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 적삼 걸친 목조각장 자신과 닮은 불상 어루만지며 “세월 가는대로 흐르듯 왔지요”

발행일 2018-11-06 20:14:06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33> 영천 목불 명장 조병현

올해 10월 경북무형문화재 제405호로 지정된 조병현 목불명장은 1970년 목조각에 처음 입문해 40여 년간 불교조각과 후진양성에 힘쓰고 있다.

조 명장 작품은 전체적으로 균형미가 뛰어난 조선시대 불상의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무열 기자 lmy4532@idaegu.com


 
하얀 천으로 몸을 감싼채 연꽃을 쥐고 있는 관세음보살상.


영천시 청통면 새학길 62. 지난 10월18일 경북무형문화재 제405호로 지정 받은 목조각장 조병현의 집이다.

문패는 물론 공방을 알리는 현판이나 길을 안내하는 입간판마저 따로 없다. 마을사람들에게 수소문하여 찾아간 그 집 앞에 이르자 순간 발걸음이 머뭇거려진다.

불그레하게 물든 담쟁이덩굴과 활짝 피어난 보랏빛 나팔꽃 줄기로 뒤덮인 지붕과 벽이 동굴을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마을 동쪽 끝자락에 선 이 동굴 같은 50평짜리 한 칸이 목조각장 조병현의 공방이자 살림집이다.

◆나무토막의 변신, 그 재미를 좇아 50년

지옥에서 고통 받은 중생들을 구원하는 지장보살 목조각.


공방 한쪽 끝에 28번째 보리달마(달마대사)가 자리 잡고 있다.
공방이 어지럽다. 크고 작은 나무토막과 전기톱을 비롯한 다양한 공구들 그리고 겨울 화로와 깎아내린 나무의 속살들.

나무에서 풍겨나는 목향이 방안의 너즈레함을 덮어준다. 완성된 두어 개의 목조각 불상이 눈에 띈다.

짙은 갈색 적삼을 걸치고 평상에 선 달마대사의 길게 늘어뜨린 법의에 옷주름이 선명하다.

그리고 채색되지 않은 나한불 목각 하나가 그 옆에서 새로 조각하고 있는 조병현의 손놀림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다.

목조각장 조병현은 파내던 칼질을 멈추고 찾아든 방문객에게 둥글게 자른 통나무 둥치를 내밀면서 앉으라 권한다.

“지금 조각하고 있는 것도 불상입니까?”

“네, 그렇고 말고요. 나는 불상 이외에 다른 조각은 할 줄 모릅니다.”

명장은 어슴프레 윤곽이 드러난 불상의 머리 부분을 쓰다듬어면서 단호하게 말한다.

구렛나루로 얼굴을 온통 뒤덮은 초로의 조 명장, 그는 자신을 닮은 듯한 얼굴선의 불상을 놀이감처럼 만지고 깎으며 마음에 담은 형상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미소가 닮았어요. 조 명장님의 분신인 듯도 하고….”

“글쎄요. 나는 오로지 조선 후기 불상 조각 양식을 이어나가면서 동시에 나 자신의 고유한 예술 의지를 키워나가는데 만족합니다.”

조 명장은 말을 아끼 듯 아니면 방문자의 말문을 막으려는 듯 한 마디 덧붙인다.

“별 이유는 없지만 그저 인연따라 긴 세월 그렇게 살아온 것이지요.”

소년 병현은 맏형이 너무나 부러웠다. 경기도 양평, 두메산골에서 태어난 그에게는 별다른 놀이감이 없었다. 그래서 헛간채 밖에 땔감으로 널부러진 장작개비를 채곡채곡 쌓았다 허물었다 하면서 놀았다.

그러다 톱으로 썰어보기도 하고 자귀로 나무 속을 홈처럼 파 보기도 하였다. 가지런하게 포개어 올린 장작더미는 마치 흙담을 쌓은 둣 매끈하였고, 톱으로 켠 나무 토막은 일정하게 잘라 놓은 절편 같았다.

