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목 내리쳤던 ‘천관사지’ 물만 먹고 재출정 ‘재매정’…죽어서 왕이 된 장군 따라 20

발행일 2017-09-03 20:22:52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27> 자전거 하이킹: 김유신 장군 탐방길

김유신 장군은 신라 삼국통일의 주역으로 손꼽힌다. 장군과 무열왕 김춘추, 문무왕을 삼국통일의 주역 삼인방으로 소개한다. 경주 남산에 마련된 통일전에도 이 세 사람의 영정을 안치하고 통일의 주역으로 모시고 있다.

김유신 장군의 유적을 둘러보는 길은 흥미롭다. 흥덕왕이 흥무대왕으로 추서한 것을 기념해 조성한 흥무공원이 경주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조성돼 있다. 흥무공원은 김유신장군묘 바로 아래 조성돼 있지만, 일반시민은 물론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김유신 장군묘역을 둘러보고 황성공원의 김유신 장군 동상까지 가는 길은 다양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좋다. 다시 경주역을 지나 월성과 월지 사이로 난 길을 통과해 국립경주박물관 앞을 지나 천관사지를 둘러본다. 천관사지는 김유신 장군의 청년기 사랑이 깃든 곳이다. 천관사지로 들어서는 길은 천원마을 안길이어서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천관사지에서 남천을 건너 교촌마을 서편으로 좁게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김유신 장군이 태어나고 꿈을 키웠던 생가터인 재매정이 있다. 재매정에서 황리단길을 거쳐 경주시외버스터미널로 돌아오는 탐방길은 20㎞ 거리이지만, 역사유적과 주변 풍경을 감상하면서 돌아본다면 3시간 정도 하이킹 코스로 적당하다.

◆흥무공원

경주에서 김유신 장군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자전거 하이킹은 신명나게 한다. 코스 전체가 리드미컬하게 역사와 현실을 오가면서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도심의 풍성한 먹거리들이 널려 있다.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충무로를 향해 페달을 밟는다. 형산강을 건너는 다리 위에서 잠시 멈추고 강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한번 해볼 일이다. 가을을 재촉하는 바람이 맑은 공기를 실어 폐부 깊숙이 넣어준다. 푸른 기운이 싱그럽다. 자동차 소리에 휘둘려 간간이 들리는 물소리는 자연 속으로 끌어당긴다.

교량 끝에서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리는 순간, 개선장군이 된다. 50년쯤 됨직한 벚나무들이 봄이면 하얗게 하늘을 뒤덮어 구름터널을 조성하고, 여름에는 푸른 잎으로 지붕을 만든다. 가을이 되면 더욱 장관이다. 나뭇잎이 원색으로 물들어 한 폭의 수채화를 펼쳐보인다. 푸른 하늘이 언뜻언뜻 보이며 저절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싶은 마음이 동한다.

벚나무터널이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쪽 강변으로 내려서면 끝없이 갈대 숲 길이 펼쳐진다. 그냥 뛰어들어 뒹굴고 싶은 동심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다정스레 어깨동무하고 걷고 싶어진다. 형산강변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갈대숲 길은 매년 가을이면 데이트코스로 인기다.

왼쪽 충효동으로 이어지는 길은 전문한식집과 경주여자중학교가 있어 번화가로 변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 신사옥을 지어 입주해 교통량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특히 환경공단이 단층으로 사옥을 지으면서 넓은 부지에 공원을 조성했다. 담장 없이 건물을 오픈해 인근의 경주시민들이 야간에도 자유롭게 드나들며 쉼터로 활용하고 있다. 옥상에도 벤치를 놓고 화초를 심는 등 공원을 만들어 야간에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유신 장군의 생가터에 돌로 만들어진 우물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부인의 이름을 따 ‘재매정’이라 불린다. 재매정 옆에 김유신 장군의 유허비가 비각 안에 세워져 있다.
천관사지에서 빤히 바라다보이는 남천 건너편 김유신 장군의 생가터는 5분이면 도착한다.

재매정은 김유신 장군이 살았던 집 우물 이름이다. 부인의 이름을 따 집안의 우물을 그렇게 부른다. 재매정은 월성과 불과 600여m 거리다. 김유신의 젊은 날 사랑 천관녀의 집과도 2㎞가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다. 사랑을 불사르기 만만한 곳에 있었던 것이다.

김유신은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투구도 벗지 못하고, 백제군사들이 쳐들어왔다는 전갈을 받고 또다시 출전하면서 집 앞을 지날 때 재매정의 물 한 바가지를 마시고는 “우리 집 물맛은 그대로구나!”라며 바로 전장의 길에 올랐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도 돌로 만들어진 우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사적지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김유신이 월성에서 재매정으로 돌아오는 길은 짧지만, 가시밭길이었을 것 같다. 월성에서 남천을 따라 곧바로 내려오면 요석공주가 머무는 요석궁이요, 월정교를 건너 우회해 돌아오면 천관의 집이 바로 지척이다. 끌어 오르는 혈기를 주체하기 어려운 화랑 시절에 김유신 장군의 어머니 만명부인의 지엄한 하교는 장군을 바로 걷게 하는 지침서가 되었다는 해석이다.

재매정에서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니는 좁은 제방 길로 호젓하게 자전거를 타는 일은 낭만적이다. 강바람은 솔솔 불어오고 나이 든 가로수는 말없이 서 있다. 형산강으로 합류하는 하천변에는 계절 따라 들꽃들이 피고 진다. 시가지 방향으로 페달을 밟으면, 가로수들이 양쪽으로 나란히 서서 사열을 받는 기분이 든다.

시가지로 5분 남짓 진행하면 최근 경주의 핫플레이스로 등장하고 있는 황리단길에 이른다. 황리단길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애매모호한 느낌을 준다. 멀리서 보아도 점집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대나무가 더러 보이고, 신세대 입맛을 겨냥한 먹거리촌이 형성되고 있다. 리모델링이 한창 진행 중인 공사현장도 더러더러 눈에 띈다. 유모차를 끌거나 아기를 안고, 업은 젊은 세대들이 거리를 누빈다. 아이스크림을 손에 든 청년들의 표정이 밝다. 자전거 하이킹에 나선 이들의 표정도 덩달아 밝아지는 곳이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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