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에는 또 신라의 통치이념이라 할 수 있는 불교의 흔적들이 불상, 석탑, 절터 등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기도 하다.
신라가 천 년의 사직을 내려두게 된 경애왕의 참사도 남산 포석정에서 일어났다. 술잔이 돌았던 포석정의 구조물은 물길이 마른 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신라의 처음과 중흥기는 물론 멸망의 끝자락 흔적까지 묻어나는 남산의 신라를 돌아본다.
◆신라 최초의 궁궐 창림사
삼릉으로 이어지는 숲은 보기 드물게 오래된 키 큰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전국에서 사진작가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특히 가을과 초여름 새벽에는 소나무 사이로 안개가 피어오르는 장면을 찍으려고 밤을 새는 작가들도 있다. 어쩌다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눈 이불을 덮은 우람한 소나무들의 기상을 렌즈에 담으려는 카메라맨들이 장사진을 이룬다.서남산에 많은 왕릉이 설치되어 있는데 반해, 동남산에는 49대 헌강왕과 50대 정강왕의 무덤 2기가 있다. 서남산의 왕릉이 모두 박씨라는데 반해, 동남산의 왕릉은 김씨 왕족의 막바지에 이른 세대에 속하는 왕릉이다. 두 왕릉은 통일전과 화랑의 집 사이에 500여m 거리를 두고 소나무숲 길에 산책로로 이어져 있다. 통일전에서 걸어도 10분이면 넉넉하게 이를 수 있는 짧은 코스여서 탐방하기에 편안하면서 소나무 숲에 쌓여 쾌적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 탐방길은 국립공원사무소에서 최근 부직포를 깔아 마치 비단길을 걷는 기분이 들 정도로 편안하게 조성되어 있다.헌강왕 때는 신라 말기에 접어들었지만, 나라가 태평성대를 누렸다. 헌강왕은 글을 좋아해 문신들과 함께 글을 짓고 토론을 하는 한편, 중국의 유학에서 돌아온 최치원과 용왕의 아들 처용을 등용해 나랏일을 돌보도록 했다. 또 헌강왕이 남산 포석정에서 잔치를 벌이는데 남산신이 나타나 춤을 추는 모습이 왕에게만 보였다. 왕은 신의 춤을 따라 추어 그 춤이 시중에 유행되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정강왕은 경문왕의 둘째 아들이자 헌강왕의 동생이다. 정강왕은 어릴 때부터 병약해 왕위에 올라서도 제대로 나라를 다스리지 못했다. 왕위에 오른 지 1년이 못되어 죽고, 그의 누이가 진성여왕으로 제51대 왕위에 올랐다.천 년의 사직이 묻어 있는 경주 남산을 둘러보는 일은 색다른 감흥을 일으켜 힐링의 코스로 자신 있게 추천할 만하다. 신라왕들의 흔적과 흥망성쇠가 묻어나는 남산으로 세계의 발걸음들이 잦아지고 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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