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스물다섯 자전거 행상 청년, 공구유통의 리더가 되다

최영수 크레텍책임 사장

대구ㆍ경북 경제가 시련기를 지나고 있다. 지역 산업의 한 축을 형성하던 섬유산업이 무너진 후 다른 산업이 안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에서도 기발한 아이디어로, 또 뚝심으로 정상을 향해 달리는 기업도 여럿 있다. 이들 경제인들의 고난과 역경, 비전을 조명해 지역 경제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자 한다.

2년에 한번, 3월 말이면 전국의 공구상들이 책 한권을 손꼽아 기다린다.

드라이버, 망치, 전동 및 용접 공구 등 국내외 모든 ‘연장’의 특징과 표준 가격을 총 망라한 ‘한국기계공구종합카탈로그’가 바로 그것이다. 공구유통업계에서는 ‘바이블’로 통한다.

이 책의 발간자는 누구일까. 바로 대구 중구 인교동에 자리 잡은 중견기업 ‘크레텍책임(주)’ 최영수 사장이다.

20대 약관의 나이에 회사를 창업한 뒤 40여년이 흐른 현재는 국내 최대의 공구산업유통업체로 성장했다. 명실공히 업계 1위다. 연간 외형은 작년말 기준 3천119억원. 2015년 5천억원, 2020년 1조원 매출이 목표다.

남다른 성공 스토리가 궁금했다. 그래서 지난 19일 크레텍책임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크레텍책임의 전신은 ‘책임보장공구상사’다. 최 사장은 25세이던 1971년 직원 한 명을 데리고 회사를 창업했다. 초기 자본금은 40만원. 출발은 볼품없고 초라했다.

초창기 자전거로 대구지역 골목을 구석구석 누비며 공구를 팔았다. 고생없는 일이 어디 있을까. 열심히 앞만 보고 뛰었다. 진정성을 바탕으로 신뢰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주위에서는 그를 ‘믿을 수 있는 공구를 파는 청년’으로 불렀다.

1980년대, 고객의 믿음을 중시하는 최 사장의 ‘신뢰경영’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회사는 급성장했다.

1993년 지금의 본사가 있는 인교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본사 옆 물류센터 건물은 옛 삼성상회의 국수공장 터를 사들여 지은 것이다. 삼성그룹의 발원지에 터를 잡은 효과일까. 탄탄대로, 그야말로 순풍에 돛단 듯 거칠 것이 없었다.

최 사장은 “크레텍책임 본사에서 불과 10m 떨어진 곳이 바로 고 이병철 회장이 1938년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를 설립한 자리입니다”며 “풍수학상 길터가 아닐까요”라고 환하게 웃었다.

성공한 사람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메모가 아닐까. 우스갯소리로 적는 자만이 생존한다는 일명 ‘적자생존’.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책상 위 노트를 자주 뒤적였다. 1달에 한권씩, 1년이면 열두권을 사용한단다. 또 회사 곳곳에는 그의 친필 메모가 붙어있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좋은 구절을 보면 직원들에게 전해 주고 싶어요” 인터뷰 내내 이웃집 아저씨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편안한 느낌을 풍긴다. 인물사진을 찍는데 꽤 애를 먹었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척척 포즈를 만들어내는 정치인, 기관단체장들과는 영 딴판이다.

그는 영어공부를 참 꾸준하게 했다. 1980년대 무역에서 쓰라린 경험을 하고 나서다. “영어를 못하니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있나요. 온통 걸림돌이죠” 1987년 11월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한달에 20시간을 할애했다. 자신과의 이 약속은 2007년까지 20년간 지켜졌다.

단어와 문법책이 너덜너덜, 새까맣게 손때가 묻었다. “처음에 1년만 공부하겠다던 영어 공부를 20년간 했으니 참 머리가 안 좋은 모양입니다. 하하”

크레텍책임이 40년간 공구산업용품 유통의 최강자이자 개척자 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던 데는 대표인 최 사장의 남다른 안목과 경영이념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출발초기 누구도 생각 못했던 공구산업용품 유통이라는 미개척분야를 발견한 것도 그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관련 산업을 키우기 위해 해외업체 벤치마킹, 인재영입 등을 과감히 시도한 것도 그다.

이전까지만 해도 공구업은 아무리 잘해도 직원 50명 이상 규모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속설이 있었다. 일종의 ‘비관적 체험담’이다.

