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애라” vs “둬라”…낙동강 보 어디로 가나

발행일 2017-07-25 20:07:2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낙동강 경북구간 보를 가다

칠곡보


사람은 강에 기대어 산다.

채집생활과 어로생활을 하던 선사시대부터 쭉 그래 왔다.

역사시대 이후로는 강 주변에 경작지를 개발하고 모여 살기 시작했다.

인류 4대 문명이 큰 강 유역에서 발달한 이유다.

첨단산업과 스마트한 생활이 중심이 된 현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더욱 그렇다.

생명과 직결되는 식수와 공장을 돌리는 데 필요한 공업용수는 물론, 삶의 질을 윤택하게 하는 것도 모두 물이다.

이 물은 현대에는 강이나 댐, 보 등이 공급한다.

최근 4대 강 사업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농민 등 많은 사람들이 4대 강 사업으로 조성된 보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환경단체 등은 생태계를 위협한다며 보를 철거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창간을 맞아 논란의 중심에 선 보를 찾았다.

그 가운데서도 낙동강 상류인 상주, 낙단, 구미, 칠곡보 등을 둘러보고 낙동강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4대 강 사업과 낙동강의 보

4대 강 사업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한국형 녹색 뉴딜 사업이다.

낙동강과 한강, 금강, 영산강 등에 22조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16개의 보를 건설하고 하천 모래를 파냈다.

2009년 본격적인 사업에 들어간 이 사업의 목적은 수질개선과 가뭄ㆍ홍수예방이다.

4대 강 사업 과정에서 강 주변 농경지도 리모델링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됐다.

수위가 높아지는 만큼 애초 수위에 맞춰 용수를 하는 농경지의 바닥 높이를 높여야 했기 때문이다.

MB 정부 이후 4대 강 사업과 관련한 많은 지적이 있었지만, 보수와 녹조를 줄이고자 수문을 여는 것 외 큰 변화는 없었다.

이 변화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급격히 일어났다.

지난 5월1일 현 정부가 강정 고령보 등 낙동강 4개 보와 영산강 죽산보, 금강 공주보의 수문을 개방해 수위를 낮추고 나머지 보에 대해서도 수계 변화, 수질, 수량 등을 민관합동 조사ㆍ평가단에 맡겨 관찰ㆍ평가하도록 한 것.

보 철거 등을 주장해 온 환경단체와 어민은 환영을, 수변 개발에 주력해 온 지자체와 가뭄 해갈에 도움을 받은 농민들은 반발하고 있다.

특히 ‘녹조라떼’라는 신조어를 만든 낙동강 유역은 찬반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그 중 낙동강 상류지역의 상주보와 낙단보, 구미보, 칠곡보는 아직은 굳게 닫힌 보문을 열지 않은 채 민관합동 조사ㆍ평가단의 조사ㆍ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 낙동강 상류 4개 보는 2009년 10월27일 일제히 공사에 들어가 상주보와 구미보, 칠곡보는 2012년 6월30일에, 낙단보는 부실문제로 이보다 4개월 늦은 10월30일 완공했다.

소수력발전을 겸하는 다기능 보인 이들 4개 보는 물고기가 상류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어도와 통합관리센터, 전망대 등을 갖추고 있다.

4개 보에 각각 설치된 소수력 발전시설은 연간 1만5천㎿h 내외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이는 3천여 명이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유역면적은 칠곡보가 가장 넓은 1만1천40㎢이며 구미보(9천557㎢), 낙단보(9천221㎢), 상주보(7천407㎢) 순이다.

칠곡보는 유역면적이 넓은 만큼 계획 홍수량도 초당 1만3천200㎥로 가장 많다. 구미보와 낙단보는 초당 만2천500㎥, 상주보는 1만1천100㎥다.

또 저류량은 칠곡보가 가장 많은 7억5천300만t, 구미보 5억2천700만t, 낙단보 3억4천700만t, 상주보 2억7천400만t을 각각 가둘 수 있다.

이들 4개 보에는 시설물 외에도 10여 개 내외의 양ㆍ배수장과 취수장을 갖고 있다.

환경단체는 느린 유속 때문에 발생하는 녹조라떼 등 수질오염 외에 부실시공으로 인한 안정성을 들어 보 철거 등을 주장하고 있다.

◆발길 끊긴 전망대와 수상레포츠체험장

수질개선과 가뭄ㆍ홍수 예방을 위한 목적 외 4대 강 사업은 강 주변을 생활과 여가, 관광, 문화, 녹색성장 등이 어우러진 다기능 복합공간으로 조성하고자 추진됐다.

이에 따라 낙동강 4개 보에도 전망대가 들어섰다.

물로 가득 찬 낙동강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보 개방 이후 달라진 강의 모습을 보려고 찾던 사람들은 이제 전망대를 찾지 않는다.

접근성이 떨어지는데다 관심을 끌 만한 콘텐츠도 없기 때문이다.

현 정부 들어 일부 보 문 개방과 철거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낙동강변 개발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거나 개발사업을 하려던 지자체들에 비상이 걸렸다.

낙동강 상류 4개 보 인근인 상주시와 구미시, 칠곡군 등은 보 건설로 늘어난 수량을 이용한 강변개발을 추진해왔다.

상주시는 상주보와 낙단보 일원에 각각 12억 원과 47억 원을 들여 수상레저센터를 구축하고 도남동 송악공원 일원에 32여 억 원을 투입해 국민여가캠핑장과 낙동강 물놀이장을 조성하고 있다.

