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맞고 억새가 배웅하는 무장산…‘가을의 진수’ 여기 다 있다

발행일 2017-11-05 19:45:5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34> 무장산 연가





사람들이 무장산을 찾는 이유는 십중팔구 정상에 있는 억새밭을 보고자 함이다. 누군가 억새를 대규모로 재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넓은 억새밭은 무어라 형용하기 어렵다. “가서 보라”는 말로 대신할 수밖에 없다.

이곳은 1970년대에 목장을 경영했던 곳이다.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던 초지였다. 초지에 억새가 자라 지금은 온전히 억새바다로 변해 한가롭던 목장이 등산객들의 화려한 차림으로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억새밭에 이르면 어느새 세상의 형세조차 잊게 된다. 동서남북 방향이 머릿속에서 두서를 잃는다. 시간과 태양의 위치를 가늠해 겨우 방향을 인식한다. 사방에서 불어 닥치는 바람들은 억새의 머리를 부드럽게 빗질한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억새들이 일제히 엎드렸다 일어나고 숙이고 다시 일어나는 춤사위의 은빛 파장이 황홀경을 연출한다. 부러지지 않고 휘어지는 아름다운 힘을 본다. 훨훨 날고 싶은 충동이 일게 하는 억새바다다.

억새는 갈대와 같다. 아니다 다르다. 억새와 갈대를 외형을 보고 바로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억새와 갈대는 자생지역으로 구분하는 것이 편하다. 억새는 산이나 뭍에서 자란다. 산에 있는 것은 무조건 억새라고 보면 된다. 갈대는 산에서 자라지 못한다. 습지나 물가에서 자란다. 물가에서 자라는 물억새도 있으나 산에 자라는 갈대는 없기 때문이다. 억새는 은빛이나 흰색을 띤다. 가끔 얼룩무늬가 있는 것도 있지만 대개가 실버다. 갈대는 갈색이나 고동색을 띠고 있다. 은빛 갈대라고 노래하는 것은 아량으로 보아 넘겨야 한다. 억새는 대부분 키가 1m 내외로 숏다리다. 일조량이 풍부한 지역에서는 사람의 키만한 억새도 있다. 갈대는 키가 2m이상으로 훤칠하게 쑥 빼어난다.

이정도면 억새와 갈대를 구분하는데 어려움이 없지 싶다. 한 가지 더 다른 점은 억새의 뿌리는 굵고 옆으로 퍼져나가 주변에 잡초가 자라지 못한다. 억새들이 군락을 이루는 이유가 된다. 그러나 갈대는 뿌리 옆에 수염같은 잔뿌리가 많아 다른 풀들과 함께 자란다. 억새의 열매는 익어도 반쯤 고개를 숙이지만 갈대는 벼처럼 고개를 푹 숙이는 모습이다.

여자를 갈대와 같다고 노래한 것은 맞는 말인 것 같다. 억새는 억센 남자 모습이다. 고집 센 할아버지라 할까.

신경림 시인은 ‘갈대’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노래했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삼겹살과 미나리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무장산을 더욱 무장하게 하는 것은 삼겹살과 미나리다. 등산객들이 몰려드는 무장동은 입구에서부터 계곡까지 길게 마을사람들이 청정지역에서 재배한 사과, 무, 배추, 더덕 등의 특산물들을 진열하고 등산객들이 즐거이 주머니를 털게 한다.

도로변에 앉아 특산물을 판매하는 나이 든 아주머니들보다 등산객들이 늘어나면서 규모있게 식당들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해 지금은 삼겹살과 미나리가 무장산의 명물이 됐다. 마르지 않는 무장산 계곡의 맑은 물로 재배한 미나리가 상큼한 향을 뿜는다. 미나리 향이 삼겹살의 익은 살점을 휘휘 감아 출출한 산인들의 뱃속을 요리조리 요리한다. 덩달아 막걸리도 등산객들의 뱃속을 유린해 하산길은 갈짓자가 되기 십상이다.

무장동의 미나리는 이제 하우스재배로 사계절 맛을 볼 수 있게 됐다. 봄철 한 때 즐겨 먹던 삼겹살과 미나리는 1년 내내 가능하다. 상상도 못했던 미나리향을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늦가을이나 겨울에도 음미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미나리로 만든 음식의 메뉴도 다양하다. 미나리전은 일단 맛을 보고나면 파전은 뒷전으로 밀려나버린다. 미나리가 속을 채운 전병도 꿀맛이다. 미나리는 피를 맑게 하지만 정신도 맑게 하는 효능과 함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전문가들의 으뜸가는 추천식품이다. 이제는 무장산 아래 마을사람들의 주머니도 두둑하게 하는 효자가 됐다.

억새가 억세게 몸을 흔들어 선경을 연출하는 무장산, 무궁무진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역사 이야기가 묻혀있는 무장산, 몸도 마음도 깨끗하게 정화해주는 미나리와 삼겹살이 유혹하는 무장산으로 힐링여행을 떠나보자.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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