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향한 마지막 준비 뛰기보다 천천히 살필 때

발행일 2018-10-18 19:31:3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김시욱의 교육이야기



인간은 수없는 경쟁 속에서 살아간다. 그것은 또 하나의 게임이다. 엄격히 승자와 패자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게임이다. 무승부는 용납되지 않는 제한된 시간과 한정된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치열한 승부가 우리 삶의 일상이다.

게임의 또 하나의 의미인 ‘사냥감’이란 말에서 나타나듯 이미 생존과 더불어 고대로부터 시작된 희소자원에 대한 획득이 명예와 부와 권력을 보장하는 경쟁구도로 고착화된 것은 아닐까 싶다. 물론 오락 그리고 시합이나 경기의 의미를 부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경쟁으로 나타나는 경기들을 우리는 흔히 인생에 비유한다. “야구는 9회 말 2아웃 이후부터”라는 말로 인생역전을 강변한다.

마라톤은 우리 인간의 일생에 비유하기도 한다. 오르막과 내리막 그리고 다양한 코스로 이루어지는 마라톤은 인간한계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규칙을 어기지 않는 이상 승자가 비난받는 일은 없다. 승자는 세상을 구한 영웅처럼 시상대 위에서 포효한다. 심판이라는 게임의 지배자가 있지만 그의 역할이 가장 최소화한 것이 육상경기가 아닐까 한다.

육상경기는 필드경기와 트랙경기로 나뉜다. 멀리 그리고 높이를 측정해서 우위를 가르는 것이 필드경기라면 트랙경기는 주어진 거리를 누가 더 빠르게 달리는가에 달려있다. 쉽게 말해 ‘누가 더 빨리 뛰느냐’가 관건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근력을 키우고 시합에 앞서 수십 번 예정된 거리에 맞춰 기록을 관리한다. 빙상경기 또한 예외는 아니다. 오직 경쟁자들의 최고 기록을 앞서야만 시상대 위에서 영광의 웃음과 감격의 눈물을 흘릴 자격을 부여받는 것이 바로 속도 경기인 트랙경기인 것이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룰도 단순하다. 출발 시 부정행위나 트랙 이탈을 제외하면 그 어떤 규칙도 제한도 없다. 심판의 주관적인 판단이 게임에 영향을 주는 불합리함도 없다. 참으로 단순하게 출발의 총성을 듣고 오직 목표점을 향해 달리면 되는 게임이 바로 육상의 트랙경기다.

간혹 중장거리 선수들은 달리며 이웃하는 트랙의 경쟁자를 견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단거리 시합에선 그것은 차라리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철저히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결과라기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일 뿐이다.

1908년 올림픽 경기에 남자 종목으로 처음 채택된 경보경기는 트랙경기의 새로운 영역이 아닐까 싶다. 빠르기를 기준으로 우승자를 가린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뛰는 것이 아니라 걸어야만 한다는 점에서 흔히 트랙경기에 쓰이는 ‘달리기’는 아니다.

특히 한쪽 발은 항상 땅에 닿아 있어야만 한다는 점에서 엄격히 말해 빨리 ‘걷기’ 시합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경기가 아닐 수 없다. 엄연히 뛰는 것과 걷는 것은 그 용도가 다름에도 빨리 걷기를 강요하듯 한 이 시합을 보노라면 안타깝기조차 하다. 일그러진 얼굴과 뒤뚱대는 특이한 모양의 뒤태는 경보선수들에 대한 연민이 생기게 한다.

앞만 보고 뛰어야 할 때가 있다면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살펴보며 소통해야 하는 것 또한 삶의 한 부분이다. 경쟁만이 삶의 전부일 수 없듯이 게임이 가지는 오락과 즐거움의 목적으로 즐겨야 할 때도 있다.

짧지 않은 수험생활이었지만 긴 인생의 여정 속에서 그것은 단거리에 불과하다. 편법이나 불법이 아닌 공정한 룰 속에서 경쟁할 그대들에게 찬사와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 번쯤 돌아서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느리게 걷기를 부탁한다. 빠뜨린 부분이 없는지 주변과 소통하며 마지막 피치에 대비하길 바래본다.



김시욱

영어전문학원 에녹(Enoch)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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