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선조들이 지은 서당•정자•고택…지금도 후손 안식처로 그 자리에

발행일 2018-06-17 19:57: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62> 양동마을 녹색길

경주 손씨들의 종택 관가정에서 전통문화체험학습 예절체험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경주 양동마을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집성촌이다. 양반은 높은 지대에 집을 짓고, 하인들은 낮은 지대에 있었던 취락구조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경주 손씨와 여강 이씨의 양 가문에 의해 형성된 고향 같은 마을이다. 손중돈 선생, 이언적 선생을 비롯해 석학을 많이 배출한 곳이다.

경주시가지에서 동북방으로 20km쯤 떨어져 있지만, 30분이면 넉넉한 인심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마을의 주산인 설창산 문장봉에서 네 줄기로 뻗어내려 갈라진 능선과 골짜기가 물(勿)자형의 지세를 이루고 있다.

수백 년 된 기와집과 초가집들이 나지막한 토담으로 이어지며, 양반길과 녹색길로 나누어 걷는 길은 그대로 힐링의 명소가 된다. 국보 통감속편, 보물 무첨당, 향단, 관가정, 손소 영정을 비롯하여 서백당 등 중요민속자료 23점, 경북유형문화재 14점 등 문화재가 수두룩한 마을이다.

오래된 집들이 자연환경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며, 전통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편안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고향의 정취가 느껴지는 고택에서의 민박, 전통의 맛과 현대의 입맛을 고루 즐길 수 있는 식당도 마을 곳곳에 있어 흥겨운 탐방길이 된다. 유교 전통문화와 예절 등을 체험할 수 있어 더욱 즐거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양동마을에서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곡물로 만든 양동유과와 조청 등의 전통음식을 맛보며, 천천히 양반걸음으로 고향의 향수를 즐기며 전통문화를 체험해보길 권한다.

안계댐에서 마을을 양분하며 가로질러 마을의 남쪽 입구로 이어지는 길을 중심으로 서쪽을 양반길로 분류하고, 안계댐으로 이어지는 길과 길의 동쪽을 녹색길로 나누어 지난주에 이어 소개한다.

◆양동마을 녹색길

양동마을과 안계댐을 잇는 마을 경계지역의 초가 담벼락이 녹색길의 정취를 드러내고 있다. 녹색길은 양동마을 입구에서 안계댐까지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면서 마을을 동서로 양분하고 있다.
양동마을의 안길은 기와집과 초가집들이 토담으로 연결된 조화를 이루면서 누구나 고향마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 편안함을 준다. 녹색길 동쪽도 서쪽의 양반길과 같이 나무로 지은 목재건물과 단층으로 된 구조의 고택이 즐비하다. 집들은 서당과 정자, 고택으로 꾸며졌지만, 지금도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거주하는 집이어서 더욱 정겨움을 준다. 양반길과 녹색길은 모두 오래된 집들과 이어져 있다. 그 오래된 집들은 모두 서당과 서원 같은 교육기능을 담당하거나 삶을 영위했던 흔적이 묻어 있는 고택들로 남아 있다.

‘안락정’은 양동마을 입구 동쪽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마루에서 안강들을 내려다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안락정은 경주 손씨 문중의 서당으로 여강 이씨 문중의 서당 강학당과 함께 양동마을에서 쌍벽을 이루는 서당이다. 손영순이 “내가 편안해하는 것은 야인의 편안함이요, 내가 즐기는 것은 야인의 즐거움”이라 말한 뜻에서 따온 글이다.

정자 뒤쪽으로는 담장을 쌓지 않아 성주봉 기슭으로 편안하게 자연과 동화되는 구조다. 마당에 감나무와 향나무를 심고, 작은 연못을 만들어 석가산을 꾸몄다. 정자에 ‘성산팔경’이라는 편액이 있는데 안락정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아름답다는 것을 설명한다. 관리사가 별채에 초가로 남아 있는 풍경이 관광객들을 머물고 싶게 한다.

‘강학당’은 여강 이씨 문중의 서당으로 지족당 이연상의 아들 경암 이재목의 뜻을 받들어 제자와 족친들이 1867년에 세운 강당이다. 국가급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들어서는 진입로가 아주 서정적이다. 강학당 뒤편에는 훈장이 거주했던 곳으로 아직 초가가 있다. 초가에서 내려오는 길목에서 서남쪽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마을의 구조와 안강들이 넓게 들어온다.

