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눈으로 밤 지새운 포항 시민들…전국 곳곳서 구호물품 쇄도

발행일 2017-11-16 21:06:06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흥해실내체육관 가보니

16일 흥해실내체육관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전날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이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김진홍 기자 hos825@idaegu.com


포항 강진 발생 후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 포항시민이 대피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에는 이재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체육관의 광경은 참담했다. 일회용 돗자리에 담요를 덮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이재민이 대부분이었다.

◆15일 오후, 떠올리기 싫은 날이 기억

거동이 불편한 유창동(70)씨는 지난 15일 발생한 지진을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말했다. 그는 “어젯밤에 집 유리창 2장이 부서지는 등 긴박한 상황이었지만 한쪽 다리가 불편해 쉽게 대피하지 못했다”며 “또다시 이 같은 일이 일어날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긴박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또 “대피소에 도착해서도 무슨 일이 발생할까 봐 의족을 끼고 잠에 든다. 장애인을 위한 재난상황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고 하소연했다.

이재민의 숙소가 된 흥해실내체육관은 지진을 떠올리며 불안해했다. 지진 발생 후에도 여진이 계속 됐기 때문에 이들의 불안감은 더 커져만 갔다.

수능을 코앞에 앞둔 수험생에게는 더욱 끔찍한 하루였다.

고3 수험생인 이유정(포항중앙여고)양은 “다른 지역 학생들은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속상하다. 보시다시피 체육관에 있는 학생들은 공부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며 “친구 중 한 명은 마음이 불안해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아 울기도 했다”고 속상한 심정을 전했다.

◆지진 이후 북새통 이룬 흥해실내체육관

갑작스러운 자연재해로 흥해실내체육관에서 생활하게 된 수백 명의 이재민은 열악한 환경에 노출돼 있다.

이재민들은 전국재해구호협회로부터 받은 응급구호세트(담요, 간소복, 속옷, 양말, 칫솔, 세면비누, 면도기, 수건, 화장지, 에어베개 등)로 언제 끝날지 모를 체육관 생활을 시작했다.

체육관 강당과 2층 관중석 자리 등 곳곳에 돗자리를 펴놓고 놀란 마음을 달랬다.

특히 5.4 강진 이후에도 계속된 여진 탓에 시민의 얼굴은 수척했다. 한 시민은 영문도 모른 채 엄마에게 칭얼대는 자녀에게 장난감을 손에 쥐어주며 달래기도 했다. 불안에 떨고 있는 부인의 손을 잡아주는 노부부의 모습도 보였다.

이날 낮 12시가 됐지만 먹거리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았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거나 일회용 컵에 담긴 쇠고기국밥이 전부.

마땅한 밥상도 없는 터라 바닥에 내려놓고 먹거나 미리 받은 구호물품 박스를 밥상 삼아 끼니를 해결했다.

이재민들이 씻을 수 있는 공간도 부족했다. 때문에 체육관에 있는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양치와 세수밖에 하지 못했다.

흥해에서 온 황정래(71ㆍ여)씨는 “재해구호물품을 받는 날이 올 줄 몰랐다”며 “앞으로 이와 같은 상황이 재발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온정의 손길 이어져

지진 발생 후 흥해실내체육관에서 생활하는 이재민을 위한 온정의 손길이 이어졌다.

16일 흥해실내체육관에는 수십여 곳의 단체에서 이재민을 찾아 위로했다. 먼저 이동통신사 3사에서 체육관을 찾아 무료와이파이를 긴급 설치했다. 또 콘센트 등이 부족하다는 점을 알고 무료 휴대폰 충전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들의 온정은 이재민에게 ‘가뭄에 단비’나 마찬가지였다.

대피소에 무료 와이파이가 설치돼 이재민은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 등으로 지루함을 달랬다.

이재민의 건강을 위해 지역 병원도 무료 의료봉사에 나섰다. 좋은선린병원은 이날 오전 10시에 체육관을 찾아 소화불량, 찰과상 등으로 불편을 겪는 이재민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를 실시했다.

또 롯데백화점 포항점에서는 물과 라면, 이마트는 담요 2천 장과 간식거리를, 대한적십자사에서 식수와 떡 등을 지원했다.

특히 KB손해보험은 흥해읍사무소에 필요 물품이 무엇인지 물어본 후 담요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담요 300개를 공수해 배부했다.

현대제철도 이재민이 필요한 물품이 무엇인지 파악하고자 현장답사를 나왔다.

비영리단체인 사랑의 밥차는 5일 정도 식사를 제공할 계획이다.

한편 같은 이재민이지만 이웃과의 따뜻한 정을 나누는 모습도 눈에 보였다. 이재민 김은희(49ㆍ여)씨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국밥을 건네주고 수시로 불편함이 없는지 물었다.

김씨는 “아파트에 거주하는데 대피령이 떨어져 어젯밤에 오게 됐다. 이미 발생한 피해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걱정은 접어두고 연로하신 노인들이 따뜻한 밥이라도 편하게 먹을 수 있게 도와드리고 있다”고 주위를 훈훈하게 했다.

신헌호 기자 shh24@idaegu.com

김현수 기자 khso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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