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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봉평신라비 기념관 “1500년전 신라 역사를 말하다”

울진 봉평신라비 기념관을 가다

황대웅 울진문화원장이 봉평신라비 기념관을 찾은 학생들에게 비문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죽변의 찬 바닷바람이 영하의 날씨와 함께 쌩쌩 불어오는 지난달 17일,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들고 울진군 죽변면 봉평신라비 기념관을 찾았다. 날씨 만큼이나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봉평신라비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8년 11월 국보로 지정됐다. 이후 10여년에 걸친 경북 북부 유교문화권 관광 개발 사업으로 2011년 봉평신라비 기념관이 개관했다.

1988년 1월20일 경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2리 118번지 논바닥에서 경작인이 객토작업 중 하나의 돌덩이를 발견하게 된다.

그저 돌덩이라고 생각해 하천변에 옮겨둔 것을 당시 이장 권모씨가 정원석으로 활용하기 위해 흙을 털어내던 중 돌에 글씨가 쓰여있는 것을 확인하고 신고함으로써 이 돌덩이가 1500년 전 신라시대의 비석임이 알려지게 된다.

황대웅 울진문화원장은 “봉평신라비는 발견 당시 가장 오래된 신라비로 삼국사기에 나오는 신라시대의 지명과 관등 명칭 율령 제도 등이 기록으로 새겨져 있어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 받아 국보가 됐다”고 말했다.

그 후 신라비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그해 11월 국보 제242호로 지정됐으며 비석의 내용에는 이 석비가 524년 신라 법흥왕 11년에 세워졌으며, 비문은 524년 1월 25일 법흥왕을 비롯한 14명의 중앙 고위귀족들이 모여 논의해 그 전 해에 거벌모라(울진지역)와 남미지촌이 이야은성에 불을 내여 성을 에워싼 사건에 대해 대군을 동원해 마무리해 그 결과를 집행한 뒤 비슷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경고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이 석비 하나가 역사적인 가치를 가지는 이유는 문헌기록에는 보이지 않는 당시 노인법을 비롯해 ‘삼국사기’의 기록 입증, 법흥왕때의 율령의 내용, 신라 6부의 존재, 17관등의 명칭, 울진지역의 옛 명칭, 지방관명, 칡소를 잡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의식 등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에 이 비석은 아주 귀중한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죽변고 배성휘(2학년) 학생은 “가까이 살면서 이렇게 자세히 듣고 눈으로 보고 취재도 하니 단순한 돌이 아니라 대단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실감했다”며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 안타깝고 지역민과 관광객들이 더 많이 찾아 우리 문화재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지역 청소년으로서 더 노력해야겠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기념관을 찾은 이나라(인천 해원중 2학년) 학생은 “소중한 국보가 이런 시골에 묻혀 있었다는 게 신기하고, 이렇게 와서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돌아가서 친구들에게도 자랑하겠다”고 말했다.

전시관은 울진 봉평리 신라비의 실물과 내용을 전시한 제1전시실 삼국시대의 비 모형을 전시한 제2전시실, 국보 보물 등의 모형을 한반도 모양으로 조성한 비석공원과 비석거리가 야외에 조성돼 있으며 가족이 함께 탁본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관도 마련돼 있다.

울진 봉평 신라비가 세상에 더욱 알려져서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게 돼 이 봉평 신라비가 국보로써의 가치를 더 빛냈으면 한다.

역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우리 곁에 있음을 알고 그것을 소중히 해야 오늘을 더욱더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미래를 밝혀나가는 빛이 된다고 생각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글ㆍ사진=경북교육청학생기자단

죽변고등학교 2학년 강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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