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전국 궁궐터 김천에 남아 “감문의 형제들이여 영원하라” 왕비 간절한 기도 들리는 듯

감문국의 마지막 통치자 금효왕(金孝王)은 망국의 비통함이 뼈에 사무쳤다. 나라를 잃으니 장군과 군사를 잃고도 장례를 치러주지 못하고, 오직 죄인으로 군사에 둘러싸여 전전긍긍할 뿐이었다.금효왕과 북방 출신의 왕비 장부인은 여러 읍락의 분열과 갈등을 막고 감문국을 강한 나... [2018.12.25]

뿌리 깊은 유교마을에 뿌리 내린 기독교 정신

안동은 경북 북부의 관문으로 내륙으로 들어서는 사방의 길이 다 열려있다. 20세기 초엽까지는 더욱 그랬다. 동쪽의 울진, 영덕에서 국토 안으로 깊숙하게 접어들려면 안동을 거쳐야 한다. 북쪽에서 남하하는 나그네들은 통상 두 가지 길을 선택하는데 영남좌로인 죽령을 넘어 ... [2018.12.18]

들불 속 주인 구하다 죽은 개 이야기…사람들 감동해 ‘구분방’ 이름 붙였다네

바람이 불었다. 떨어진 나뭇잎이 고분군을 덮고 있었다.고분군 사이 길에 쌓인 떡갈나무 낙엽을 밟는 발걸음이 포근했다. 낙엽은 나뭇잎의 주검이다. 앙상한 겨울나무 가지들이 떨어진 낙엽을 보고 있었다. 봄이 오면 다시 푸른 잎 돋아나 녹음의 한때를 출렁일 것이다. ‘순환... [2018.12.11]

우뚝 솟은 ‘범종루’ 절의 위용·규모 자랑 정체 모를 보물 품어 호기심 자아낸다

의성 다인(多仁). 사람이 좋고 훌륭한 사람이 많이 난다는 인재의 고장이 지금은 급격한 노령화로 해마다 인구가 줄어드는 전형적 농촌 마을이 됐다. 다인면 소재지에서 대곡사로 가는 이십리 길은 겨울 날씨처럼 투명하고 건조했다.대곡사를 품은 비봉산(579m)은 풍수가들이 ... [2018.12.04]

‘5년 만에 남편과 사별’ 서씨부인 손그림 화사 이명기 덧그려 슬픈 이야기 짙어졌네

1795년 늦은 봄날, 들판의 보릿골마다 푸르름이 넘실거린다. 진달래꽃 진 산자락에서 송화가 희뿌옇게 날리고 개울가에 피어난 창포줄기에도 보랏빛 꽃대가 쏘옥 올라오고 있었다.여느 해 비길 바 없는 풍년을 예견하는 듯 남으로 팔공산을 기대고 있는 군위 효령고을의 산과 들... [2018.11.27]

단아한 모습으로 성리학 세계관 품어…김계행 선생의 고고한 선비정신 생각나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라는 용어가 있다. 2006년 특허청에 등록된 브랜드이다.21세기 안동만이 갖고 있는 정신문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그 단어 속에는 선비정신을 계승 발전한다는 자신감이 느껴진다.안동이 많은 서원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도 등록을 위한 ... [2018.11.20]

“쏘아서 맞지 않으면 자신 돌아보라”…중년의 궁시장이 되뇌는 ‘집궁제원칙’

포항시 북구 항도길, 좁은 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낮은 기와집, 그의 공방에서 김병욱 궁시장을 만났다.1962년생, 생각보다 젊은 중년이었다. 무형문화재라면 의레히 주름진 얼굴에 수염을 기른 연세 지긋한 분이리라는 나의 선입견이 빗나갔던 것이다.경상북도는 지난 10월1... [2018.11.13]

갈색 적삼 걸친 목조각장 자신과 닮은 불상 어루만지며 “세월 가는대로 흐르듯 왔지요”

영천시 청통면 새학길 62. 지난 10월18일 경북무형문화재 제405호로 지정 받은 목조각장 조병현의 집이다. 문패는 물론 공방을 알리는 현판이나 길을 안내하는 입간판마저 따로 없다. 마을사람들에게 수소문하여 찾아간 그 집 앞에 이르자 순간 발걸음이 머뭇거려진다. ... [2018.11.06]

“오른손 내밀면 돌격 동채 떨어지지 않게 지켜라”…수백 명 겨루는 모습 장관이네“

당당하고 씩씩하며 호탕한 민속놀이가 경상북도 안동에 있다.용감하게 상대편을 헤치고 들어가야 하고 지혜롭게 대결한다. 손을 쓰지 않고 팔짱을 끼고 싸워야 하며 규칙을 어기지 않는다. 화랑의 고장에서 그 상무정신을 계승했으므로 당당한 모습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4호 ‘안... [2018.10.23]

편안한 하루하루 누구 덕일까…한쪽 눈 뽑히는 고문 당하고도 끝끝내 싸웠던 의병대장 있었지

“노병대(1856~1913)선생의 항일행적에는 남다른 면이 있습니다. 첫째는 유생 출신의 의병장이었다는 점이고, 둘째는 한쪽 눈을 빼어버리는 혹독한 고문에도 초지를 꺾지 않고 항거했다는 점이고, 셋째는 항일의 표현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점입니다.” ‘의병대장 ... [2018.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