형은 톱과 끌 등 몇 개의 연장으로 무엇이든 잘도 만들어냈다. 지게며 함지며….

형이 만든 것들은 모두 농가에서 편리하게 사용되는 물건이 되었다. 한번은 적절하게 마른 소나무를 잘라 속을 파내고 다듬어 마치 큰 박을 갈라놓은 듯이 알곡을 담을 수 있는 매끈한 나무 바가지를 뚝딱 만들어냈다.

아궁이에서 재가 되고 말 어줍잖은 나무 토막들이지만 형의 손을 거치면서 변신한 그 모습들이 어린 병현의 마음을 현묘하게 끌어 당겼기에 병현도 눈만 뜨면 나무토막을 만지고 놀았다.

“얘들아, 너희는 타고 난 손재주가 있나보다.”

“어머니, 병현이는 어리지만 저보다 더 잘 합니다.”

“그래, 둘다 솜씨가 좋구나!!”

병현의 형은 다만 겸양과 칭찬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나무토막에 대패질과 끌질을 하는 자신을 어깨너머로 보고 익힌 병현이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던 터이다.

나무를 켜고 쪼개고, 깎고 결을 파내는 일에 몰두하던 형을 따라 병현은 자신도 모르게 마치 화가의 모사 단계처럼 그렇게 초보 과정을 밟게 된 것이다.

“비릿하면서 향긋한 내음과 따뜻하고 촉촉한 질감을 주는 나무 위에 내 손길이 모아지면 순간 하나의 쓰임새 있는 물건으로 바뀝니다. 나는 그 변신이 끌어당기는 호기심에서 도망쳐 나오지를 못했지요. 나무를 만지는 일은 어린 내가 폭 빠질 만큼 재미가 있었습니다. 중학교를 가야할 나이가 되었지만 공부는 뒷전으로 멀리 밀쳐버리고 말았지요.”

그러다 열다섯 살이 된 병현에게 아주 특별한 기회가 주어졌다.

서울에서 이름 난 목공장인 김성수 선생(타계·노년까지 목조각 교육에 헌신)이 양평으로 내려와 목공 학원을 낸 것이다. 병현은 중학교 진학 대신 그 목공학원을 찾아 목조각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목불상의 태줄받이, 명장의 손목

나팔꽃 줄기로 뒤덮인 지붕과 벽이 동굴을 연상케 하는 조병현 목불명장의 공방. 작업실 입구에는 문패는 물론 공방을 알리는 현판이나 입간판 하나 없다.


조각은 오로지 손으로 한다. 명장은 손을 혹사(?)시킨다고 해야 옳다.

그러나 그의 손은 목불상을 받아내는 태받이 손이기에 신비롭고도 숭고하다. 불상을 탄생시키는 생명의 손이라 할 만하다.

조병현 명장의 손바닥엔 차돌처럼 단단한 굳은살이 깊게 배어있다. 50여 년 동안 끌과 조각칼을 잡은 아름다운 흔적이요 훈장이리라.

명장의 손놀림은 쉼이 없다. 원목은 큰 톱으로 켠다. 그후 잘라 낸 나무토막의 쓰임새를 재단하고는 다시 작은 톱으로 켠다.

그리고 여러 가지 모양의 끌과 조각칼로 나무결을 밀고 당겨서 각(角)을 없앤다. 그것이 조각의 시작이요 끝이기도 하다. 사포질을 하듯이 칼로써 불상의 몸매를 매끈하고 부드럽게 다듬어 나가는 것이다.

조병현 명장은 늘 현재의 순간이 곧 시작이라 한다.

“문화재로 지정된 만큼 이제부터 나만의 세계를 더 천착해 나가야지요.”

“명장이 추구하는 ‘나만의 세계’를 한번 엿들어 봐도 될까요?”

