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불러야 꽃이 된다… 영어, 암기 전에 발음부터

발행일 2018-02-21 20:06:36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김시욱의 교육이야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예쁜 시구(詩句)로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글임이 틀림없다. 이 글은 1952년 진주지역 시인들로 구성된 ‘시와 시론’ 동인지에 발표된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詩) 가운데 일부다. 누구나 한 번쯤 손 편지에 하트모양의 그림을 붙여 연인에게 보냈을 시구 임이 틀림없다.

일반적으로 이 시를 독자들은 낭만적이고 연애적인 심상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시대를 겪으며 살아온 시인에게 ‘꽃’은 역사에 대한 처절한 혐오와 허무감의 또다른 상징적 표출임을 알게 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의미와 무의미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경계선상에 있는 언어(시어)의 모호함과 존재론적 의미는 꽃이라는 시와 김춘수 시인의 수많은 시어들을 통해 기호화(signature)되어 나타난다. 즉 감각적 실재라기보다는 존재론적 의미의 실재가 꽃이 드러내는 숨겨준 모습인 것이다.

‘꽃’이라는 시를 통해 언어의 역할과 존재론적 의미를 교육 방법론적 입장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학기를 앞둔 시점이라 학원가는 신규 학생들의 상담이 많은 시기이다. 물론 한 자녀 가정이 시대의 흐름인 탓으로 예전만큼 기대할 순 없겠지만 학습에 대한 학부모와 학생들의 고민이 적지 않은 시기임은 분명하다.

필자 또한 이 시기에 재수생과 재학생들을 마주하며 학습 상담을 하다 보면 놀라운 사실에 부딪치게 된다. 독해(읽기)가 주가 되고 있는 현 입시 상황 속에서 그 기초가 되는 영어단어 습득은 기본적 전제 조건이다. 그것은 언어라는 기호를 받아들이는 인식행위라는 점에서 시구에 나타난 “이름을 불러준다(발음)”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 대부분이 단어의 발음행위를 무시한 채 단순히 활자화된 알파벳을 그림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어는 의미부여 행위의 매개체란 점에서 이름 부름은 사물을 이해하고 의미로서 받아들이는 첫 단계이다.

이름부름(발음)을 통해 의미가 형상화되는 것임을 이해하지 못한 채 수 십개 혹은 수 백 개의 단어 암기를 요구하는 학습 커리큘럼은 결국 허상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영어단어를 그림처럼 기억하려 하는 학생들의 주된 원인이 발음 기호를 읽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파닉스 수업, 영어 선행 수업 폐지, 생활영어 우선정책 등의 논쟁 속에서 실제적 당사자인 우리 학생들은 기초적 영어 음운의 소리마저 구별하지 못한 지경이 되었다는 건 누구 탓으로 돌려야 할지 답답할 따름이다.

최근 기억을 담당하는 우리 두뇌의 해마 기관을 언급하며 단어집을 홍보하는 수많은 광고를 본다. 연상장치를 통해 기억을 보다 오래도록 유지하려는 방법론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언어가 의미로서 받아들여지는 기본적 과정을 이해시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필자의 이러한 걱정이 차라리 쓸데없는 기우이길 바라는 심정으로 학부모님들에게 오늘 하루 권하고 싶다. 늦은 시각, 학교에서 그리고 학원에서 돌아온 아들딸에게 ‘꽃’이란 시를 함께 읊조리며 영어 단어를 한번 읽어 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또 우연히 필자가 상담한 학생들만의 특이성이길 바라며 힘들었던 현실 부정의 일상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김춘수 시인을 생각하며 진로 현장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고민해 본다.



김시욱

영어전문학원 에녹(Enoch)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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