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려상 - 비석의 연서 / 조미정

2017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2017.12.06



보부상 옛길을 따라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능선을 넘어오니 쪽빛 바다가 펼쳐진다.
산꾼들의 등짐을 따라 내려온 송이 향은 사방에 은은하다.
멀리 수평선에는 고기잡이배에서 흘러나온 불빛이 샛별처럼 깜박거린다.

경상북도 최북단이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인지 울진의 봉평리는 호젓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강원도와 경상도를 나누는 동쪽 경계 가까이에서 만난 거대한 비석 때문일까? 천오백 년의 묵직한 세월을 얹고 겨울 소나무처럼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비석 앞에서 창창한 시간의 문을 열고 있다.

국보 제242호. 울진 봉평신라비! 의문의 비석에 붙여진 명패였다.
524년 법흥왕 11년에 세워진 비석으로 죽변항으로 들어서는 삼거리 오른편에 자리한 비석박물관의 주인이기도 하다.
1988년 근처 밭두렁에서 객토작업을 하다가 발견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신라의 가장 오래된 비석이라고 떠들썩했지만 길거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돌덩이가 국보라는 점이 의아스러웠다.
궁금증은 이내 풀렸다.

미지의 표식처럼 비석의 앞면에 새겨진 398개의 글자가 단초였다.
삼국사기로만 전해지던 6세기 초 신라의 모습이 눈에 보이듯 선명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쩡! 쩡! 쩡! 뾰족한 정으로 쪼면 돌은 거북이를 내놓고 부처를 내놓고 석탑을 내놓는다.
울진 봉평신라비는 아니다.
살아서 튀어나올 듯 생생한 움직임 대신에 오롯이 새겨진 글자가 시간을 점프하는 타임캡슐이 된다.

524년 1월에 일어났던 사건 하나가 길쭉한 돌의 뼈에서 발라져 나온다.
돌도끼로 사냥을 하고 토기를 구워 살던 석기시대부터 울진에 정착해온 토착민이 신라의 불평등한 대우에 뿔이 났다.
급기야 성에 불을 지르자 중앙의 군사가 일어나 이를 저지하고 주모자를 처벌한다.
그 사건은 10행 398자로 고스란히 바위에 새겨졌다.
삼국 중에서 가장 국가의 정비가 늦었던 신라가 법령을 세우고 제도를 정비하며 국가의 기틀을 마련해가던 모습이었다.

비석을 들여다보면 강원도와 경상도의 경계에서 줄다리기를 하느라 각박해진 마음들이 보인다.
신라의 북진정책이 고구려의 남진정책에 부딪쳐 고구려의 땅이기도 했다가 신라의 영토이기도 하느라 진이 빠진 모습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울분을 토해내는 ‘끼여 있는’ 세대들의 자화상이었다.
보이는 앞면보다 옆면이 더 넓은 비석을 보면 경계면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이들의 고단했을 생의 고민이 전해오는 듯했다.

나도 ‘낀’세대였다.
청년과 노년, 부모와 자식, 혹은 진실과 거짓 사이의 좁다란 틈에 끼여 고민하고 방황하는 일이 많았다.
청년 시절 품었던 삶의 열정과 목표는 무르익기도 전에 장년의 틈바구니에서 이리저리 치였다.
꿈을 쫓자니 현실이 발목을 잡았고 현실에 매달리자니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가슴이 답답하였다.
진실이 호도되어 어처구니없는 일이 사실처럼 단정되기도 했다.
특히 부모와 자식의 자리에서 힘든 일이 많았다.

