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가난 벗고 발전하자” EU 목표 힘찬 전진 “젊은이가 우리의 미래” 희망찬 ‘뉴본’ 꿈 꾼다

발행일 2016-10-26 01: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43> 세르비아•코소보

베오그라드

◆개발의 급물살 타는 옛 유고의 자존심

밤새 내리던 비가 아침에도 그치지 않아 하는 수없이 숙소주인에게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다. 자그레브 숙소에서 버스터미널까지 1.4㎞ 거리에 5유로를 받았다. 한국보다 몇 배나 더 비싼 택시비였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버스는 세르비아 국경까지 3개의 도시에서 사람들을 내리고 태우고 하면서 국경을 넘었다. 국경을 통과하자마자 펼쳐진 광경은 흐린 날씨처럼 황량했다.

1918년부터 2002년까지 유고슬라비아의 수도였으며 그 뒤 2005년까지는 세르비아-몬테네그로의 수도였던 베오그라드 역시 곧 쓰러질 것 같은 건물이 많았다. 흰색 건물이 많아 ‘하얀도시’란 뜻의 이름이 무색할 정도였다.
발칸 반도의 자존심, 동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는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 지명의 뜻은 흰색의 건물들이 많아 ‘하얀도시’이다. 사진은 베오그라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크네즈 미하일로바거리. 보행자 전용도로다.
하지만 사람들은 달랐다. 만나는 사람마다 친절했다. 동양인이어서 그럴 수도 있었다.

장기여행에서 동양인이란 인종차별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과 눈에 잘 띄어서 소매치기 등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반면 자신들의 나라에서 잘 볼 수 없는 완전한 이방인이란 점에서 친절한 응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장점이 공존한다.

베오그라드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물론 여행을 하면서 느낀 절대불변의 진리인 ‘가난한 나라일수록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건 세르비아에도 적용되는 것 같았다.

지도를 보고 있으니 할아버지가 와서 영어로 말을 건다. 집주소를 보더니 아래로 조금만 내려가면 된다고 설명해줬다. 그러더니 어디서 왔느냐고 묻고 한국이라고 했더니 끝난지 한참된 올림픽얘기를 하면서 한국이 금메달을 9개나 따지 않았냐고 물어서 깜짝 놀랐다. 스포츠는 국경을 초월한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란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숙소에 도착했지만 현관문이 잠겨 있었다. 멍하니 서 있는데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집 주인이었다. 부인이 그 시간에 없어서 근무 시간인데도 직접 왔다고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는 검사였다.

그는 숙소가 있는 지역이름은 사바말라로 어두운 외관을 가진 건물로 가득 차 있지만 2∼3년 전부터 예술가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뉴욕의 소호처럼 변화하고 있다고 했다. 지역의 정체성이 새롭게 형성되면서 동시에 밤늦게 다녀도 안전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숙소에서 300m쯤 떨어진 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한 사바강 유역개발 계획인 ‘베오그라드 워터프론트’ 프로젝트가 시행에 들어가 이 지역개발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고 강조했다.

베오그라드 워터프론트 홍보관.
다음날 직접 프로젝트 모델하우스를 찾았다. 현장 직원의 설명에 따르면 이 지구에 가장 먼저 들어설 건물은 주거단지(BW레지던스). 2개 건물로 각 20층 총 296가구가 2018년 3월 완공예정이다. BW갤러리아란 이름의 상가와 세계적 호텔체인인 스타우드계열 호텔과 리조트가 뒤이어 들어올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 프로젝트가 베오그라드의 부동산을 대부분 소유하고 있는 아랍에미레이트 사람들의 배만 불리고 2천 년 고도를 망친다고 생각하는 시민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로 서민들이 베오그라드에서 살 터전을 잃고 말 것이란 비관적인 시각에서다.

프로젝트의 총 진행기간은 30년.

그때의 상황을 섣불리 판단할 순 없지만 도심개발이란 원래 양면성을 띈다는 점에서 지금으로서는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다.

이런 가운데 2020년 EU가입을 목표로 하고 있는 세르비아는 최근 IMF가 올해 GDP 성장률을 1.8%에서 2.5%로 상향 조정할 정도로 경제가 활기를 띄고 있다.

다행히 물가는 덩달아 뛰지 않아 여행자들의 주머니 부담을 덜어준다. 우리나라 돈 1만 원으로 아이스커피 두 잔을 노천카페에서 마시고 마트에서 땅콩 2봉지, 포테이토칩 2봉지, 캔맥주 하나, 고무장갑 하나, 가루커피 하나, 빵 2개들이 4봉지를 살 정도였다. 유럽 내에서 가장 물가가 싼 나라였다.

베오그라드 역시 시내 곳곳 기념품 가게에서 하나의 강력한 유고시절의 상징인 티토대통령의 자석이나 엽서가 많았다. 특히 1980년 5월 티토의 장례식이 베오그라드에서 열렸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해 보였다.

하나 안타까운 점은 옆 나라인 코소보를 아직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코소보에 먼저 갔다가 세르비아로 들어가면 입국을 거부당한다. 이걸 모르고 코소보에 먼저 간 여행객들은 다른 나라를 거쳐야만 세르비아에 들어갈 수 있다.

당연히 세르비아를 먼저 갔다가 코소보에 가는 건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다.

