사는 그의 저서 ‘근재집’에 수록되어 전해진다.

“죽령 남쪽 안동 북쪽 소백산 앞에/ 흥망은 끝없으나 풍류롭게 살아 온 순흥성/ 어느 땐지 취화봉에 왕의 태를 묻었다네/ 위, 중흥을 이룩하는 경긔 엇더하니잇고/ 옛날 벼슬아치 한가롭게 사는 정자/ 위, 산 좋고 물 맑은 경긔 엇더하니잇고”

이처럼 제1장은 소백산 국망봉 기슭에서 발원하여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죽계천을 배경으로 표현하고 있다. 제2장은 누ㆍ정자 위에서 유흥하는 모습을, 제3장은 향교에서 공자를 따르는 무리들이 봄에는 경서를 외고 여름에는 현을 뜯는 모습을, 제4장은 천 리 밖에서 그리워하는 모습을, 제5장은 태평을 길이 즐기는 모습을 각각 노래함으로써, 고려 신흥사대부의 의욕에 넘치는 생활감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시가는 경기체가의 효시로 일컬어지고 있다. 작자와 창작시기가 비교적 분명하며 문자로 일찍 정착되었다는 면에서 문학사적 위상 정립에 귀중한 자료이다.

 

◆망국의 ‘한’을 간직한 국망봉

 

명작의 산실이 된 죽계천은 예로부터 그곳의 자연을 탐하러 들어선 이가 여럿이다. 창작을 위한 안축의 방문이 있었고 풍기군수 주세붕과 퇴계 이황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에 앞서 소백산을 오른 이는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였다. 그는 고려에 항복을 거부하고 금강산으로 향하던 중 이곳에 들러 슬피 울었다 전해진다. 그 장소가 바로 나라를 바라본다는 의미의 이름을 지닌 봉우리인 국망봉이 된 것이다.

의상 스님도 일찍이 이곳에서 부석사 창건의 구상을 했다고 한다. 퇴계 이황 선생이 찾아왔을 때, 절경에 심취하여 그 물 흐르는 소리가 노랫소리 같다하여 아홉 굽이 계곡 명소마다 이름을 지어 죽계구곡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영조 4년 순흥부사 신필하가 이 계곡의 경치 중 뛰어난 아홉 곳을 가리켜 이름을 짓고 바위에 글자를 써서 새겼다고 순흥지에 전한다.

영주 순흥읍 동편에서 소수서원을 거쳐 배점과 초암사에 이르는 계곡을 죽계라 하고, 죽계구곡은 초암사 앞의 제1곡으로부터 따라 내려가면서 약 2.5㎞ 사이에 위치한 아홉 구비의 절경에 붙여진 이름이다. 일찍이 이 길에서 안향과 안축의 문학이 이뤄졌고 주세붕과 이황의 학문이 완성됐으니. 조선 유학자들이 선현들의 자취 따라 가장 걷고 싶어 했던 순례길이었을 것이다.

나뭇잎 사이사이로 비치는 싱그러운 햇살 아래 역사, 문화, 환경이 어우러진 죽계구곡을 따라 소백산 자락길을 걸어보기로 한다. 차로 오를 수도 있지만 계곡의 절경을 자세히 보려면 걸어야 제 맛이다.

위로 올라가면 초암사 아래 국립공원사무소에서 설치한 유료주차장이 있으나 시작점인 9곡에 가까운 배점분교 넓은 운동장에 차를 둔다. 과수원 옆길을 조금 산책하면 9곡 이화동이라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과거에 배꽃이 주변에 많았으나 지금은 대부분이 사과밭이고 시멘트 축대도 보인다.

조금 더 가다보면 우측에 물 위를 거슬러 오르는 것 같은 거북바위가 있다. 지역 전설에 따르면 이 바위는 남해 용왕의 아들이었는데 낙동강 물길에 상서로운 기운을 느낀 용왕의 명령을 받고 그 기운의 원인을 알기 위해 이곳에 이르렀다. 인간에게 마음을 빼앗기면 큰일 난다는 다짐도 받았으나 늙은 아버지를 위해 밤늦도록 돌다리를 놓는 효성 어린 젊은이에게 감복하여 눈물을 흘리다가 그만 거북형상의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낙동강이 시작되는 국망봉까지 가지 못한 거북이는 그곳을 바라보며 아직도 그대로 있는데 이 거북의 눈물을 몰래 닦아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주민들은 여기에서 치성을 드린다고 한다.

 

◆초암사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보로 지정 

 

계곡 옆을 걸으면서도 물소리만 요란하고 정작 경치는 잘 보이지 않는다. 무성하게 자란 넝쿨들이 시야를 가리기 때문이다. 조금 더 올라가니 나무데크를 따라 계곡을 건너게 되고 본격적으로 소백산 자락길로 접어든다. 시멘트 포장길을 떠나 완만한 오솔길 같은 등산로가 이어진다. 녹음이 우거진 청정계곡 바로 옆으로 난 길이다. 워낙 큰 소백산에서 품고 있었던 물이 흘러내리니 가뭄의 계절임을 잊을 정도로 수량도 풍성하다.

계곡으로 내려가 그곳에 주저앉아 발 담그고 탁족놀이라도 하고 싶지만 상수도보호구역이라 눈으로 보고 물소리를 귀로 듣는 힐링으로 만족해야 한다.



글ㆍ사진=박순국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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