이언적의 동생 농재 이언괄을 기리고자 지은 집으로 양동마을에 남은 정자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심수정의 모습. 이언괄이 노모를 모시던 집으로 건너편 여강 이씨의 종택 향단이 훤하게 내려다보인다.
‘심수정’은 마음을 고요한 물과 같이 가지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양동마을에서 남은 정자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건축물이다. 낮은 위치에 있지만, 앞마당을 나와 서남쪽으로 보이는 마을 전경이 좋다. 마당에 오래된 향나무가 용트림하듯 하늘로 치솟는 형상을 하고 있어 건축물의 기품을 높여준다. 대청에 심수정 편액을 비롯한 심수정기, 이양재, 삼관헌, 함허루 등의 현판이 걸려있다. 심수정기 현판 뒤 기문에 이언적의 아우로서 도리를 다했던 이언괄을 기리고자 심수정을 지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두곡고택. 양동마을 후손들이 지금도 거주하는 살림집이라 더욱 정겨움을 느낄 수 있다.


‘영당’과 ‘재실’은 동쪽 언덕의 두곡고택 옆에 자리하고 있다. 영당은 수졸당 이의잠의 영정을 모신 건축물이다. 1636년 하양현에 세웠던 것을 1883년에 지금 위치로 옮겨지었다. 이의잠이 하양 현감으로 재직할 때, 선정을 베푼 데 대한 보답으로 현민들이 사당으로 지었다. 영당과 두곡고택으로 오르는 마을 입구에는 오래된 우물이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동호정’은 이언적의 넷째 손자인 수졸당 이의잠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916년에 지은 집이다. 동호는 이의잠의 별호다. 두곡고택과 영당의 재실 사이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조금 오르막길을 오르면 서남향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향정’은 온암군수를 지낸 이향정 이범중이 1695년에 지은 집으로 집 뒤에 오래된 향나무 두 그루가 있다. 동쪽의 향나무에 단옷날 그네를 매달아 민속놀이를 즐겼을 정도로 향나무가 우람하다. 안마당이 넓고 집 둘레에 쌓은 담장을 따라 오솔길이 나있는데, 대나무숲과 찔레꽃 등의 야생화들이 피어 인상적이다.

양동마을 북쪽으로 경계를 이루는 마을이 안계리다. 안계리와 양동마을 사이에 거대한 안계저수지가 사철 많은 양의 물을 품고 있어 둘레길이 자연 녹색길이 된다. 저수지 둘레길로 조성된 녹색길은 폭이 좁아 승용차도 비켜가기 어려워 갓길에서 한편이 기다려야 교행할 수 있다.

녹색길은 울창한 숲으로 덮여 한여름에도 시원하다. 영천댐에서 끌어온 물의 낙차를 이용한 수력발전소가 있고, 맞은편 보리밭 가운데 두 기의 고인돌이 있다. 안계리 끝 지점에 얼굴 안면이 크게 훼손된 석불좌상과 대규모 석탑부재 등이 있어 신라시대 안계사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양동마을의 양반길과 녹색길은 걸어 다녀야 제 맛이다. 중요 건물만 보면서 걸어도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자세하게 살피면서 공부 삼아 다니려면 1박2일로도 부족할 정도로 고택이 많다. 녹색길 끝으로 이어진 안계저수지 둘레길은 위험해 자전거 진입을 금지하고 있다.

◆체험행사

양동마을에서는 매일, 특히 매주말에 재미있는 체험행사가 진행된다. 마을 가운데 체험관에서 경주문화원이 예약을 받아 양동마을 전통문화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경주문화원이 양동마을에서 1박2일 과정으로 진행하는 숙박체험은 양동마을 민가에서 숙박하면서 마을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하게 한다. 인사하기와 손님맞이 등의 전통예절체험, 충효 동화극을 통한 충효마음 이해하기, 직접 두들겨보는 국악체험, 쌀과 조청으로 약과 만들기, 주령구 만들기, 마을 문화재를 돌아보며 살아있는 역사를 공부하는 문화재답사 등이 일반적인 체험행사다. 야간 길놀이 체험은 누구나 신명나게 참가하는 프로그램이다. 봄부터 11월까지 진행되는 체험행사에는 경주문화원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접수한다.