하지만 그는 기존의 벽을 깨버리고 싶었다. 오기가 발동했단다. 해외에서 유사 업종의 기업을 찾아 선진 경영시스템을 도입했고, ‘지식경영’을 내세워 석·박사 및 대기업 출신 인재들을 과감하게 채용했다.

이런 노력으로 직원은 100명, 200명 등으로 늘어나 현재는 500여명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는 앞으로 북한에 공구를 보내고 싶다고 했다. “공구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초적인 것입니다. 공구는 지렛대 역할을 하지요. 산업을 일으키는데 10배, 100배의 역할을 하니까요. 그래야만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나아지지 않을까요”

그가 되물었다. “어떻게 하면 북한지역에 공구를 보낼 수 있을까요?” 자전거 행상에서 공구 유통산업의 리더로 성장하는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처음 공구행상을 시작할 당시 크레텍책임 최영수 사장의 나이는 스물다섯. 기름때 묻은 작업복, 공구상이라는 주목받지 못한 직업인 탓에 어깨는 축 처졌다. 당시 고민은 ‘계속 이런 모습으로 살 것인가’ 였다.

어느날 은행거래를 위해 도장을 파러 가는 길에 묵직한 그 무엇인가가 뇌리를 스쳤다고 한다.

“최·영·수! 내 이름 석 자에 책임을 지자! 지금 나의 모습은 이렇지만 지금 내 나이 두 배가 되는 쉰 살에는 한국 최고가 되자”

그래서 도장에 ‘Korea First Man 최영수’라고 새겼다. 은행 아가씨는 그를 보고 피식 웃었지만 창피할 건 없었다. ‘훗날 내가 한국 최고가 꼭 될 테다’라는 생각으로 오히려 가슴이 벅찰 지경이었다고 회고했다.

장사를 시작할 때부터 그의 아이디어는 남달랐다. 대구 원대동 일대에서 자동차 정비에 필요한 공구를 미군부대 야전 백에다 넣고 시외버스 운전사들에게 ‘공구가 필요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으면서 공구를 팔았다. ‘앉아서 고객을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찾아가자’는 방식을 택했다. 소위 ‘고객 주문식 배달 판매’였다.

대구 시내를 매일 한 번씩 돌아야 했다. 자전거에 팔 공구를 싣고, 또 물건값으로 받은 폐품 고물을 실었는데, 한번은 짐무게가 300kg에 육박했단다.

“그때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운동을 많이 해 다리 힘이 세졌습니다. 지금도 나는 젊은 직원들과도 닭싸움을 하면 서너 명과 해서도 이길 자신이 있어요”  ◆엉뚱한 사고(思考) 뭉치 1973년 초 겨우 장사의 재미를 알아가고 있을 무렵, 부모님의 결혼 성화에 마땅한 신붓감도 없던 그로서는 답답할 노릇이었다. 고민 끝에 희한한 생각을 했다. 지역 신문에 신붓감을 찾는다는 구혼광고를 냈다는 것.

제목은 ‘숯구이 검둥이 총각 바보온달의 아내 될 자는 없는가?’ 당시 기름때가 시커멓게 묻어 마치 산골에서 숯 굽는 사람 못지않게 검정이 묻어 있었던 자신을 글로 표현한 문구다.

하지만 의외의 결과가 발생했다. 광고가 나가자마자 술집아가씨부터 회사원, 백화점 점원 등 전화가 빗발쳤다.

또 1980년에는 국내에 없던 빗트 드라이버를 개발한 일이 있었다. 좀 더 재미있고 기발한 방법으로 제품을 알리고 싶었단다. 그래서 당시 최고의 화백이었던 만화가 신동우 화백을 찾아갔지만 그를 만나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다는 것. 경상도 ‘무대포’ 정신으로 몇 시간을 집 앞에서 꼼짝도 않고 기다렸다. 그의 열정에 감동해서 일까. 신 화백은 흔쾌히 만화작업을 수락했다는 것이다. 그는 말했다. “일을 저지르고 별난 짓을 즐겼습니다. 무엇이든 재미있게 남들이 하지 않는 방식에 정답이 있을 수 있거든요” ◆인재 욕심 “삼류리더는 자기의 능력을 사용하고, 이류리더는 남의 힘을 사용하고, 일류리더는 남의 지혜를 사용한다” 중국어 고서 ‘한비자’에 나오는 문구다. 최영수 사장은 인재 욕심에 끝이 없다. 일은 사람이 한다는 생각에 흔들림이 없다.

