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체투지하듯 40년째 엎드려 작업…흙·나무·베 재료로 마음속 부처님 그려내다

발행일 2018-09-18 20:56:4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28> 문경 불화장 김종섭

불화를 그리는 과정. 오른쪽 밑그림에서 왼쪽으로 갈수록 완성된 불화작품.


 
불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김종섭 불화장. 경북 무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된 그는 종일 엎드려 작업하다 보니 힘들지만 조심스럽고 경건한 이 시간이 행복하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불화 그리는 일을 하늘의 소명이라 여겼다. 한 번 붓을 들면 해가 지고 밤이 깊어지는 줄 몰랐다. 하나의 색을 내기 위해 서너 번의 채색. 다시 색을 입히기까지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자기와의 싸움이었다. 몸과 마음을 닦고 오체투지 하듯 엎어져 작업한 지 40년. 마음속 부처님을 꺼낼 정도로 내공이 여물어 갔다.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에서 불화작업을 해온 김종섭씨는 지난 2016년 5월9일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39호 불화장으로 지정됐다. 불화 분야로는 도내에서 유일하다. 전국에서 무형문화재 불화장으로 지정된 장인은 모두 네 명으로 김씨는 그 중 한 명이다. 불화장은 불화를 제작하는 장인이다. 예전에는 스님들이 단청장으로서 모든 일을 했기에 금어(金魚)나 화승(畵僧), 화사(畵師) 등으로 불렸다. 한동안 불화는 단청장 보유자에 의해 전승됐다. 그러나 종목 특성상 2006년부터 단일종목으로 분리돼 무형문화재로 불화장이 지정됐다.

김종섭 장인은 하늘재 아래 고요한 산중에 묻혀 불화를 그리며 홀로 지낸다. 그는 충남에서 태어나 동국대 불교미술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 불화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스님으로 출가해 3년 정도 수행한 적이 있는데 군종법사로 제대를 하고 동국대, 불교대 등 대학에서 불교미술 강사로 활동해 왔다. 보응 문성스님, 1972년 단청장으로 지정됐던 일섭스님, 그의 수제자인 김익홍으로 이어지는 사승관계를 거쳤다.

불화를 그리는 이는 종교적 열정뿐 아니라 예술적 자질이 조화를 이뤄야 진정한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다고 한다. 무형문화재 불화장이 되기까지는 그만큼 신심이 맺혀야 가능하다는 뜻이다. 고려와 조선의 불화 및 근현대기 불화승의 초본과 유작을 바탕으로 전통불화의 기법을 재현한다. 자신의 작업장에 ‘관음불교미술원’을 열어 후학을 양성하며 불화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 불교 미술을 하고자 하는 후학들에게 모든 것을 다 전해줄려고 준비하고 있으나 불화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줄어든다고 한다. 그가 문경읍 관음리에 자리 잡은 연유는 지명이 관세음보살의 발음과 같아 마음에 들었다. 또 다른 이유는 오래전부터 불교관련 화맥으로 이름 높은 사불산 대승사와 운달산 김룡사가 가까워 이 땅에 왔다고 한다.
3년에 걸쳐 완성한 ‘500 나한도’는 길이 21m에 달하는 불화 작품인데 모두 다른 나한상이 담겨 있다.


4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그가 그린 수많은 불화들은 우리나라 전국 곳곳 절집 법당의 내ㆍ외부를 장식했다. 그의 작품 가운데 10년 전에 그린 ‘500 나한도’는 지금도 불화 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 회자된다. 21m에 달하는 이 불화는 3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으로 제각각 모두 다른 500의 나한상이 한 폭에 담겨 있다. 
김종섭 불화장은 가능하면 자연에서 채취한 염료물감을 사용한다. 포항 장기면에서 구한 돌을 갈아서 낸 석채. 청록색을 낸다.


수많은 불화를 작업하면서 그가 추구하는 한 가지가 있다. 가능하면 자연에서 채취한 염료 물감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의 작업장 앞에는 전국을 다니며 구한 돌과 흙이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화학안료와 달리 자연안료는 돌을 갈아서 낸 석채로 색을 낸다. 인체에 유익한 기가 발산되는 걸로 알려져 예부터 유용하게 이용됐다. 불화의 바탕은 흙, 나무, 베, 종이, 금속, 돌 등 용도에 따라 다양하다. 이러한 재료의 성질은 불화의 기능은 물론 교리적인 면에까지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보존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불화는 불교 교리를 알기 쉽게 압축하여 표현한 그림으로, 불탑과 불상 등과 함께 불교 신앙의 대상이다. 만들어진 형태에 따라 벽화와 탱화, 경전에 그린 그림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종이나 비단 또는 삼베에 불교 경전 내용을 그려 벽면에 걸도록 하는 탱화가 주류를 이룬다.

