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쨍’ 하다 갑자기 ‘비’…붉은 ‘기네스’ 한 잔 절로 생각나네

발행일 2016-11-16 01: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46> 아일랜드 (하)

◆북대서양 따라 8km 이어진 절벽 ‘클리프 오브 모허’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절경인 클리프 오브 모허.

아일랜드 서부해안 대서양을 따라 절벽이 이어진 곳이다. 해마다 100만 명 이상 방문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술과도 같은 곳으로 절벽은 최고 높이 214m, 둘레 8㎞에 달한다.
아일랜드의 넘버원 방문지인 클리프 오브 모허. 클리프 오브 모허는 연간 100만 명 이상 관광객이 찾는 곳으로 8km의 절벽이 북대서양과 맞닿아 있다.
클리프 오브 모허란 이름은 나폴레옹 전쟁 때 파괴된 요새 곶 ‘마더’에서 따왔다. 가장 앞 부분의 절벽이 마녀할멈의 머리모양을 닮았다는 데서 나온 것이다. 만들어진 건 320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당시 이 지역은 지금보다 무척 더웠으며 큰 강의 입구쪽이었다고 한다. 강물이 넘쳐나면서 진흙과 모래가 퇴적돼 쌓이면서 마침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됐다는 것.

클리프 오브 모허는 연장선상에 있는 버렌국립공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기도 하다. 버렌공원이 한적한 곳에 버려진 지형처럼 보이는 너무나도 조용한 곳이라면 클리프 오브 모허는 언제 변할지 모르는 궂은 날씨에 대비해 비옷을 챙기고 느긋하게 트레킹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그럴 시간이 없다면 클리프 오브 모허의 전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오브라이언타워에 올라가면 된다. 1835년에 세워진 이 탑은 방문객들이 클리프 오브 모허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코르넬리우스 오브라이언이란 사람이 세웠다. 19세기에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진 전망타워란 점에서 놀라웠다.

야생동물의 보고란 점에서도 클리프 오브 모허는 주목받고 있다. 1979년 EU조류보호령으로 지정된 이곳은 20여 종에 달하는 바다새의 고향이다. 특히 절벽의 끝자락엔 중부대서양에서 4월에 날아와 7월 말에 돌아가는 작은 펭귄같이 생긴 퍼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비록 퍼핀은 떠나가고 없어서 못 봤지만 날씨 부조 덕분에 가장 끝자락에 위치한 절벽도 볼 수 있었다. 아일랜드 여행에서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건 바로 날씨다. 동부의 더블린과 달리 서쪽해안이나 내륙지방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맑다가 비가 왔다가를 반복한다.

클리프 오브 모허에 도착했을 때도 주차하는 동안 억수같은 비가 쏟아져 5분 정도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무지개가 보일 정도로 쨍하게 날씨가 개었다가 절벽을 다 둘러보고 방문자센터로 내려오는 순간 다시 비가 쏟아져 바지가 흠뻑 젖고 말았다.

옷도 말릴 겸 센터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를 한 잔 하고 있는데 한 중년여성이 급하게 팔을 잡아채면서 뭐라고 한다. 중국말이었다. 동양인이라서 일단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천천히 얘기해 보랬더니 계속 자신의 얘기만 쉼 없이 되풀이 한다.

자세히 들어보니 ‘호텔 예약을 했는데 예약이 되지 않았고 지금 출발해야 하는데 어쩌면 좋냐’는 내용이었다. 방문자센터 안내데스크에 가보니 이미 그 여성이 준 번호로 전화를 했는데 런던의 체인호텔이 나왔다고 했다. 아뿔싸. 지명 이름만 보고 엉뚱한 곳에 예약을 한 것이다. 그녀가 예약하려고 한 곳은 클리프 오브 모허에서 한시간 남짓 떨어진 골웨이란 곳인데 영국의 스코틀랜드에도 골웨이란 곳이 있어서 그리로 예약을 한 것 같았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중년 남녀 4명이 용감하게 아일랜드로 여행을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해서 안타까웠다.

