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려상 - 언총 / 정재순

2017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2017.12.05



혀의 위력은 대단하다.
세 치밖에 되지 않은 혀가 내놓는 말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기도 하고,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지 않던가.
언어는 소통을 위한 도구이다.
내 마음을 전하기도 하고,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위로와 사랑을 전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상처와 증오를 남기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꽃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이 활동하는 모임에서 불미스런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의 당사자들은 자신의 처신을 돌아보기에 앞서 염문을 퍼트린 자가 누구인가에 혈안이 되었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불똥이 튄 것이다.
그 속에 나도 들어 있었다.
점쟁이가 사진을 보고 지목했기 때문이란다.
소가 웃을 일이다.
마음을 열고 가깝게 지냈던 믿음만큼 실망도 컸다.

바람결이 뒷담화를 들려주었다.
남을 함부로 판단한 그들은 진실 같은 거짓말을 꾸며서 주변인들에게 퍼트렸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휴대폰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말을 눌러 참아야 했다.
몇 번을 두드린 끝에 그들과 마주 앉았으나 내 말은 자신들이 듣고 싶은 대로만 받아들였다.
뒷담화가 어쩌면 진실보다 몇 곱절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해명도 변명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잘못 쏜 화살 같은 입찬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히 지내고 있는 지금, 이상하게도 그 소문이 다시 돌았다.
언뜻언뜻 서로 건네던 말 속에 담긴 의미가 전혀 달랐던 것일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뒷담화로 그들이 다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이유는 뭘까. 안으로 꾹꾹 눌러둔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예천에 오백 년 된 ‘말 무덤’이 있다는 지인의 얘기가 기억났다.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니 상념으로 꽉 찬 머릿속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나들목을 지나고 얼마지 않아 ‘말 무덤’이라 적힌 갈색 푯말이 나를 반겨 주었다.

한적한 오솔길을 산책하듯 걸었다.
나지막한 산자락에 솔밭이 어우러져 솔 향이 그윽했다.
말 무덤으로 가는 길목은 크고 작은 자연석에 새긴 격언비들이 늘비했다.
하나하나 톺아봤다.
짧은 글귀마다 마음을 일깨우려는 의미심장한 구절들이었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말 많은 집 장맛이 쓰다’는 금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솔밭 말미에 둥그렇게 솟아오른 것이 보였다.
말 무덤이었다.
오백 년 전 이곳 마을에 여러 성씨가 모여 살았다고 한다.
사소한 말 한마디로 인해 삿대질과 고성이 오가고 문중싸움으로 이어졌다.
동네가 온통 싸움판이 되고 말았다.
골몰하던 차에 탁발 나온 스님께 동네를 구할 방법을 청했다.
스님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이, 개가 허연 송곳니를 드러내고 짖는 모습과 닮아 말싸움이 잦은 거라며, 말 무덤을 만들어보라는 비책을 일러주었다.

동네 사람들은 미워하고 원망하는 감정들을 끌어 모아 집집이 ‘말 지방’을 쓰고 빈 사발을 하나씩 가져 왔다.
써온 말을 각자 사발에 담아 개 주둥이처럼 생긴 그 언저리에 묻고 무덤처럼 만들었다.
그 후, 신기하게도 말싸움이 수그러들어 마을에 평화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도, 흉흉한 일로 마을이 뒤숭숭할 때마다 묻어야 할 말들을 구덩이에 파묻고 ‘말 장례’를 치렀다.
말 무덤은 험담이나 상대에게 무심코 내뱉으면 상처 될 말들을 가두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무덤을 치성을 드리는 성황당처럼 신성시하였다.
마을의 안녕을 구하는 수호신으로 여기며 어귀에 솟대를 세우기도 했다.
선조들의 공동체를 중요히 여기는 지혜가 엿보였다.

까마득한 그때나 지금이나 말로 인해 사람 관계가 힘들어지는 모양이다.
사람에겐 입이 하나, 귀와 눈은 둘씩 있다.
말은 적게 하고 잘 듣고 잘 보라는 뜻이리라. 초등학교 때 빈 도시락이 든 책보를 메고 뛰면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요란했었다.
물도 깊을수록 고요한 법이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는 세 번 이상 생각하고 입 밖으로 내야 한다고 누누이 말씀하셨다.
그래서인지 우리 형제들은 싸움의 씨가 될 말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따지고 드는 게 싫어서 속으로 삭이고 만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무덤까지 만들었으랴. 침묵을 지키는 것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다.
가슴 속에는 뭔가로 가득하나 차마 꺼내어지지가 않았다.
인간은 나 자신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발전해가고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말이란 너무 뜨거우면 데이고, 차가우면 듣는 사람을 얼어붙게 만든다.
말하는 입장은 시원할지 모르나 당사자의 가슴은 시커멓게 멍이 든다.
내 언어의 온도를 돌아다본다.

불교에서도 말로 하는 업을 가장 경계하라고 했다.
옹이처럼 박히는 말 때문에 해명을 하자고 들면 필요 이상의 말을 해야 한다.
뱉어내고 나면 주워담을 수가 없으므로 신중해야 하리라. 진실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드러나기 마련이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세월 따라 흘러갈 것이다.

오죽하면 입을 두고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라 하겠는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필터 없는 말을 날려 보내는, 말 홍수 시대인 요즘을 소통의 동맥경화에 걸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언총은 곧 침묵을 이야기한다.
내 뒷담화도,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모든 시시비비도 말 무덤에 가둘 수 있다면 좋겠다.
이곳에서 소리 없는 깨우침을 주는 스승을 만났으니 침묵을 더 연습해야겠다.
내 마음속에 말 무덤을 만들어 놓고.

“조상의 지혜 깃든 문화재 가까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수상소감


길은 사람과 사람의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또한 길을 가로막는 것도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상대방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는 세상이 돼가고 있습니다.
 
흑과 백이 공존해야 돌아가는 세상이고 보니 온갖 사람들을 만나게 되더군요. 글쓰기는 크나큰 기쁨과 위로를 안기기도 했지만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이 넘칠 즈음 말 무덤(言塚)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솔숲 고요한 그 길에 서니 수많은 생각이 들락거렸습니다.
옛 분들이 말 무덤까지 마련해가며 어려움을 헤쳐나간 것처럼 길이 아닌 길은 피해가야겠다는 굳은 다짐이 일었습니다.
유유상종일 수밖에 없는 삶이거늘 좀 부족하면 어떻고 좀 덜 갖추면 어떤가요. 어떤 목적을 위해 머리를 굴리기보다는 단순하게 살고 싶습니다.
조상님들의 지혜가 깃든 문화재가 가까이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어두운 터널은 지나갔고 내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려 합니다.
세상을 좀 더 느긋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움을 주신 대구일보에 감사드립니다.


△2013년 삼성앤유 수필부문 대상
△2013년 김장생문학상 본상
△2013년 포항소재 문학상 우수상
△2014년 동서문학상 수필부문 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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