또 구미시는 낙동강 둔치를 활용한 생태수변관광 인프라 조성을 위해 660억 원이 투입되는 ‘7경6락 리버사이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52억 원을 들인 수상레포츠체험센터가 개장했다. 올해 안에 낙동강변에 물놀이장, 오토캠핑장, 다목적레포츠시설도 문을 열 예정이다.

칠곡군도 낙동강변을 이용해 덕산수변레저공원과 칠곡보오토캠핑장, 체육시설인 흰가람둔치 등을 조성한 상태다.

강변개발을 통한 시민 여가공간 확보와 관광인프라 조성은 현재 진행 중인 민관합동 조사ㆍ평가단의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해서 지자체들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가뭄해갈과 관광인프라 조성에 긍정적

지난 6월 말 구미시 무을면 안곡리 가뭄 현장을 찾은 윤종호 구미시의회 산업건설위원장이 낙동강 옥성 양수장에서 끌어 온 물이 관로를 따라 흐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지난달 말 논바닥이 바둑판처럼 갈라진 구미시 무을면 안곡리 가뭄현장을 구미시의회 의원들이 찾았다.

때마침 낙동강 옥성양수장에서 끌어올린 농업용수가 관로를 타고 콸콸 쏟아지기 시작했다.

안곡1리에 사는 안용수(64)씨는 “가뭄이 심해 농사를 포기하려 했는데 멀리 낙동강에서 물을 끌어온다고 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아무튼 이젠 살았다”고 한시름 놓았다.

이는 낙동강에서 끌어 온 농업용수가 선산들판은 물론, 낙동강에서 10여㎞나 떨어진 무을면 안곡리 논에까지 공급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장마와 태풍 등 집중호우기간에 저수지와 댐, 보 등에 물을 모았다가 이듬해 농사에 사용하는 구조인데 2014년 이후 장마 등 여름철 강수량이 줄고 있어 가뭄 대비가 필요하다.

특히, 급속한 온난화 등으로 점차 강수량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물을 가둘 수 있는 대형 물그릇이 절실한 상황인 점도 보를 존치해야 할 이유 중 하나다.

관광인프라 조성에도 낙동강 상류 4개 보는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칠곡보 상류에 조성된 칠곡오토캠핑장은 이미 많은 국민의 휴식처가 됐고, 구미시도 곧 낙동강 체육공원 오토캠핑장을 개장할 예정이다.

또 구미시는 낙동강변에 전국 최고 높이의 번지점프대와 짚라인 등 놀이시설을 조성해 관광객들을 유치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강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

낙동강 어부 이경모씨가 빈그물을 들고 한숨짓고 있다.
아주 어려서부터 낙동강 부근에 살았다는 배선호 구미시 농촌지도자회 회장(62).

그가 기억하는 낙동강은 바짝 말라버린 강이다.

“물 구경을 할 수 없었고, 그나마 안동댐이 생긴 후 유지수가 흐르는 정도”라고 갈수기 낙동강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요즘 녹조라고 아우성인데 갈수기가 되면 강바닥이 움푹 파인 소(沼)에 녹조가 끼여 형편없었다”며 “물이 많지 않아 그렇지 당시에도 녹조는 있었다”고 말했다.

낙동강 보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긴장했다.

배 회장은 “환경단체들이 보 철거를 이야기하는데, 현재 상태에서 수위를 낮추거나 보를 철거하면 가뭄이 심해질 뿐만 아니라 농사를 짓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4대 강 사업을 하면서 농경지 리모델링을 통해 논이나 밭의 높이를 많이 높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수위가 낮아지면 농업용수를 양수하거나 지하수 높이가 낮아져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며 “농업인 입장에선 보가 꼭 필요한 시설”이라고 말했다.

그는 낙동강변인 신기동 자신의 논에 물을 대며 “올 가뭄에 낙동강에서 물을 끌어온 덕분에 선산들판이 온통 푸른빛을 띠었다. 낙동강 보가 없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보 건설 이후 태풍이나 홍수 피해도 줄었다고 그는 주장했다.

배 회장은 “사실 감천(낙동강과 선산읍에서 합류) 변은 태풍이나 홍수 때마다 피해를 당하였는데, 유속이 빨라지면서 4대 강 사업 후에는 한 번도 피해가 없었다”고 말했다.

“요즘 낙동강을 보면 ‘강이 강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보를 존치하되 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미보 상류 선산읍 독동 앞 낙동강변에서 만난 이경모(60)씨의 어깨가 축 처져 있다.

10여 년 동안 물고기를 잡았지만, 올해만큼 고기가 안 잡힌 해가 없다는 것이 그의 푸념이다.

그는 “매일 아침 미리 쳐둔 그물을 걷으러 배를 타고 강으로 나가지만, 빈 그물일 때가 잦다”며 “오늘 새벽에도 잉어 10마리와 동자개 조금이 전부”라고 말했다.

그가 기억하는 낙동강은 붕어와 메기, 동자개, 쏘가리, 장어 등이 잡히던 민물 어자원 풍부하던 어장이다.

어부 이씨는 “요즘 육식성 토종 물고기 치어를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물론, 토종 물고기가 산란하더라도 배스와 블루길 등 외래어종들의 먹이가 되고 만다.

그는 구미보 상류와 하류, 두 곳에서 조업을 하고 있다.

그는 “보 건설 전보다 물의 탁도가 흐린 편이고 큰 이끼 벌레 등이 그물에 걸려 일일이 털어내야 한다”며 “구미에 내수면 어업 허가를 받은 어부가 모두 7명인데 사정이 모두 비슷하다”고 전했다.

이씨는 “나도 농사를 짓는 사람인데 보를 철거해야 한다느니 하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면서 “낙동강 토종물고기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경북도와 지자체가 외래어종을 잡으면 보상해주는 방안을 마련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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