마침 젊은 중국 청년이 왁자지껄한 이 광경을 보고 다가왔고 자연스럽게 중년 남녀 4명은 그에게 인수인계(?)됐다.

여행에서 오는 또 하나의 중요한 착각 중 하나를 이들에게서 봤다. 같은 지명을 가진 곳이 생각보다 많은 데 자신만의 목적지로 믿어버리고 더블체크를 하지 않은데서 오는 치명적 실수다. 겪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앞으로 그들 여행에 있어서 보탬이 될 경험임은 분명해 보였다.
아일랜드의 횡단보도 어느 곳에나 볼 수 있는 안내글자. 차량이 어느 쪽에서 오는지 확인하라고 화살표가 돼 있다.


◆골웨이를 지나 술꾼들의 천국 더블린 템플바로

클리프 오브 모허를 떠나 아일랜드 중서부해안의 제3의 도시 골웨이로 갔다. 골웨이는 아일랜드국립대학이 있는 곳으로 게일어로 ‘작은 섬들이 있는 항구’란 의미다.
골웨이 해변가.
아일랜드 3번째 도시인 골웨이는 아일랜드 게일어로 ‘작은 섬들이 있는 항구’란 의미다. 아일랜드 국립대학이 위치해 있다. 사진은 골웨이 도심 풍경.
너무나도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도시로 아일랜드 여행객들의 블랙홀 같은 곳이다. 그래서일까. 원래 하루 일정이었던 골웨이를 이틀로 늘리면서 도심 구석구석을 산책했다. 작은 도심이 지겨울 때쯤 구름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형형색색의 풍경을 보며 북대서양 해안을 해질 때까지 걸었다. 여행 중 가장 평화롭게 한 산책으로 기억될 것 같았다. 이제 아일랜드여행의 마무리인 수도 더블린으로 가야 했다.

예이츠, 제임스 조이스, 버나드쇼, 사뮤엘 베케트 등 쟁쟁한 작가들의 고향인 더블린은 한 나라의 수도인구로는 많지 않은 120여만 명이지만 조용한 도시와 시골을 전전하다 보니 복작복작한 느낌이었다. 거기다가 1천 개가 넘는 펍이 있다고 알려진 도시답게 한집 건너 한집이 펍인 것 같았다.

그 중에서도 템플바는 으뜸이었다. 더블린시내를 관통하는 리피강 남쪽에 있는 이 곳은 자갈바닥이 이어진 템플바거리를 중심으로 각종 펍과 레스토랑, 작은 갤러리, 기념품 가게 등이 들어서 있다. 바(bar)란 이름으로 불리지만 사실은 펍 집성촌인 것이다. 17세기초 트리니티대학의 학장이었던 윌리엄 템플의 집과 정원이 있었던 것에서 이름이 비롯됐다고 한다. 18세기만 해도 펍과 서민들의 집이 있었으나 1960년대부터 가게들이 생겨나고 예술가들이 모여 살기시작하면서 예술과 펍을 한번에 즐길 수 있는 거리로 자리잡은 곳이다. 점심 시간쯤 갔는데도 인기 있는 펍은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펍의 특성상 술마시는 사람이 없으면 문을 닫아야 한다는 점에서 템플바의 성황은 아일랜드인들의 주량과 무관하지 않다. 아일랜드인은 한해 평균 131ℓ의 맥주를 마신다. 이는 체코에 이어 세계 2위의 소비량이다. 특히 더블린의 술꾼들은 금요일 오후 5시 반부터 주말을 보낸 월요일 새벽 3시까지 총 9천800파인트 즉 500만ℓ의 맥주를 마신다. 더블린에서는 펍이 필요충분 조건일 수밖에 없다.

◆제임스 조이스가 아이리시 와인으로 부른 기네스 맥주

템플바를 비롯해 더블린 아니 아일랜드의 대부분 펍 앞에는 빠지지 않고 기네스맥주를 판다고 홍보하고 있다.