불화는 단순히 아름다움이나 선함만을 추구하는 예술이 아니며 불교 이념에 따른 내용을 그려야 하는 성스러운 분야이다. 좁은 의미로는 법당에 걸어 놓고 예배하기 위한 그림을 말한다. 경전의 내용을 설명적으로 나타낸 그림과 법당의 내 외부를 장식하는 그림도 넓은 의미의 불화에 속한다. 불교가 모든 괴로움에서 해탈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면 가장 성공적인 불화는 이러한 장면을 가장 멋지게 그린 그림이 가장 명작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불화들은 대부분 18~19세기의 것이다. 오히려 일본 등 외국에 고려시대나 조선 초기의 불화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고려 후기의 불화는 권문세족과 관련되어 귀족적 분위기가 잘 드러나 있다. 화려하고 고귀한 금선과 밝고 찬란한 채색을 주로 해서 그려져 있다. 이들 불화는 고귀하고 찬란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불화의 특성은 비슷한 색상과 좌우 대칭으로 볼 수 있다. 빨강ㆍ녹청ㆍ군청이 주조색이면서 황토와 백록색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대체적으로 안정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중앙에 그 불화의 주인공을 크게 표현하고 좌우에 여러 보살과 신들을 대칭되게 그려 넣는다.

김종섭 장인은 불화와 파랑새에 얽힌 설화를 들려주었다. 지금부터 약 5백 년 전의 일인데 강진 무위사 주지스님은 곤혹스러웠다. 완공된 극락보전에 벽화가 없어 아쉬워하고 있었다. 마침 한 노스님이 찾아왔다. “그 벽화는 내가 그릴 테니 49일 동안 안을 들여다보지 마시오.” 그는 한 달이 지나도 법당 밖으로 나올 기미가 없었다. 궁금했던 주지는 48일째 일을 그르쳤다. 문틈으로 몰래 안을 엿봤는데 노스님은 온데간데없고 파랑새 한 마리가 붓을 입에 물고 벽화를 그리고 있었다. 인기척에 파랑새는 사라졌다. 관세음보살의 점안만 남겨둔 상태였다. 
김 불화장의 작업실에 놓여있는 수많은 붓. 그는 이 붓에 정성을 담아 불화 작업에 임한다.


국보 제313호 후불탱화 아미타여래삼존불도에 묘사된 관세음보살에는 현재 눈이 없다. 왜 하필 관음보살이고 파랑새일까. 불화에 걸린 화두이다. 붓끝에 서린 신심으로 부처님을 그리는 그 정성에 사심이 끼어선 안 된다는 경책으로 본다. 사람의 능력 밖에서 지극정성으로 그린 까닭에 관음보살의 분신인 파랑새를 등장시킨다. 파랑새가 입에 붓을 물고 막힘없이 그린 그림을 불화로 승화시킨 것이었다.

김씨는 제일 그리기 어려운 부분이 부처님 얼굴 상호 부분이라고 한다. 불화 작업 중 언제나 마지막에 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소중하게 다뤄야 할 부분인 만큼 마지막에 정성 들여 기도하고 지극한 마음이 채워질 때 붓질을 한다. 그래서 하루에 3, 4번이라도 별도로 마련한 불단 앞에서 이렇게 기도를 한다. “삼가 귀의하옵고, 무지랭이의 손길 따위로 어찌 부처님 존안을 더럽히겠습니까마는, 어차피 색즉시공이니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더하지 못합니다. 오로지 당신의 밝은 눈만이 색을 깨치고 공을 채웁니다….” 이렇게 기도하지 않으면 그림에 기운이 깃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랑새 설화는 삿된 마음으로 하는 붓질은 안 될 일이고 붓끝에 정신을 집중하여 표현한 작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 작가 자신이 느끼는 교감이 있어야 한다. 불화는 극적인 순간을 보는 영적인 안목이 있어야 하고 보이는 것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게 된다. 불화를 그리는 일이 불자의 수행과 같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가 현재 작업실로 쓰고 있는 문경읍 관음리와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사이 하늘재는 예로부터 군사요충지였다. 신라와 백제의 국경으로 전쟁터였고 임진왜란, 6ㆍ25전쟁을 거치면서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 의병이 숨진 곳이었다. 수천의 한이 서린 곳에서 불화를 그리는 그는 2005년부터 매년 11월 사비를 들여 하늘재에서 불교식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이름 없는 수많은 영혼들의 원혼을 달래고 극락왕생을 비는 이 일을 하늘재와 맺은 인연의 업보쯤으로 여긴다.

장인의 작업 모습을 본다. 엎드린 자세로 가늘고 긴 선을 그려내려면 장시간 고도의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종일 엎드려 작업하다 보니 허리가 휘고 관절이 아프지만, 그는 불화장을 천직이라 생각한다. 조심스럽고 경건한 이 시간이 행복하다. 극도의 섬세한 붓질로 표현한다. 삼각형, 마름모, 원의 기하학적 패턴이 중중무진으로 중첩하고 무한히 연속한다. 연기법계의 그물망이다. 그의 불화에는 성스러움의 영성이 충만하다. 선 하나하나에도 정신과 혼을 담아 시대의 문화재를 그린다는 생각으로 임한다. 인간 능력의 한계를 초월한 장엄의 성스러움으로 한국 불화의 맥을 이어 나간다.


글•사진=박순국 언론인 ■ 이 기사는 경상북도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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