삶과 삶이 만나 모서리가 된다.
경계에 서서 바라보는 비석의 모습이 범상치 않다.
뿌리 부분이 깨진 듯 움푹 패고 밑으로 갈수록 조금씩 넓어진다.
길쭉한 몸통이 넘어지지 않도록 지지대 역할을 하기 위해서였을까. 돌의 밑동은 흙 위로 불거진 뿌리처럼 돌부리가 튀어나왔다.
어딘지 구부정해 보여 수술 후유증으로 조금씩 허리가 굽어지는 나를 보는 듯하다.
세상을 향한 부산한 날갯짓에 한 뼘씩 키가 줄어들면서도 넘어지지 않으려고 핏대가 서도록 꼿꼿이 힘을 준다.
그 모습에 가슴이 욱신거린다.

지금까지 나는 흙 속에 묻혀 있던 비석처럼 볼품없었다.
내 속에 숨겨진 열정은 검불처럼 날아가고 스스로 못난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다 보니 사사건건 부딪치고 상처받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원래 돌의 본성은 단단하다.
변함이 없다.
세계 최고의 법전인 수메르의 함무라비법전도 돌에 새겨졌다.
동굴 벽에 암각화를 그렸던 석기시대부터 돌에 무엇인가를 새긴다는 것은 영원을 부여하는 의식이었다는 사실에 조금씩 기를 편다.

비석은 무언의 신호를 애타게 보낸다.
반듯하지도 다듬어지지도 않은 화강암 자연석 그대로의 모습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무언의 가르침을 전해준다.
세월에 마모되어 흐릿해져 가면서도 엄청난 가치를 품고 있는 비석을 보면 용기가 솟아오른다.
나도 경계 어디쯤에 비석처럼 서서 이름 모를 꽃으로 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삶의 양면을 들추어 보면 어딘가에 나만의 글자가 숨어있을 것만 같다.

문득 모든 경계에서는 꽃이 핀다는 어느 시인의 시구가 떠오른다.
경계란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닫혀 있는 것이 아니라 열린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출발이기에 가능한 표현이리라. 담장에 꽃이 피듯 비석은 글자를 새긴다.

새긴다는 것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사무치는 바람이다.
이 세상에 경계 아닌 삶이 어디 있으랴. 삶 너머에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고 행복이 있으면 불행이 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앞면이 있으면 뒷면이 있다.
그 경계에서 피는 꽃은 오랜 시간과 현실의 압력에 변성되었지만 아직도 유효한 꿈과 열정을 품고 있다.
그 열정은 어느 한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기에 언제든 나아갈 수 있고 펼칠 수 있는 도전을 닮았다.
자신감이 부족한 나에게 수천 년의 세월을 견디고 선 비석은 조곤조곤 말을 건넨다.
너도 삶의 경계 위에서 한번 꽃을 피워보라고.
비석에 새겨진 글자는 경계에 선 모든 이에게 보내는 연서다.

“이번 수상소식, 내게 일어서라고 내미는 따스한 손길 같아”
수상소감


어둑서니 창문 틈으로 스며들기 시작하는 해 질 녘,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뜻밖이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후다닥 쓴 글이어서 부족한 점이 많아 수상을 포기하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쁨보다 다른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아직 무르익지 않은 글이 세상에 발표된다는 두려움과 좀 더 퇴고를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분은 잠시입니다.
오랫동안 만나 뵙지 못한 작가들과 해후할 수 있고, 즐거운 팸투어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씩 들뜨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채찍질도 됐습니다.
수필에 입문한 지 수 년이 되지만 외롭기도 하고 지치기도 했습니다.
고무 튜브에 간신히 몸을 의지하고 있는데 나의 존재조차 모르고 수평선으로 멀어지는 전함을 바라보는 막막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이번의 수상 소식은 포기하지 말라는 토닥임이고, 일어서라고 내미는 따스한 손길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격려 덕분에 저는 다시 힘을 내어 길을 걸어갑니다.


△1967년 출생
△제13회 산림문화작품공모전 동상, 제6회 철도문학상 우수상
△제6회 시흥문학상 우수상, 제1회 여자의 행복 수기공모전 대상 
△제2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은상
△제4회 등대문학상 우수, 제7회 독도문예대전 최우수상제
△제11회 해양문학상 은상, 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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