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떡’ 육아휴직…“수당 챙겨준다며 퇴사 강요”

<3> 멀기만 한 일과 가정의 양립

2017.05.18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일ㆍ가정양립 정책은 지역민이 체감하기 어렵다.<br> 대구일가정양립지원센터가 지역 기업체들을 상태로 일ㆍ가정양립 지원에 대한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br>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일ㆍ가정양립 정책은 지역민이 체감하기 어렵다.
대구일가정양립지원센터가 지역 기업체들을 상태로 일ㆍ가정양립 지원에 대한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


#1. 대구 수성구의 한 업체에서 근무하는 30대 여직원 A씨는 최근 육아휴직을 하려고 하자 회사로부터 ‘일을 그만두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라고 강요받았다.
A씨의 업무 공백 기간동안 대체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업체는 A씨에게 퇴사각서를 쓰면 육아휴직수당을 챙겨주겠다며 회유했다.

#2. 대구지역 한 유통업체의 40대 근로자 B씨는 강도 높은 업무에 입사 후 단 한 번도 퇴근을 제시간에 해본 적이 없다.
자정이 넘어서 귀가하는 때도 허다했다.
휴일에도 밀린 업무를 처리하려면 회사로 향해야 했다.

첫 아이의 나이도 헷갈린다던 B씨는 결국 가족들의 성화에 일을 그만뒀다.


대구지역 내 일ㆍ가정 양립 기업문화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지역 근로자들은 육아휴직을 하려면 10여 년간 몸담았던 일자리를 떠나거나 강도 높은 업무 탓에 일과 가정을 저울질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2008년부터 ‘가족친화 사회환경 조성 촉진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면서 일ㆍ가정 양립 정책을 시작했다.
이에 중앙행정기관, 지자체, 공공기관, 지방공사ㆍ공단의 가족친화기업 인증이 의무화됐다.

그러나 중견기업 이하인 지역업체에는 법의 효력이 미치지 않아 지역에서는 사실상 정부 정책을 체감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여성회 관계자에 따르면 육아휴직의 대가로 퇴사를 강요받은 30대 여직원 A씨의 사례는 대구에서는 이미 관례며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
지역 의료계에서는 간호사들이 순서를 정해 임신을 하는 ‘임신순번제’가 당연시 되는 등 각종 비인간적인 관행이 자리 잡고 있다.

남은주 대구여성회 대표는 “동구의 모 기업 여직원은 임신하자 자리가 화장실 옆으로 옮겨졌다”며 “이러한 기업들의 만행이 여성을 대상으로 특히 심하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분위기에 휩쓸린 탓인지 대구지역 육아휴직 사용비율은 수도권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고용노동부의 산업별, 규모별 사업체 수 및 종사자 수에 따르면 대구지역은 144만8천483명의 근로자가 있다.
이중 여성 근로자는 59만1천651명으로 이들 가운데 0.3%에 해당하는 2천30명만이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남성의 경우 85만6천832명 중 단 69명(0.01%)이 사용하는데 그쳤다.

반면 서울의 여성 근로자 중 육아휴직자는 175만6천271명 중 3만4천358명으로 2%가량이다.

이에 대해 지역 일ㆍ가정양립 전문가들은 국가가 지역 기업체들을 대상으로 일ㆍ가정 양립 시스템을 확립해 기업체가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 상황은 기업체의 횡포를 고발한 근로자의 신분이 그대로 노출되는 등 신고를 매우 꺼리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대책으로 △컨설팅, 직장교육 등을 통한 기업체 인식 전환 △정부의 가족친화기업 인증 대상 확대 △가족친화정책 이행 여부에 따른 기업체 상벌제도 시행 등을 꼽았다.

엄기복 대구일가정양립지원센터 실장은 “대구는 수도권보다 일ㆍ가정 양립에 대한 정서가 매우 뒤처져 있다”며 “가정친화기업문화를 잘 유지하는 기업에는 성과보수를 주고 불이행 기업에는 불이익을 주는 등 정부의 유연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아람 기자 aram@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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