민속문화체험 한마당에서는 손명주 무형문화재로 등록된 명주마을의 기능인들이 농촌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누에고치 풀기 체험을 진행한다. 이와 함께 맷돌 돌리기, 지게 지기, 새끼 꼬기, 화전 굽기 등 20여 종의 전통체험을 경험하게 한다. 전통의례 체험을 하면서 매년 6월과 9월에는 체험관 앞에서 전통혼례가 진행되는 현장을 볼 수 있다.

국악한마당은 마을주민과 관광객들이 한데 어울려 한바탕 춤사위를 벌이며 신명나는 무대를 꾸민다. 지난 5월26일에 진행한 행사에 이어 10월에도 한차례 국악한마당 행사가 열린다.

양동마을에서는 방문객들을 위해 체험행사 외에도 자체적으로 생산한 농산물로 전통적인 방법으로 유과, 조청 등의 친환경 제품을 생산해 전시 판매한다. 유과 또는 유밀과는 한국의 전통 과자인 한과의 일종으로 곡물과 꿀을 반죽해 식물성 기름에 튀겨서 만든다. 찹쌀가루에 술을 넣고 반죽하여 찐 다음 꽈리가 일도록 저어서 모양을 만들어 건조한 후에 기름에 지져 낸 다음, 조청이나 꿀을 입혀 다시 고물을 묻힌다. 양동유과는 마을에서 직접 생산한 질 좋은 곡물로 만든 전통음식으로 맛이 연하고 단맛이 독특하다. 양동유과는 마을입구 전시관에서 전시 판매해 사계절 간식거리와 제수음식 등으로 많이 판매되고 있다.

◆민박과 식당

양동마을에는 전통한옥 체험을 할 수 있는 민박이 10곳 운영되고 있고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도 5~6곳이나 된다. 사진은 흥선대원군이 곡차를 즐겼다는 우향다옥.
양동마을을 둘러보는 일은 힘이 들어도 걸어서 다녀야 하는 체험이라서 허기를 느끼기 쉽다. 그러나 허기를 달래줄 식당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마을 입구 삼거리에 옛날 구판장처럼 꾸며진 작은 가게에서 계절에 관계없이 아이스크림과 과자류,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는 순대, 어묵 등을 맛볼 수 있다.

제대로 된 한정식과 농산물을 이용한 부침류 등 누구든지 입맛에 맞는 음식을 척척 내놓는 식당들이 줄을 서 있다. 칼국수, 라면, 수제비, 파전, 된장찌개를 먹을 수 있는 곳도 있어 순식간에 허기진 배를 달랠 수 있다.

우유소프트콘, 커피구름, 초코구름, 미숫구름 등의 순한 음료, 아메리카노, 엄마가 만든 식혜, 약과 등을 판매하는 카페도 더러더러 있다. 주당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동동주, 다양한 전통 담금주도 식당별로 구색에 맞춰 내놓는다.

마을 곳곳에 있는 식당들이 골목에서도 쉽게 읽을 수 있게 큼직하게 쓴 메뉴들을 답사길에 눈여겨 보았다가, 각자가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는 식당으로 찾아가면 된다.

양동마을을 제대로 보려면 민박하는 것이 좋다. 초원식당, 우향다옥 등은 식당과 민박을 겸하고 있어 편리하다. 취경재, 남산댁, 산수풍경, 연화민박, 물봉동산 황토방, 매산고택, 낙원별방 토속적인 이름의 민박집이 즐비하다.

물봉동산이나 인근 언덕에 올라 전통한옥마을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거나,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며 노을지는 전통마을의 풍경은 환상적인 작품으로 저절로 시구를 떠오르게 한다.

민박이든 당일 체험 답사든 양동마을 전통문화체험은 뙤약볕이 작열하는 여름도 좋고, 북풍이 몰아치는 겨울도 괜찮다. 누구나 고향 같은 양동마을에서의 양반걸음 답사길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최고의 힐링이 될 듯하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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