“사실 초심자일 때는 하나의 목불상에 온갖 것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불상이 걸친 옷의 주름과 매듭의 정교함은 물론이고 다양한 수인(手印:불상의 손의 모양)을 섬세하게 표현하려고 기교를 부렸지요. 한 각 한 각을 뜨내는 데 숨가쁘게 매달렸습니다. 이제는 그것이 훨씬 단순해졌습니다. 선이 굵어졌다 할까요, 각의 숨을 느리게한다 할까요. 나의 귀착점은 곧 조선불을 조각하는 것입니다. 조선불상은 장식이 화려하지 않고 표정도 그리 환하지 않지만 그 수수함과 소박함에서 오히려 친근함을 느끼게 합니다. 예컨대, 법의의 주름 넓이라든가 채색의 단조로움 그리고 미소를 잃지 않고 현세를 극복해 나가는 단순하고도 강인한 겉모습이 그러합니다. 기교가 없는 것이 매력이지요. 나는 끊임없이 그런 불상을 내 조각칼로 다듬어 내고 싶습니다.”

조각칼을 잡을 때마다 조명장은 붓다의 거룩한 얼굴을 시대상황에 맞게 재현해보리라 다짐한다. 둥글고 밋밋하지만 턱과 빰에 약간 살이 오른 얼굴 형상에 눈은 반쯤 떠서 코끝을 보는 상태로 하고 눈꼬리가 길게 치켜 올라가게 조형한다.

입은 콧망울보다 조금 넓게 표현하면서 꼭 다문 모습으로 그리고 양쪽 입술은 살짝 올려 미소가 있는 듯 없는 듯한 표정을 만들어 낸다.

그는 밑그림이 없는 목조각을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모습이 드러날 때까지 밀고 당기는 칼질을 멈추지 않는다.

불상에는 시대정신과 부처님을 향한 백성들의 간절한 마음이 투영되기에 더욱 정성을 들인다.

이렇게 불상을 고집하는 조 명장의 조각 세계이지만 한 곳에 머물러 있다거나 자기만족으로 정체되고 있지는 않았다.

그는 맥주캔 같은 향긋한 나무 조각통 한 개를 집어 들어 보이며 “감실불(龕室佛)입니다”하고 내민다.

20㎝ 높이에 지름이 70㎝ 정도의 원형의 전단나무 통을 열자 고유한 나무향이 풍겨났다. 촘촘하게 목불이 새겨진 세폭병풍 양식이다.

가운데 약사여래불을 비롯하여 좌우에 10대 제자불과 12위의 신장불을 새기고 법당 내의 풍경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여래불과 보살 그리고 나한들의 표정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장신구이다. 감실불은 그 섬세한 조각미가 으뜸이지만 실용성도 빠지지 않는다.

바랑이나 핸드백에 넣어 휴대하기에 알맞은 크기의 감실불은 산승이나 재가 불자들이 여행할 때 사용하는 휴대불이기도 하다.

조각의 이력이 깊어갈수록 단순미를 좇는다고 하던 조 명장의 작품세계와 전혀 다른 양식을 만나게 된 것이기도 하다. 정체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명장의 면면을 볼수 있었다.

다듬다 만 불상 앞에 다시 앉은 조 명장은, 영조시대 도화서의 화원이자 스님이던 의겸에서 비롯된 조선불화의 맥을 김일섭과 임석정 스님이 이어갔고 그리고 자신이 사숙한 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 송헌 전기만이 그 뒤를 이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송헌의 수제자이자 현재 전수조교로 있는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행복하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후계자를 기르고 싶다던 그에게 곧 인연이 닿는 젊은이가 찾아 들 것이라 기원해 주며 하직인사를 나누었다. 공방문을 나서는 방문자의 등 뒤로 유정 조병현 명장의 초승달 같이 굽은 조각칼 미는 소리가 들렸다.

자연스럽게 건조된 나무살을 깎아내는 소리가 마치 단감을 깎는 소리인냥 정겹기 그지 없다.

김정식 대마문화콘텐츠연구소장 ■ 이 기사는 경상북도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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