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피해 없는 ‘좋은 땅’…용이 승천하는 모습 닮았구나

발행일 2016-06-20 01: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3> 달서구 성당동

원화여고 내에 있는 동암 서상일 선생 상. 서상일 선생은 비밀결사 청년단체 조직, 광복단 조직 등을 통해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두류공원, 성당못 등 녹지 공간과 오랜 보훈 역사를 간직한 대구시 달서구 성당동. 성당동은 두류공원을 중심으로 한 문화ㆍ레저의 중심지이자 서부정류장과 도시철도 1호선이 통과하는 교통의 요충지다. 또 학교타운을 형성하는 달서구의 교육중심지역이기도 하다.

성당동의 원래 위치는 지금의 문화예술회관 자리 일대로 과거에는 상댕이 또는 성댕이로 불렸다. 1910년부터 성당동으로 불렸는데 유래는 크게 두가지로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이곳이 길지로 인명 피해가 없는 좋은 땅이란 뜻이다. 성당못을 중심으로 한 산의 모습이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닮았다 해 성당으로 불렸다한다.

또 다른 유래는 80여년 전 현재 두류산 서쪽 대성사에 천주교 별장이 들어서면서 성당이 있었다고 해 성당동으로 이름지어졌다는 설도 있다.

당시 천주교는 박해를 받으며 대한제국 말까지 이어오다 일제 식민지 하에서 천주교 별장이 대구지역 독립운동 장소로 발각돼 일본 경찰에 의해 강제 철거, 폐쇄됐다. 1960년대 두류산 공원개발로 순환도로가 개설될 때까지 그 터가 남아있기도 했다.

이와 함께 현재 북구 검단동에 있는 도축장이 1950년대 말부터 1970년 초까진 현재의 두류수영장이 있는 성당못 북동쪽 기슭에 있었던 만큼 곱창전문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기도 했다.

성당동은 1895년 고종 32년에 시행된 지방제도 개혁이후 일제 식민지 시작까지는 경상도 41개군 중의 하나인 대구군의 달서면에 속해 있었다.

이후 1938년 10월 대구부의 행정구역 확장으로 달성군 달서면의 10개 동이 대구부로 편입됐지만 성당동은 달성군의 성서면에 포함됐다가 1963년 1월 서구 담당구역으로 조정됐으며 1988년 1월 서구 성당동에서 달서구 성당동으로 재편돼 현재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올해말에는 성당1ㆍ2동 복합청사가 전 대구남중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준공이 예정이 돼 있는 만큼 주민의 편의가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성당동에는 과거 보훈과 관련된 역사도 담고 있다. 두류공원 안에는 6ㆍ25전쟁 당시 주한미군 후방기지 사령관으로 재임한 E.J 메카우 소장의 전공과 전쟁직후 빈민구제사업 및 질서유지 등을 위해 남긴 공훈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가 있다.

또 원화여고 내에는 비밀결사 청년단체 조직, 광복단 조직 등을 통해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동암 서상일 선생 상도 자리하고 있다.

전경태 성당동장은 “성당동은 두류공원이 인접하고 7개의 초ㆍ중ㆍ고등학교가 모여있는 살기 좋은 주거환경을 갖춘 동네로 올해 말 성당동 신청사로 동 주민센터가 이전하면 주민에게 보다 나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살기 좋은 동네다”라고 말했다.

김우정 기자

kwj@idaegu.com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