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기나긴 게임 속 수능 성적은 작은 성패일 뿐

발행일 2018-12-06 19:21:52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간혹 우리는 인생을 게임(game)에 비유한다. 수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삶 속에서 선택의 순간과 더불어 의도한 방향이든 아니든 인과관계로 보이는 결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노력의 여부가 결과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예기치 못한 전개과정으로 낭패의 결과를 마주하기도 한다. 게임이라는 단어에 인생이라는 철학적 문제를 대입하는 순간 ‘어떤 삶이 가치로운가?’라는 원론적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게임의 기원에 대한 학설은 다양하다. 일상생활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설과 종교적 행위의 연장선상이라는 설 그리고 전쟁을 예비한 군사 훈련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등 나름의 타당성을 가진 이론들이 그것이다. 게임의 본질은 생존과 관련된 경쟁과 결과에 대한 획득이라는 점에서 전쟁과 관련된 기원설에 방점을 두고 싶다. 게임(game)의 영어 사전적 의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놀이’뿐만 아니라 경기, 운동, 승부, 책략, 농담 등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 중에서 필자는 유독 ‘사냥감’이라는 말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작은 물고기부터 거대한 맘모스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사냥감은 죽음을 염두에 두지 않는 생존을 위한 게임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부족이 보다 큰 범위의 국가를 형성하고 그 구성원들의 생존은 더 큰 영토와 더 많은 사냥감을 필요로 한 것은 분명하다. 부족 안에서 힘의 우위를 과시하던 단순한 경쟁을 벗어나 전쟁을 통한 전리품의 획득과 패전국 백성을 노예화한 고대 국가의 전통은 전쟁을 게임의 기원으로 보는 입장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더불어 현대 스포츠의 여러 종목에서 나타나는 전쟁 도구와 전쟁 기술은 이를 더욱 명확히 하고 있다. 실제적 전쟁이 가져오는 인류의 패망과 잔혹함의 현실대신 그 외적요소로서 흥미와 재미를 게임으로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게임(game)이라는 단어가 붙는 용어 중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치킨게임’이다. 한밤중에 도로의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미리 핸들을 꺾어 피하는 사람이 겁쟁이(chicken)로 취급받는 게임이다. 극단적으로 치닫는 상황을 전제로 한 부정적 의미의 용어지만 생존 본능을 드러내는 게임임은 분명하다.

교육 철학자 프뢰벨은 ‘놀이와 게임을 통해 아이의 영혼에 있는 것이 자유롭게 표현된다’라는 말을 한다. 유아 교육에서 이러한 접근은 일반화된 교수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더불어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흔히 우리는 게임하듯 공부를 즐기란 말을 쓰기도 한다. 지나친 경쟁의식에서 오는 압박과 좌절을 격려하고자 하는 의도임을 알기에 그들 또한 스스럼없이 받아들인다. 하지만 온전히 게임하듯 공부하는 학생들이 몇이나 될까 싶다. 게임의 법칙은 이미 승자와 패자 그리고 환희와 좌절로 구분해 오고 있지 않은가. 생존을 전제로 시작된 게임은 외형적 모습만 변했을 뿐 승전국이 가지던 전리품처럼 메달과 꽃다발 그리고 명예를 승자에게만 부여하고 있다. 노력한 과정에 대한 보상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수능 성적결과가 발표됐다. 학교와 학원들의 현장 스케치로 내보낸 메스미디어의 영상과 기사에는 이미 서울소재 상위권 대학들의 예상 커트라인과 지원 가능 점수를 쏟아내고 있다. ‘불수능’이라던 올해 시험에서도 환호하는 학생과 울음을 터뜨리는 학생의 모습이 대비된다. 누구를 칭찬하고 누구를 위로해야할지 현장에 있는 필자마저 혼동스럽다. 그들이 받아들일 절망과 상실감을 잘 알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인생이라는 긴 게임 속에서 단지 작은 패배였음을 인정하라고만 전하고 싶다.

영어전문학원 에녹(Enoch)원장김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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