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철 극작가 “살아움직이는 역동성이 희곡의 매력이죠”

발행일 2017-07-25 19:16:1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29> 안희철 극작가



안희철 극작가는 희곡이 시와 소설과 함께 문학 3대 장르 중 하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희곡을 통해 관객들이 재미를 느끼고, 새로운 가치관 또는 세계관을 보고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대 위 조명은 어느 아파트 516호의 내면을 속속들이 비춘다. 516호는 폭력과 억압을 일삼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몹쓸(?) 권력이 횡행하는 우리 사회를 비춘다.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참상이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지만 집에는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가족들이 있다. 무대 위 가장 높은 곳의 쇼파는 아버지 규환의 공간이다. 이야기는 쇼파에서 내려온 아버지의 발을 가족들이 씻겨주면서 극에 달한다.

안희철 극작가가 쓴 연극 ‘아비, 규환’이다. 그는 사회적 문제, 권력의 폐해, 계층 간의 갈등 등을 고스란히 담고자 했다. 연극은 “고도의 상징성, 암시와 비유로 한 차원 높은 예술성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으며 제34회 대구연극제에서 대상을 차지했고 지난달 열린 제2회 대한민국연극제에 대구 대표로 출전해 단체상 부문 금상을 받았다.

지역에서 가장 잘나가는 극작가로 꼽히는 그는 2001년 부산일보와 전남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해 극작가로 이름을 알린 이후 문학인이자 연극인으로서 대한민국 연극계를 이끌고 있다.

◆문학인인 동시에 연극인

“머릿속에 있던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관객들의 울고 웃는 모습이나 배우들이 연기하고 스스로 감동 받는 모습과 마주하면 희열을 느낀다.”

자신의 작품 속 인물들과의 만남은 다른 장르에서는 좀체 볼 수 없는 일일 터. 안 극작가가 희곡을 선택한 이유였다.

그의 삶에는 문학인보다 연극인의 삶이 먼저 찾아왔다. 학창시절부터 배우의 삶을 동경해 왔기에 고교 졸업 후 방송연예과에 입학한 그였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배우보다 더 매력적인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가진 재능을 더욱 뽐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찾기 시작한 것이다. 단 연극 무대를 떠나지 않는 범위에 있어야 했다. 고민 끝에 다다른 것이 문학인이 되는 것이었다. 무대 전체를 아우르는 역할을 하면서 하나의 월드를 창조해 내는 극작가의 삶을 그리기 시작했다.

1990년대만 해도 대구에는 문예창작과가 있는 대학이 없어 광주로 떠났다.

전공으로 희곡을 결정한 것은 함축적인 시, 정적인 소설과 달리 살아있다는 것이 그대로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연극은 문학으로서의 가치있다. 시간이 흘러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고 대본 연습을 하고, 연기를 해 무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 강하게 이끌렸다.”

군대에 가서는 다시 연극을 했다. 크리스마스나 부처님오신날 등을 맞아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을 맡고, 주연을 곧잘 해내 포상으로 휴가를 받곤 했다.

그는 “군 제대 후 서울 대학로에서 잠시 보조 출연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왜 이걸 반복하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복학해 극작가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998년 ‘오늘의 문학’ 신인상 수상을 신호탄으로 2001년 부산일보와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신춘문예에 희곡 분야가 있는 신문사 6곳 가운데 두 곳에서 당선된 것.

신춘문예 희곡 당선자들의 작품을 엮은 희곡집에 안 극작가의 희곡 두 편이 나란히 실렸고, 전국 연극계에 이름을 알렸다.

◆희곡 잘 모르는 이들 많아 안타까워

국내에서는 기록을 찾기 쉽지 않을 만큼 다작의 희곡을 써내고, 작품 다수를 무대에 올렸다.

2002년 대구시립극단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 각색을 시작으로 이듬해 4월 동화세탁소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2005년 5월에는 대명동 시대를 여는 첫 작품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우전 소극장 개관 기념으로 신춘문예 당선작인 ‘굿타임’이 각색돼 창작극으로 무대에 오른 것.

2007년부터는 뮤지컬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대구에 본격적으로 뮤지컬 무대가 많아진 것은 대구시가 2007년 뮤지컬과 함께 미술, 오페라, 음악, 연극 등 기초예술분야의 지원 사업을 펼치면서부터다. 극단마다 활발하게 창작 뮤지컬들을 생산해 내기 시작한 것도 이 때 부터였다.”

이 밖에 무용, 패션쇼, 오페라, 주제공연 대본 등 연극뿐 무대극과 관련된 대본을 써냈다.

그는 희곡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에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희곡은 시, 소설과 함께 문학의 3대 장르 중 하나로 꼽히지만, 희곡이 무엇인지 조차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시나 소설처럼 즐기며 찾아 읽기 보다는 교과 과정에서 겨우 접하는 정도가 다일 것이다. 특히 시나리오나 방송드라마 대본은 순수 문학이 아닌 상업문학 등으로 밀려 안타깝다.”

지난해 말에는 지역 내 예술가, 예술단체와의 협업을 위해 대명공연문화거리에 공연예술보호구역 아트벙커(대구 남구 현충로 262 소재)를 열기도 했다. 100석 규모의 소극장이지만 지역 내 예술가, 예술단체에 무대에 오를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민이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안 극작가는 연극계를 이끌어갈 후배 극작가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희곡은 문학성과 연극성을 가지고 있다. 극작가는 논리적인 구조 속에서 맞춤법, 띄어쓰기, 우리말의 기본을 바탕으로 써야 한다. 최근 연극배우를 하다가 극을 쓰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연극성은 있지만 문학성이 없는 작품이 많아졌다. 신춘문예 등단을 준비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연극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 또는 세계관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관객들에게 그동안 보지 못한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다. 깊게 보고, 다르게 보려고 하는 것만이 아니라 비슷하게 보는 것 같지만 묘하게 다른 걸 볼 수 있도록 해 재밌게 보다가 ‘아 저럴수도 있겠다. 왜 나는 놓치고 있었지?’라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ㆍ사진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안희철 극작가 약력>

-대구 출생

-극단 초이스시어터 대표

-공연예술보호구역 아트벙커 대표

-대구연극협회 이사

-대명공연예술단체연합회 이사

-명지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수료

-1998년 ‘오늘의 문학’ 희곡 신인상

-2001년 ‘부산일보’, ‘전남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

-제2회 대한민국연극제 금상 ‘아비, 규환’(극단 고도)

-2007년 희곡집 ‘천국보다 낯선’ 출간

-대구예총 계간 ‘대구예술’ 편집위원

-대구문화재단 계간 ‘대문’ 편집위원

-대구시교육청 문예창작영재교육원 시나리오 강사

-계명대, 대구가톨릭대, 대구과학대, 대구한의대, 명지대 외래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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