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한 불심·탁월한 지도력…오록원 대종사, 30년간 직지사 ‘대가람’ 일신

발행일 2018-07-16 19:55:59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50> 오록원 대종사

1997년 토크토무세브 키르키즈스탄 국립대 총장으로부터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수여받는 모습.


그의 명망은 세계로 전해져 스리랑카 국립프리베나대학ㆍ일본 대정대학(大正大學)ㆍ용곡대학(龍谷大學)ㆍ키르키즈스탄 국립대학 등에서 그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다. 특히 1995년 10월 직지사 30년 중창불사 회향을 위해 개최된 국제학술세미나에는 연인원 5만 명이 운집하는 대성황을 이뤘다. 고희를 맞은 1997년 4월에는 세계불교학계의 석학들이 52편의 주옥같은 논문들을 엮어 ‘한국불교의 좌표’라는 기념학술논문집을 봉정했다. 1999년에는 직지사 문도회가 ‘오녹원 스님 학연기’를 엮었고 2002년에는 동국학원에서 그의 연설문과 법문을 편찬해 ‘불교와 교육문화’라는 책자를 간행했다.

그는 2002년말 동국학원 이사장직을 사임하고 직지사로 돌아온 뒤로도 조계종 원로의원으로서 종단의 대소사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2004년 4월에는 사형인 관응당(觀應堂) 지안 대종사(智眼 大宗師)를 이어 직지사 조실로 추대돼 후학들의 귀감이 됐다. 이후 직지사 명적암에 은거하며 말년을 보내다 지난해 연말 명월당에서 입적했다. 세수는 90세였고 법랍은 77세였다. 열반하면서 그는 후사에 대한 당부도 문도들에 대한 한마디 유훈도 남기지 않았다.

그의 행장기를 쓴 파계사 조실 도원(道源)대종사는 그의 이같은 입적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직지사 기왓장 하나 벽돌 한 장이 곧 스승의 진신이고 노구에도 한치 흐트러짐 없는 일상이 곧 스승의 유훈이며 세간과 출세간을 종횡무진하면서 보살행을 실천했던 발자취가 곧 스승의 비문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불가에선 개구즉착(開口卽錯)이란 말을 즐겨 쓴다. 표현하는 순간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녹원스님 스스로 당부와 유훈을 남기는 자체가 오히려 후인들에게 혼란스럽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도원스님의 행장기에서처럼 그가 삶을 영위했던 모든 것이 이미 모든 것을 말하고 남긴 것일지 모른다.

그는 모든 공직에서 은퇴한 직후 직지사에 돌아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소회를 남겼다.

“한 점 후회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인간은 누구나 완벽하게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돌아보면 후회도 많고 아쉬운 점도 많습니다. 다만 제가 일했던 종단이나 학교 그리고 이 직지사에 큰 손해는 끼치지않았다고 자부합니다. 그나저나 이제는 이미 산중으로 돌아온 사람이니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고 자랑한들 무슨 영광이 있겠습니까?”

이같은 술회는 짐을 지고 먼 길을 걸어오다가 도착지에서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고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차마고도의 어떤 짐꾼 인생같은 담담함이 묻어있다. 후회도 자랑도 없는 맑고 고요한 마음은 난초꽃 향기같은 마음이 아닐까?

녹원 대종사의 법명은 인덕(人德), 자호는 녹원, 법호는 영허(暎虛)이다. 아버지 해주 오씨 세록(世祿)선생과 어머니 초계 변씨 철이(哲伊)여사와의 사이에 차남으로 출생했으며 속명은 인갑(仁甲)이다. 홍종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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