별난 사람을 많이 데리고 있었고, 그 별난 사람들의 지혜가 많은 일을 해냈다고 회고했다. “예전에 만난 어떤 분은 재주는 특출한데도 어딜 가더라도 1년을 못 버텼어요. 이 사람을 데려와 철물점 수준이었던 작은 공구상을 전문점 수준으로 끌어올렸지요”

그는 인재를 구하기 위해서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를 뛰어다닌다. 중요 부서에 친인척을 채용하는 여는 회사들과는 달리 이 회사는 전적으로 실력이 우선이다.

서울은 물론 일본유학생 출신, 중국인 등도 상당수다. ‘사업은 인재다’라는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 명도 빠질 수 없는 것 크레텍책임의 임직원이라면 한 명도 빠짐없이 하고 있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에서도 오전 8시20분이면 어김없이 진행되는 아침체조는 이제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PT체조 180회, 팔굽혀펴기 30회, 다리강화운동 30회다. 또 하나는 극기 훈련으로 무박2일로 진행된다. 20㎞ 무박행군을 기본으로 갯벌훈련, 서바이벌게임, 해상훈련, 래프팅 등으로 진행된다.

빡센 훈련 뒤에는 남다른 스킨십이 있다.

최영수 사장은 오만원 신권이 발행되었을 때에도 회사 정문 앞에서 직접 모든 직원들에게 신권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2010년 월드컵 때는 한국 월드컵 대표팀이 8강에 진출할 경우 직원 1인당 10만원씩의 보너스를 지급하기로 했고 16강에 진출하자 5만원씩의 보너스를 지급했다.

2007년과 2009년에는 금강산과 전라도 기행을 다녀왔고 올해 역시 3억여원의 예산을 들여 전 직원이 일본여행을 다녀왔다.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며 크레텍책임은 앞으로도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40년 이상 크레텍책임의 독특한 ‘정’을 중시하는 기업문화와 이를 이끈 최 사장의 경영후계구도에 대해서도 만반의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

차세대 전산시스템 개발에 관련해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은 더 이상 발전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과도 동일하다. 그 변화보다 더 빨리 변화하고 대응해야만 성장할 수 있다. 우리 회사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차세대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는 것도 남들보다 한발 앞서 변화를 준비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최 사장은 어떠한 새로운 도전과제에도 자신이 있다고 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과 기술이 생기지만,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못할 수밖에 없는 변명과 핑계만 생깁니다. 산업이 발달할수록 공구유통시장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긍정적인 사람만이 위기를 기회로, 실패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윤용태 기자 yyt@idaegu.com 국내최초 ‘공구백과’ 체계화 성공
1993년부터 대구 중구 인교동의 ‘크레텍책임(주)’ 본사 전경. 올해로 창사 42주년을 맞았다.
최영수 크레텍책임 사장은 “자전거 행상으로 시작해 40년 넘게 공구유통업이라는 하나의 산업분야에 주력함으로써 노하우와 전문성을 획득했고, 이는 회사 성장에 밑거름이 됐다”며 ‘한 우물을 파라’는 교훈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중소기업은 우리 경제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경제의 중추이지만 자금과 경영능력이 부족해 주력상품시장의 축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소기업에 ‘뼈와 살이 되는 말을 해달라’고 부탁하자 “최고경영자의 기업가 정신과 혁신의지가 중요하다. 중소기업은 최고경영자의 역량에 의해 기업의 성패가 크게 좌우된다”고 강조했다.

최 사장은 창업 이후 줄곧 ‘최고의 상품을 공급해야겠다’는 마음을 일분일초도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최고경영자의 의지와 비전이 확고해야만 조직구성원들의 열정이 살아난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믿음이다.

또 장기적인 안목과 투자도 성공요인 중 하나다. 크레텍책임의 성공비결 중 하나는 단기적인 수익보다 미래에 대해 장기적인 투자를 했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은 열악한 재무구조로 인해 작은 실패를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또한 기업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성취하기 어렵다. 그래서 학교나 연구소 등 외부기관과의 긴밀한 협력체계의 구축과 강화가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사람에 대한 투자는 그에게 절대적 믿음이다.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내부고객 만족 없이는 외부고객 만족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많은 중소기업들은 경영환경이 악화되면 당장 종업원에 대한 인건비나 복리후생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안달입니다. 하지만 임직원들을 위한 관심과 배려는 장기적으로 기업 생산성과 매출증대로 귀결됩니다. 자본과 노하우가 부족한 중소기업에서는 ‘사람’만이 유일한 경쟁력이기 때문입니다”

윤용태 기자 yyt@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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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습니다”윤용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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