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사라진 궁궐의 흔적에 상상력 자극…밤이면 셔터소리 흘러넘치는 야경의 유혹

발행일 2017-03-26 19:34:1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4> 월성과 동궁

월지 둘레로 이어진 산책로는 이색적인 풍경과 다양한 볼거리로 인기다. 산책로 동쪽의 대나무숲길.
동궁과 월지는 특히 조명이 만들어내는 황홀한 야경으로 방문객들이 사철 붐빈다. 연못에 비치는 동궁의 기둥과 서까래, 기와는 물론 조경수 가지 하나하나까지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면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절묘한 풍경을 연출한다. 건물의 연한 푸른색을 띠는 비취빛 조명이 물속에서 어른거려 곳곳에서 터지는 감탄사와 카메라 셔터소리가 밤공기를 진동한다. 누구를 초대해도 실망하거나 책망을 듣지 않는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힐링의 명소다.

동궁과 월지는 문무왕이 건축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등의 역사서에 전한다.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하고 나라의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스레 비대해지는 나라를 다스리는 조직을 수용하기 위해 궁궐을 확장해야 하는 입장에서 동궁과 월지를 축조했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신라시대 별궁의 기능을 하는 여러 건물을 짓고, 인공적으로 조성한 연못과 동산을 조성해 화초를 심고 희귀한 새와 기이한 짐승을 길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궁과 월지는 연인과 손을 잡고 사랑이야기 나누며 천천히 걸어도 1시간이면 이미 처음 출발했던 곳에 이르게 된다. 다정하게 친구나 연인의 어깨에 걸었던 팔은 금방금방 자연스럽게 풀린다. 곳곳에 펼쳐지는 절경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 유혹이 더욱 크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부터 오리와 기러기가 날아들어 안압지로 불렸던 월지는 1975년 발굴과정에서 동궁과 월지로 불렸던 기록이 드러나면서 이름이 바뀌었다. 신라시대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는 유물 3만여 점이 발굴되면서 당시 문화를 추정하는 단서가 되고 있다.

동궁과 월지는 삼국통일 이후 최초로 건축된 구조물이다. 고구려의 성벽 쌓는 기술과 백제의 아기자기한 정원예술이 동원된 통일신라시대 종합예술작품으로 현시대에도 따라잡기 어려운 기술과 예술성이 곳곳에 노출되고 있다. 인공으로 조성한 연못 월지는 남북의 길이는 200m 남짓하고 둘레의 거리 또한 1㎞ 정도이지만 바다를 연상케 할 정도로 오묘하게 설계됐다. 어느 지점에서 보아도 연못의 전체를 조망하기 어렵다. 특히 입수구와 배수구의 자연스럽게 정화기능을 하는 설치와 월지의 물이 썩지 않게 고려한 장치들은 현대의 기술자들조차 혀를 내두르게 한다.

현대과학이 만들어낸 월지에 비친 야경을 즐기는 것도, 천 년 전 신라인들의 생활상을 유물전시관에서 엿보는 것도, 당시의 풍류를 상상해 보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힐링의 기능을 담당한다 하겠다. 여기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절대로 포기해서도 포기할 수도 없는 우리 역사를 간직한 유적 발굴과 보존의 필요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황남맷돌순두부

월성과 동궁은 경주시가지에서 남쪽으로 치우쳐 위치, 30여분 걷거나 차량으로는 5분 이내의 거리로 이동하는 것이 행복한 밥상을 마주하는 기회를 갖게 한다. 첨성대 사적지 주변이 가장 가까운 식당가이다. 황남초등학교 앞에 위치한 ‘황남맷돌순두부’는 단체관광손님은 물론 경주시민들도 점심과 저녁식사로 부담없이 찾는 곳이다. 순한 맛과 고단위 영양식이 단골을 잡는 비법이다.

황남맷돌순두부는 맷돌로 갈아 만든 순두부가 메인이다. 고소한 두부의 맛이 여러 가지 부재료와 궁합을 맞춰 입맛을 돋우는 곳이다. 두부라면 일단 현대인들이 즐겨 찾는 힐링음식으로 첫손가락에 꼽는다. 거기에다 다양한 기능성 건강식품으로 추천되는 능이와 송이 등의 버섯을 부재료로 사용한다.

황남맷돌순두부의 은근한 매력 중의 하나는 식당 방 한곳을 차지하고 있는 역사문화를 소개하는 책가방이다. 다른 곳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신라시대 역사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실은 책들이다. 누구나 읽기에 절대 부담스럽지 않은 책들에는 손님들의 손때가 묻어 있다.

친구의 엄마나 외숙모 또는 이모 같기도 한 주인아주머니의 인심도 편안하다. 그녀의 인심을 닮아 넉넉한 밥그릇과 부족하다 싶으면 별다른 주문 없이도 밥상위로 날라준다. 이렇듯 신라인의 미소를 머금은 경주사람들이 있고, 거기에 어울리는 먹거리들이 있기에 힐링을 즐기려는 이들의 경주를 찾는 발걸음이 잦아지는 건 아닐까.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