이는 코소보가 친미정책을 취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세르비아는 옛 유고연방국가 중 ‘표시’ 나게 러시아와 친한 나라다. 따라서 계산적으로도 코소보와 친할 이유가 없다. 미국은 이런 세르비아에게 코소보를 독립국가로 인정하고 ‘잘 지낼 것’을 회유하지만 세르비아의 태도는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사실 지난 8월16일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세르비아를 찾은 건 EU 중재로 지난해 발표한 세르비아와 코소보 관계 정상화를 위한 합의안 이행 촉구를 위해서다. 말인즉 지금까지 합의안이 잘 이행되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수도인 베오그라드가 2천 년 동안 40번 이상 파괴된 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세르비아가 같은 아픔을 가진 코소보를 외면하는 걸 해석하는 건 쉽지 않았다.
칼레 메그단요새. 칼레가 요새란 뜻이고 메그단이 전장이란 뜻이어서 사실 칼레 메그단만으로 뜻이 충분하다. 40번이나 파괴됐다고 한다. 아래는 칼레 메그단 성벽에서 내려다 본 사바강.


프리슈티나

◆발칸반도의 외톨이 코소보의 중심

새벽 5시인데도 베오그라드 버스터미널은 환했다. 그래도 플랫폼으로 접근은 쉽지 않았다. 플랫폼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티켓을 살 때 받은 동전 같은 걸 넣어야 했다. 터미널 이용료 겸 출입자제한을 위해서 그러는 것 같았다. 티켓을 살 때는 좌석번호를 받았는데 막상 타고보니 좌석에 번호가 매겨져 있지 않았다. 아무데나 앉으면 됐다. 버스는 정시에 출발했고 3시간쯤 달려 세르비아 남쪽 니스에 한번 정차하고는 바로 국경으로 향했다.

국경 통과는 쉬웠다. 세르비아에서 나가는 버스이기 때문이었다. 코소보출입국 직원이 버스에서 여권을 거둬가면서 남한이나 북한이냐를 물었다. 남쪽이라고 했더니 공산당은 코소보에 못 오기 때문에 묻는 거라며 웃었다.

국경을 넘자마자 코소보에서 세르비아로 들어가는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 모습에 놀랐다. 족히 2㎞는 되는 것 같았다. 하루 동안 심사를 다 할 것 같지 않을 정체였다. 코소보에 먼저 들렀다가 세르비아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걸러내는 작업도 정체에 한몫을 하는 것 같았다. 국경을 넘고 30분쯤 달리자 코소보의 수도인 프리슈티나 터미널이 나왔다. 다음 일정인 마케도니아 오흐리드로 가는 버스표부터 끊으려고 했지만 직통으로 가는 건 없었다.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로 가서 거기서 사야 한다고 했다. 가서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터미널 밖으로 나오는 데 택시기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숙소 주인에게 3유로가 안 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5유로를 부르길래 뒤도 안돌아보고 갔더니 나이든 한 기사가 와서 3유로만 달라고 했다.

코소보 독립에 도움을 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동상.
목적지에 도착하고 보니 이 나라 물가를 대비하면 3유로면 충분한 거리였다. 가는 길에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동상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 미국의 도움을 바탕으로 독립을 하고 여전히 절대적으로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나라다웠다.
코소보에 진출한 첫 외국프랜차이즈 브랜드인 KFC.
쇼로시부쉬(xhorxh bush)거리.
중세 시대 세르비아 왕국의 수도로 발칸 반도의 교역 거점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코소보의 수도 프리슈티나. 사진은 프리슈티나의 중심인 보행자 전용도로 네나 테레제거리 모습.
도심은 활기로 넘쳤다. 하지만 아직 신생국가인데다 코소보를 인정하지 못하는 나라가 많아 수출입이 원활하지 않는 것 같았다. 자체 브랜드 의류들이 많았고 주택에 들어갈 자재 역시 고유 브랜드를 파는 가게가 즐비했기 때문이다.

24시간 하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많은 것도 특이한 모습 중 하나였다. 이런 카페에는 어린이들이 10분이 멀다하고 구걸을 하러 들어왔다. 구걸하는 것치곤 옷을 말끔하게 입었다. 마치 구걸이 아니라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 보니 어린이 몇 명이 한데 모여서 돈을 나누고 있었다.

도시가 작고 역사가 일천하다 보니 딱히 눈에 띄는 볼거리는 없었다. 다만 청소년스포츠센터는 인상적이었다.
프리슈티나 청소년스포츠센터
새로 태어났다는 의미의 ‘뉴본’. 코소보의 새로운 약진을 의미한다.
새롭게 태어났다는 의미의 ‘뉴본’ 조형물 뒤에 서있는 건물인 청소년스포츠센터는 코소보의 아픈 역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프리슈티나의 미래가 젊은이들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한 나이든 시민들의 기금조성에 의해 지어졌다.

수년동안 그들의 수입 중 절반이 이 건물을 짓는 데 들어갔다. 원래 수영장, 테니스코트, 풋살경기장 등이 들어설 예정이었지만 전쟁이 모든 걸 산산조각냈다. 코소보사태 당시 경기장이 화염에 휩싸이면서 심각한 손상을 입고만 것이다.

그 결과 지금은 외형만 덩그라니 남은 채 못 쓰는 건물로 남아 코소보의 아픈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순회특파원 ksk@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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