제임스 조이스가 아일랜드인의 와인이라고까지 한 기네스맥주는 창업주 아서 기네스가 세운 맥주 및 증류주 회사의 이름이다. 지금은 맥주와 더불어 다양한 세계 기록이 담긴 책인 기네스북으로도 유명하다. 펍에서 사소한 내기나 논쟁을 돕기 위해 고안된 심심풀이용 책이 시발점이었던 기네스북. 지금은 기록 갱신 등록의 장이 돼 맥주의 명성을 뛰어넘었다.

이처럼 기네스북이든지 맥주든지 간에 아일랜드를 찾는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이름이 바로 기네스다. 1759년 세워진 기네스맥주는 250년이 지난 지금 유럽에서 가장 큰 맥주제조사가 됐다. 생맥주는 매일 전 세계 151개국에서 1천만 잔이 팔리고 있다.

명성답게 생산 공정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든 기네스스토어는 항상 붐빈다. 원래 이곳은 1904년부터 1988년까지 맥주발효공장이었다. 기네스 잔 모양으로 된 이 건물 1층부터 7층까지 맥주를 가득 채우면 1천430만파인트 즉 71만5천ℓ의 맥주가 들어갈 수 있다.
기네스 스토어 입구.
발효과정, 역사, 역사 속 운송수단, 광고, 시음 등의 과정을 저층에서 고층으로 올라가면서 화살표를 따라 자연스럽게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투어 끝 부분에는 기네스 생맥주를 맛있게 따르는 법도 배운다. 투어는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이뤄진다. 15분 간격으로 방문 예약을 받는다. 현장에서 입장권을 구매해도 되지만 편한 온라인 예매로 첫 타임인 9시30분을 택했다. 20분 전에 도착했는데도 프랑스, 캐나다 등지에서 온 방문객들이 벌써 도착해 있었다. 생산과정에서 직접 잔에 따르는 과정까지를 빠르게 둘러봤는데도 1시간이 넘게 걸렸다. 투어를 하면서 기네스 공장의 각종 재미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네스 맥주 생산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네스 스토어. 55에이커 즉 30평 아파트 2천200가구, 축구장 110개가 들어가는 넓이다. 생산공정에서 시음바, 기념품숍까지 둘러보는데 최소한 1시간은 걸린다.
원래 아서 기네스는 초창기 더블린의 기네스발효공장에 대해 한해 45 아이리시파운드를 주기로 하고 9천 년 임대계약을 했다. 물론 지금은 이보다 훨씬 넓은 땅을 임대하고 있기 때문에 이 계약은 의미가 없어졌다. 빌리는 사람이나 빌려주는 사람이나 통 큰 사람들이다.

기네스 맥주를 만들기 위해 한해 10만t에 달하는 아일랜드산 보리가 사용된다. 이는 아일랜드 전체 보리생산량의 3분의 2에 달한다. 기네스스토어의 2배를 채우고 남는 양이다.

보리의 중요성 때문에 기네스는 보리의 재배부터 수확에 이르기까지 모니터만 전문으로 하는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기네스맥주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붉은 색깔은 바로 이 보리를 볶은 데서 나온 것이다.

홉은 위도 35∼55도 사이 생산 국가 중 호주, 체코, 독일, 미국, 영국, 뉴질랜드산을 수입한다. 기네스는 일반 맥주보다 홉을 더 많이 사용한다. 홉은 맥주의 향과 풍미를 더하는 데 사용되는 재료다.

직접 따른 잔을 한 모금 마시고 ‘잘 만들었다’는 의미의 제조인증서를 받으면 비로소 투어가 끝이 난다. 물론 인증서는 원하는 사람들 누구나 받을 수 있다. 방문했다는 의미다.
깨끗한 물은 기네스맥주의 생명이다. 기네스맥주의 물은 위클로우산에서 흘러 내려온 맑은 물이다.
방문객들이 직접 따른 기네스맥주를 바텐더가 정리하고 있는 모습
기네스 스토어 내부.
1층에 있는 숍에서 기네스 로고가 적힌 다양한 상품들을 살 수 있다. 모든 열쇠고리와 라이터에서 병따는 부분을 만들어 놓은 걸 찾아보는 것도 재미다.

순회특파원 ksk@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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