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려상 - 이매의 발칙한 웃음 / 민경주

2017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2017.11.14



해가 길어 잠이 잘 오지 않던 어느 여름이었다.
학기가 마친 것을 기념해 친구들과 나는 ‘내일로’를 통해 6박 7일 동안의 기차여행을 떠났다.
20대의 특권을 잔뜩 누리자는 취지에 우리는 평소 가고 싶었던 여행지를 선택했고, 안동은 자연스레 그 코스 안에 들었다.
안동은 친구 A의 본가가 위치한 곳이라 놀러 간다면 안동찜닭을 비롯한 이것저것을 얻어먹을 수 있을 거란 당돌한 생각에서였다.
사실 그것 외에는 특별히 안동을 꼽을 이유는 없었다.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안동은 경북ㆍ경남에 사는 사람이라면 수학여행 등을 통해 자연스레 접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인상 깊은 것을 떠올리려 하면 그다지 생각이 나지 않는, 나에게 안동은 그런 곳이었다.
그랬던 친구들과 나는 오로지 안동찜닭을 바라보며 ‘내일로’ 여행의 4번째 코스인 안동역에 내리게 된다.

친구 A의 작은삼촌께서 사주신 안동찜닭 국물에 밥까지 말아먹은 뒤, 딱히 일정이 없는 우리에게 하회마을은 자연스럽게 들러야 할 코스가 되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때우자’는 마음으로 하회마을에 도착했을 때 설상가상으로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급히 비를 피할 곳을 찾았고 안동하회별신굿탈놀이를 곧 시작한다는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공연장은 오래된 전통가옥으로, 마당이 넓어 공연하기에 적합했다.
우리처럼 비를 피하다 공연장에 도착한 사람들이 점점 모이더니 저마다 자리를 잡고 공연을 볼 준비를 했다.

공연이 시작됐다.
탈을 쓴 배우들이 등장해 대사를 내뱉을 때마다 사람들은 얼굴을 활짝 피며 웃어댔다.
무대 뒤에선 장구, 꽹과리 등이 연주돼 무대의 흥을 돋웠다.
특히 배우들은 자신이 쓴 탈에 맞게 몸을 움직이고 대사를 뱉는데, 그것은 마치 그 탈에 빙의(憑依)가 된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공연과 무대가 분리된 서양 연극과 달리 안동하회별신굿탈놀이는 관객과 무대의 경계가 모호했고, 배우들은 관객의 참여를 유도해 공연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그렇다.
예상했던 것보다 안동하회별신굿탈놀이는 훨씬 재미있었다.

안동하회별신굿탈놀이는 제각각 다른 특징을 지닌 9개의 탈이 각자의 역할을 맡은 가면극이다.
내용은 양반과 선비의 위선과 무지를 폭로하고 중의 파계를 통해 당시 불교의 타락을 드러내면서 민중의 애환을 풍자적으로 그려냈다고 볼 수 있다.
탈은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움직일 수 있는 턱, 붙어있는 턱, 아예 턱이 없는 탈이 있다.
여기서 양반, 선비의 턱은 움직일 수 있어 사회적 지위에서 발언권이 자유로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반면 할미, 각시, 초랭이 등은 여성, 하층민을 상징하므로 턱을 전혀 움직일 수 없다.
마지막으로 턱이 아예 없는 탈은 이매탈로, 이매는 안동하회별신굿탈놀이에서 바보 하인역으로 나온다.
턱이 없어 고개를 젖히고 웃으면 입안이 훤히 보여 그가 정말 바보처럼 보이는데, 덕분에 이매는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특징을 보인다.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등장한 이매는 작중 내내 감히 양반과 선비에게 말할 수 없는 말을 직접 내뱉는다.
하지만 바보인 그를 어찌할 수 없는 양반과 선비의 상황이 너무나 희극적이다.
당시, 신분의 차이로 내뱉고 싶은 말을 내뱉지 못하고 삭여버린 분노와 울분의 응어리들. 이러한 고통을 감내하다 결국 미쳐버리면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민중들의 슬픔을 대변하는 인물이 바로 이매가 아닐까. 사회의 부조리함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통쾌하게 내뱉는 이매. 지금도 우리에겐 이매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때였다.
이매가 친구 A에게 시답잖은 질문을 던졌는데 내가 무심결에 대신 답해버렸다.
이매는 잠시 아무 말이 없다가,
“쟤 XX냐? 니 옆에 애한테 물은 건데 왜 니가 대답해? 하하하.”
순간 정적이었던 공연장이, 소나기가 산만하게 내리듯이 순식간에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고개를 젖히고 웃어댔고,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아, 당해버렸다.
이렇게까지 직설적인 줄은…. 이매는 만족한 듯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고 나는 이 자리를 박차고 싶은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그냥 바보처럼 웃어버렸다.

하회마을을 나오면서 기념품으로 이매탈 꼭두각시 인형을 샀다.
턱도 달리지 않고 옷도 볼품없지만 인형은 계속 밝게 웃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웃음이야말로 현실을 견뎌낼 가장 강인한 힘이다.
민중들은 괴로워하고 힘들어하기보다, 안동하회별신굿탈놀이를 만들어내 부조리한 현실과 상위층의 위선 등을 풍자하여 웃음으로 이끌어냈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우리는 안동하회별신굿탈놀이를 직접 볼 수 있으리라.
별 기대 없던 여행은 풍부한 경험과 생각을 가득 안고 끝이 났다.
그 뜨겁고 웃음기 많던 여름을 보낸 나는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가끔 힘든 일이 있을 때는 그를 떠올리며 웃음 짓곤 한다.
지금도 안동하회별신굿탈놀이는 안동 하회마을에서 볼 수 있다.
만약 아무런 생각 없이 안동을 들렀다 일정이 비어버렸다면, 하회마을을 들러보는 게 어떨까. 9개의 탈이 환한 웃음을 선사할 것이다.

“나는 더 성장할 것이며, 이번 기회를 발판삼아 도약할 것이다”
수상소감

못난 글을 급하게 써서 보낸 것 같아 마음이 찝찝했고 후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상 연락을 받고 난 뒤 역시 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동은 2015년 내 스무 살의 여름이 잠시 쉬다 간 곳이다.
그때 기차여행을 함께 했던 그 친구들은 지금 교사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글이 실린 신문을 받고 나면 제일 먼저 그 친구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우리의 스무 살 여름을 간직해 달라고. 
이매와 만난 뒤로 나는 이매와 관련된 시를 몇 편 쓰곤 했다.
그러고 나니 그가 내 가슴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더는 기억 속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서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뒤로 나는 속 편하면서도 날카롭게 살아왔다.
그는 나와 계속 함께할 것이며 나는 점차 더 성장할 것이다.
 
더 성장하겠다는 말은 더 좋은 글을 쓰겠다는 말과 비슷하다.
이번 기회를 발판삼아 도약할 것이다.
이매의 우스갯소리와 넘실거리는 발걸음을 유지하면서. 생뚱맞지만 이 자리를 빌려 다짐해 본다.
그리고 이 기회를 마련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1996년 출생
△2015년 기장고등학교 졸업
△2015년 단국대학교 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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