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점 목화 버금가는 의생활 혁명 불러와…질기고 윤기나는 ‘나일론’ 대구에 첫 선

발행일 2018-03-19 20:10:0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34> 코오롱 창업주 이원만

1968년 3월 구로공단 준공식에서 연설하고 있는 이원만 회장.


구로공단은 1967년 완공된다. 한국나이롱(주)은 구로공단에도 첫 입주한다. 섬유ㆍ봉제 등이 모인 구로공단은 1970년대 후반 전체 수출의 10% 이상을 차지했다. 오운은 한국 섬유산업의 한 장을 열고 수출 한국의 기초를 놓은 것이다.

나일론에 이어 폴리에스테르라는 합성섬유가 등장한다. 천연직물에 가까우면서 땀을 흡수하고 염색, 감촉 등이 뛰어났다. 1971년 이원만은 경북 구미에 ‘한국폴리에스텔(주)’ 공장을 준공한다. 지금 경북에는 구미와 경산, 김천에 코오롱 사업장이 있다.

◆정치인 외도 10년과 말년

구미공장 준공 직후 제8대 국회의원 선거가 닥쳤다. 오운은 1963년 대구 동구에서 공화당으로 제6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제7대 국회의원으로 내리 활동했다. 67세 이원만은 다시 출마했지만 실패했다. 정치인으로 10년. 오운은 경영에 전념했다. 1972년 한국나이롱과 한국폴리에스텔을 통합한다. 회사 이름은 ‘코오롱’이 됐다. 이원만은 1977년 아들 이동찬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준다. 코오롱은 이후 섬유산업을 뿌리로 무역, 건설, 석유화학, 관광, 운수 등으로 영역을 확대한다. 지금은 오운의 손자 이웅렬(62) 회장이 경영을 잇고 있다.

가지 많은 나무엔 바람이 일 게 마련일까. 2014년 2월 경주시 양남면 마우나오션 리조트의 눈 덮인 강당이 폭삭 내려앉았다. 리조트는 코오롱의 자회사. 당시 부산외대 신입생 100여 명은 오리엔테이션 도중 매몰됐다. 11명이 사망하고 80명이 넘는 학생이 다쳤다. 대구지하철 참사 이후 대구ㆍ경북에서 발생한 최악의 사고였다. 오점(汚點)이다.

이원만은 1994년 91세로 삶을 마감한다. 그해 금탑산업훈장이 추서됐다. 오운은 추풍령 인근 황악산 자락 금릉공원묘원 옆에 부인 이위문과 함께 잠들어 있다. 오운이 생전에 잡은 터로 알려져 있다. 재단법인 금릉공원묘원 땅도 그가 매입했다고 한다. 2014년 세상을 떠난 아들 이동찬 전 회장 부부도 이곳으로 왔다. 코오롱의 성역(聖域)이다. 코오롱 측은 무슨 까닭인지 묘역 공개를 거듭 거부했다. 대구를 토대로 자랑스러운 나일론 신화를 쓰고 서울로 진출해 굴지의 기업을 일으킨 오운의 묘비명이 궁금하다.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ㆍ언론인 yeeho12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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