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공구의 바이블 ‘크레텍 카탈로그’ 를 아십니까

<1> 크레텍책임 최영수 사장

크레텍책임 최영수 사장. 공구상의 바이블로 통하는 ‘한국기계공구종합카탈로그’는 그의 뚝심으로 탄생했다. 전국의 공구상들은 2년에 한번씩 3월에 나오는 그의 카탈로그를 기다린다.


대구ㆍ경북 경제가 시련기를 지나고 있다. 지역 산업의 한 축을 형성하던 섬유산업이 무너진 후 다른 산업이 안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에서도 기발한 아이디어로, 또 뚝심으로 정상을 향해 달리는 기업도 여럿 있다. 이들 경제인들의 고난과 역경, 비전을 조명해 지역 경제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자 한다.

2년에 한번, 3월 말이면 전국의 공구상들이 책 한권을 손꼽아 기다린다.

드라이버, 망치, 전동 및 용접 공구 등 국내외 모든 ‘연장’의 특징과 표준 가격을 총 망라한 ‘한국기계공구종합카탈로그’가 바로 그것이다. 공구유통업계에서는 ‘바이블’로 통한다.

이 책의 발간자는 누구일까. 바로 대구 중구 인교동에 자리 잡은 중견기업 ‘크레텍책임(주)’ 최영수 사장이다.

20대 약관의 나이에 회사를 창업한 뒤 40여년이 흐른 현재는 국내 최대의 공구산업유통업체로 성장했다. 명실공히 업계 1위다. 연간 외형은 작년말 기준 3천119억원. 2015년 5천억원, 2020년 1조원 매출이 목표다.

남다른 성공 스토리가 궁금했다. 그래서 지난 19일 크레텍책임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크레텍책임의 전신은 ‘책임보장공구상사’다. 최 사장은 25세이던 1971년 직원 한 명을 데리고 회사를 창업했다. 초기 자본금은 40만원. 출발은 볼품없고 초라했다.

초창기 자전거로 대구지역 골목을 구석구석 누비며 공구를 팔았다. 고생없는 일이 어디 있을까. 열심히 앞만 보고 뛰었다. 진정성을 바탕으로 신뢰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주위에서는 그를 ‘믿을 수 있는 공구를 파는 청년’으로 불렀다.

1980년대, 고객의 믿음을 중시하는 최 사장의 ‘신뢰경영’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회사는 급성장했다.

1993년 지금의 본사가 있는 인교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본사 옆 물류센터 건물은 옛 삼성상회의 국수공장 터를 사들여 지은 것이다. 삼성그룹의 발원지에 터를 잡은 효과일까. 탄탄대로, 그야말로 순풍에 돛단 듯 거칠 것이 없었다.

최 사장은 “크레텍책임 본사에서 불과 10m 떨어진 곳이 바로 고 이병철 회장이 1938년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를 설립한 자리입니다”며 “풍수학상 길터가 아닐까요”라고 환하게 웃었다.

성공한 사람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메모가 아닐까. 우스갯소리로 적는 자만이 생존한다는 일명 ‘적자생존’.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책상 위 노트를 자주 뒤적였다. 1달에 한권씩, 1년이면 열두권을 사용한단다. 또 회사 곳곳에는 그의 친필 메모가 붙어있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좋은 구절을 보면 직원들에게 전해 주고 싶어요” 인터뷰 내내 이웃집 아저씨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편안한 느낌을 풍긴다. 인물사진을 찍는데 꽤 애를 먹었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척척 포즈를 만들어내는 정치인, 기관단체장들과는 영 딴판이다.

그는 영어공부를 참 꾸준하게 했다. 1980년대 무역에서 쓰라린 경험을 하고 나서다. “영어를 못하니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있나요. 온통 걸림돌이죠” 1987년 11월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한달에 20시간을 할애했다. 자신과의 이 약속은 2007년까지 20년간 지켜졌다.

단어와 문법책이 너덜너덜, 새까맣게 손때가 묻었다. “처음에 1년만 공부하겠다던 영어 공부를 20년간 했으니 참 머리가 안 좋은 모양입니다. 하하”

크레텍책임이 40년간 공구산업용품 유통의 최강자이자 개척자 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던 데는 대표인 최 사장의 남다른 안목과 경영이념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출발초기 누구도 생각 못했던 공구산업용품 유통이라는 미개척분야를 발견한 것도 그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관련 산업을 키우기 위해 해외업체 벤치마킹, 인재영입 등을 과감히 시도한 것도 그다.

이전까지만 해도 공구업은 아무리 잘해도 직원 50명 이상 규모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속설이 있었다. 일종의 ‘비관적 체험담’이다.

하지만 그는 기존의 벽을 깨버리고 싶었다. 오기가 발동했단다. 해외에서 유사 업종의 기업을 찾아 선진 경영시스템을 도입했고, ‘지식경영’을 내세워 석·박사 및 대기업 출신 인재들을 과감하게 채용했다.

이런 노력으로 직원은 100명, 200명 등으로 늘어나 현재는 500여명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는 앞으로 북한에 공구를 보내고 싶다고 했다. “공구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초적인 것입니다. 공구는 지렛대 역할을 하지요. 산업을 일으키는데 10배, 100배의 역할을 하니까요. 그래야만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나아지지 않을까요”

그가 되물었다. “어떻게 하면 북한지역에 공구를 보낼 수 있을까요?”

윤용태 기자 yyt@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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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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