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좋게 만난 ‘호그와트’행 마법기차 ‘어린이 눈높이’ 전시…뜻밖의 감동도

발행일 2016-11-30 01: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48> 스코틀랜드(하)

◆호그와트로 가는 마법 속 증기기관차를 보다

글렌피난은 스튜어트왕조의 영국 왕위 계승권을 되찾기 위해 찰리왕자의 고군분투가 실패로 돌아간 것을 기념하는 유적지가 있는 곳이다.

물론 지금은 그 유적지보다 해리포터에 나온 글렌피난 비아덕트(철교)가 더 유명하다.

영화 해리포터에서 마법의 나라 호그와트로 가는 증기기관차 장면을 찍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그런 기차가 다니리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히치 하이킹(?)이 열차와의 조우를 가능케 해줬다.

글렌코계곡에서 글렌피난으로 가는 길은 조용한 산골이 이어졌다. 인적없는 그 길에서 젊은 남자가 차를 태워달라고 손을 흔들었다. 뒤에 차가 따라와서 세우지도 못 하고 한참을 가다가 맘에 계속 걸려 차를 돌렸다. 그때까지 차를 잡지 못하고 걸어오는 그를 발견하고 태웠다. 그저 가는 데까지만 가다가 내려달라고 했다. 4시간에 한대, 하루에 3대 오는 버스가 일요일이어서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대부분 차가 있는데다 일요일엔 마을 교회를 가고 집에서 쉬는 게 대부분 시골사람들의 일상이니까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핀’이란 이름의 이 친구같은 경우도 있겠지만.

핀은 지역 전문대를 막 졸업한 20대였다. 취업이 잘 된다고 해서 대학을 갔는데 아직 직장을 잡지 못했다며 누나 둘과 형은 모두 본토(잉글랜드)에 나가서 살고 막내인 자기만 부모와 함께 산다고 했다.

부모님 걱정이 크겠다고 하니까 어릴 때부터 특별한 말썽을 일으키지 않아서인지 그렇지는 않다며 그래도 빨리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고 했다. 글렌피난에 차를 세워달라고 하길래 얼마를 더 가야 집이냐고 되물었다. 걸어서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라고 하길래 이왕 태워준 것 집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스코틀랜드 이야기도 들으면서 마을까지 데려다줬다. 도착하고 보니 하루 종일 걸어야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미안해서 글렌피난에 내려달라고 한 것 같았다.

시간은 걸렸지만 잘 한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다시 ‘해리포터 철교’를 보러 갔다. 주차장에 주차할 곳이 딱 한 곳 남아 있었다. 철교를 보러 가려면 사유지를 지나야 해서 차를 몰고 들어갈 수가 없다.

시골길을 산책하듯 걸어서 5분쯤 가다 보니까 멀리서 영화에 나오는 철교가 보였다. 그 순간 어디선가 기차 경적소리가 들렸다. 올려다보니까 영화처럼 증기를 내뿜는 기차가 철교로 들어서는 게 아닌가.
해리포터 영화에서 호그와트행 기차가 지나간 글렌피난 철교. 실제로 이 철교위로 증기기관차가 달리고 있다.
철교를 쳐다보던 많은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거기 있던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려고 오랫동안 기다린 것 같았다. 기차가 다니는 지도 모르고 왔다가 도착한지 1분도 안 돼 기차가 지나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핀이란 친구를 태워주고 오지 않았다면 철교만 보고 돌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 작은 일에 대한 보답을 받은 것 같아서 하루 종일 유쾌했다.

◆어린이 눈높이에 명화 걸어놓은 켈빈글로브미술관

로얄마일의 다양한 모습. 에든버러성에서 홀리루트 궁전까지 연결되는 도로로 이전에는 평민들은 다닐 수 없는 왕실전용도로였다.
로얄마일의 랜드마크인 세인트자일스성당
로얄마일에 위치한 아담 스미스 동상.


산업혁명의 불을 지핀 증기기관 발명가 제임스 와트와 국부론의 저자 아담 스미스가 다닌 대학으로 유명한 공업도시 글래스고. 일반적인 스코틀랜드 도시와는 다르게 다소 어두웠다. 산업단지 안에 도심이 있는 느낌이랄까. 하루 일정에서 빠뜨리지 말아야할 곳인 켈빈글로브미술관 겸 박물관으로 향했다.각종 예술 작품은 물론 공룡 등 자연사, 고고학, 민속학 등 다양한 분야가 전시돼 있다. 특히 프랑스 인상주의 작품과 17세기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지방의 회화,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 작품도 볼 수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미술관 이상의 미술관을 봤다는 점이다.
글래스고에 있는 켈빈글로브미술관 및 박물관 외부.
켈빈글로브미술관은 어린이들의 명화 감상을 돕기 위해 그림들을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낮게 걸어놓은 것들이 많다.
‘모든 그림은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든 그림에는 그 화가의 인생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경구를 전시실 입구에 적어놓은 게 인상적이었는데 그림을 보면서 더 놀라운 걸 발견했다. 바로 상당수 그림이 성인의 눈높이보다 낮게 걸려 있다는 점이었다. 어린이들을 위한 배려였다. 세잔 정물화 하나를 선택해 꽃병을 어디에 놓아야할지 플라스틱으로 꽃병을 만들어놓고 직접 옮겨보도록 한 것도 있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는 것만으로도 어린이들의 창의력이 자연스럽게 길러질 수밖에 없는 이런 배려가 여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비해 단연 돋보였다.

