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최석채 ‘세계 언론 자유영웅 50인’에 선정…대구일보·매일·조선 등서 필봉 떨쳐

<11> 영원한 반골 언론인 최석채



그는 별명도 많았다. ‘반골 언론인 최석채’(성균관대학 출판부)에 따르면 기자들은 그를 ‘최 대패’라고 불렀다. 편집국장시절 ‘글은 둥글둥글해서는 안 되고 글은 가로 세로 모가 나게 대패질을 해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기 때문. 그는 기자들이 써온 글을 부ㆍ차장들이 다듬는 것을 대패질이라고 했는데 글에 ‘골기’(骨氣)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했다. 또 그는 ‘투령(鬪領)’이라 불리기도 했다. 보스에게 흔히 붙이게 마련인 두령이나 두목대신 ‘투령’이라는 색다른 표현을 쓴 것은, 논객사회에서 그가 내세웠던 고집과 보스기질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말이어서 그도 만족해했다고 한다. 1960년 조선일보로 처음 옮겼을 당시 그의 별명은 ‘시골무사’였다. 작은 키에 유행과 담쌓은 옷매무새, 시골선비의 고집스러움과 대쪽 같은 성품을 버무린 애칭이었다.그는 아호로 無鄕(무향)과 夢鄕(몽향)을 썼다. 20대에 ‘무향’이라는 아호를 가지게 된 이유를 1981년 5월 13일 몽향칼럼 (매일신문)에 소상히 밝히고 있다. 20대 초반 일본에서 공부할 때 창씨개명이 싫어 꾀를 낸 것이 아호를 짓게 된 동기라고 했다. 무향은 불교경전의 ‘南無.’를 뜻하는, 인도말로는 ‘아아’라는 감탄사여서 ‘아아 내 고향’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40년 가까이 무향을 사용했으나 아호 때문인지 운명이 그런지 아호처럼 고향이 없어지는 기분이 들어 1981년 새로운 아호 몽향(夢鄕)을 짓게 됐다’고 했다. 꿈에도 그리는 고향이라는 뜻으로 지어진 ‘몽향’에는 고향을 위한 한결같은 필봉의 꿈과 함께 희망의 꿈도 담겨있다고 덧붙였다.김순재 언론인sjkimfor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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