뿐만 아니라 16세기 일부 화가들이 왜 얇은 구리판에 그림을 그렸는지, 네덜란드의 교회그림에 없는 게 무엇인지 등 미술사 전반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설명 역시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놓았다.

런던의 대영박물관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영국인들이 찾는다는 켈빈글로브미술관의 명불허전은 유명 인상파 화가들의 초기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만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칼튼힐에서 내려다 본 에든버러 시내.
110m밖에 되지 않지만 에든버러 시내를 다 내려다 볼 수 있어서 뷰포인트 역할을 하는 칼튼힐과 다양한 건축물들.
글래스고에 이어 간 애든버러는 성과 오래된 건물들이 조화를 잘 이룬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해마다 8월에 열리는 축제의 장소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 같은 도시였다. 언덕이 많았지만 걸어도 다리 아프지 않는 몇 안 되는 도시 중 하나이기도 했다.
에든버러 시내.


◆격식보다 즐거움…세인트 앤드류스에서 라운딩을

골프의 발상지답게 영국은 멋진 골프장이 많다. 특히 스코틀랜드는 바람과 비에 맞서서 경기를 해야 하는 날씨가 연중 지속되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골퍼들을 자극해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세인트 앤드류스. 5년마다 한번씩 올드코스에서 골프 메이저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디 오픈’이 열리는 곳이다. 에든버러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곳으로 올드코스는 1년 전에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불행히도 여행기간에 던힐 오픈 준비로 올드코스가 분주할 것 같아서 나머지 6개 코스 중 에덴코스를 선택했다. 세인트 앤드류스 골프클럽 홈페이지에 “올드코스가 여왕과의 만찬을 하는 것 같은 코스라면 에덴코스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하다. 거칠고, 기백이 넘치는 동시에 숨이 막히는 재미를 느낄 것”이라고 적혀 있는 것도 코스 선택에 한몫했다.

그러자면 전날 편히 쉴 수 있는 잠자리가 필요했고 세인트 앤드류스 시내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산골숙소를 잡았다. 수다스러운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줬다.

일찍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가까운 읍내인 쿠퍼 다운타운의 식당을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박장대소를 한다. 수십년 이곳에 살았지만 쿠퍼 ‘다운타운’이란 소리는 처음 들었다며 가보면 알겠지만 손바닥만하다고 했다.

자연을 그대로 골프장에 접목시키는 스코틀랜드의 특성상 세인트 앤드류스 역시 사실은 시골마을이란 점을 간과했다. 인근 마을에서 상가가 형성된 곳이라봤자 아주 작은 읍내임을 나중에 알았다.

키우던 닭 48마리 중 지금은 한 마리만 남았다는 그녀는 여우가 다 죽여버렸다고 했다. 여우라니. 두려운 눈빛을 보내자 그녀는 여우보다 사슴이 많은 곳이라고 했다. 자연친화도 좋지만 전설의 고향이나 동물의 왕국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우 때문인지 골프 때문인지 밤잠을 설치고 티오프 타임인 오전 10시보다 1시간 반 빨리 클럽하우스에 도착했다. 벌써 동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마실 나가듯 골프채를 끌채(트롤리)에 끌고 클럽하우스로 모여들고 있었다.
세인트 앤드류스 에덴코스 모습.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백을 직접 메고 라운딩을 한다.
스코틀랜드에 와서 만난 사람 열이면 열 모두 친절했는데 리셉션 직원들 역시 초행이냐고 묻더니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이 모든 걸 다 챙겨줬다. 로커를 열기 위한 1파운드 동전도 빌려줬다. 우리나라와 달리 이곳 로커는 이용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골프예절이라며 양복 자켓을 입어야 출입을 하는 우리나라의 몇몇 상류 골프장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곳이야말로 골프가 시작된 곳이며 PGA메이저대회를 개최하는 명문 중의 명문 골프장일텐데 양복이나 자켓을 입고 와서 로커를 이용해 옷을 갈아입는 사람은 이날 오전에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집에서 입고 온 복장 그대로 1번홀로 나가서 바로 티샷을 했다. 마치고도 그 복장 그대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20~30대 일부는 자전거를 타고 골프채를 메고 오는 사람도 있었다. 골프를 대하는 시각이 우리나라와 얼마나 다른지 놀라울 정도였다. 그렇지만 수첩형식으로 만들어진 코스맵이라든지 스코어카드용지 등은 프로의 냄새가 물씬 났다.

운동과 노동의 차이가 즐거움의 유무라면 즐기기 위해 하는 운동인데 지나친 격식이 큰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물론 타인에 대한 배려는 기본으로 안고 가야겠지만.

준비한 공을 다 잃어버리고 라운딩 도중 살 수도 없어 마셜(경기진행원)에게 얘기했더니 중고볼 8개를 손에 쥐고 나타난 건 또다른 감동이었다.

순회특파원 ksk@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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