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덧입힌 미학…난해하지만 늘 새로워”

<39> 권기덕 시인

2018.02.13

권기덕 시인은 계속해서 자신 스스로 만족할 만한 시를 쓰는 것이 목표다.<br> 그는 “쓸쓸하고 외롭지만 내가 찾은 길들이 계속 이어져 결국에는 어느 지점에 다다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br>
권기덕 시인은 계속해서 자신 스스로 만족할 만한 시를 쓰는 것이 목표다.
그는 “쓸쓸하고 외롭지만 내가 찾은 길들이 계속 이어져 결국에는 어느 지점에 다다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귤껍질에서 검은 빛이 떠오를 때/나는 하늘을 날 수 있습니까?/하늘을 난다는 건/검은 연기가 몸속에 가득 차는 것//그럼 제 몸을 태우겠습니다//내 몸이 조금씩 떠오르고 있다 나는 혼잡한 자동차들이 보이는 도로를 지나 빌딩을 지나 집으로 간다 내 몸은 일정하지 않다 단지 바람에게 검은 눈동자를 맡긴 채 흐른다 저 투명한 유리창에 당신을 가두고 나는 겨우 작은 어둠이 되었을뿐,//나는 괴물입니까?//붉은 저녁이 오고 있다 저녁이 저녁의 구름을 물고 없는 그림자를 저녁에 묻고 하늘 위 까마득한 어둠에 날개가 점점 커지도록 저녁이 오고 있다//나는 어느새 작은 마을을 덮는 새가 되어간다
권기덕 시인의 시 ‘세컨드 라이프’ 전문이다.

시를 읽자 시어가 머릿속에 새겨지더니 이내 둥둥 떠오른다.
시어는 자연스레 이미지가 돼 꼬리에 꼬리를 물고 펼쳐진다.
시를 읽었는데 마치 한 편의 그림을 본 듯하다.

권 시인이 시를 쓰는 방식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사물이나 현실 경험에 대한 이미지로부터 하나의 내적인 세계를 구성하는 방식, 그리고 두 번째는 다양한 미적 구성의 방식이다.
예술지향주의적이라는 그는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또 다르게 만들어보고, 다양한 미적 구성의 방식을 생각한다고 말한다.
권 시인은 있는 그대로 관찰한 것을 시에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제껏 또 다른 모양, 내용의 시를 쓰고 있다.


◆시에 미학을 덧입히다

그는 늘 실험적이고 혁명적인 글쓰기를 위해 노력해왔다.

그 시작은 동인 ‘리비도’ 활동을 하면서였다.
문예창작을 전공 하지 않았지만 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대학교 3학년 어느 겨울, 눈내리는 모습을 보고 막연하게나마 시를 써보고 싶은 욕망을 가졌다고 떠올렸다.

“시인으로 등단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서른쯤이었다.
대구에 있는 여러 문예창작 강좌를 기웃거렸지만 쉽지 않았다.
대구는 젊은 친구들이 시 또는 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 제시해 주는 것이 부족한 편이었다.

2009년 등단 후 간간이 작품 청탁이 들어오곤 했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이에 대한 갈증을 느끼던 중 2011년께 대구의 젊은 시인 몇몇이 모이는 자리에 나가게 됐다.
그 중심에는 여정, 김사람, 정훈교, 김하늘 등 젊은 시인들이 있었다.

‘시’를 통해 알게 된 이들과 동인 ‘리비도’를 결성해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칠성시장 인근에서 모였다.
십시일반으로 사글세를 모아 방천시장에 작업실을 꾸미기도 했다.
함께 시집을 읽고, 글쓰기 방법 등을 토의하면서 새로운 시 쓰기를 시도하고 도전했다.
지방에 있다는 한계에서 벗어나 좋은 글,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노력했고, 치열하게 합평을 하기도 했다.

이후 그의 시에는 그만의 색깔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권 시인의 시에는 초현실주의, 콜라주, 포토몽타주, 리포토그래피, 미니멀아트, 추상표현주의 등 미술기법이 덧대여지면서 형태 또한 다른 일반적인 시들과 달리 표현됐다.

권 시인은 “동인 활동을 하면서 시를 잘 쓰는 방법보다는 시를 버리는 법을 알게 됐다.
등단 후 초창기 시들은 다 버렸다.
쓰고 싶었던 시를 썼고 새로운 것들을 지향하다 보니 그동안 썼던 시를 부정하기 시작했다”며 “대학 때부터 관심이 있었던 미학을 시에 덧입혔다.
시가 아방가르드해지면서, 형식도 내용도 난해해졌다”고 했다.

그저 잘 쓰려고만 한 것이 아니라 쓰고 싶었던 시를 썼다는 권 시인은 2015년 ‘문예중앙’을 통해 첫 시집을 펴냈다.
지방 무명 시인이지만 편견을 깼다는데 쾌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를 끊임없이 해나가고 있다.

“다르게 표현하려고 노력은 하지 않지만 지금의 것을 부정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나보고자 한다.
반대편에 있는 것을 찾고 있다.

동시를 쓰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그는 지난해 제9회 창비어린이 동시부문 신인문학상 받으면서 등단하기도 했다.


◆자신만의 시 세계를 만나다

그는 시를 쓰기 전 외로움, 쓸쓸함을 찾는다.
주변 풍경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롭게 만들어 자신 안의 또 다른 타자를 만나기 위해서다.

자신만의 시 세계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쫓아서일까. 그의 시를 읽은 사람들은 다른 시들과 달리 취해진 형식이나 내용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에 흠칫 놀라곤 한다.

권 시인은 “시를 잘 쓰기 위해 시를 썼다면 독자를 의식했을 것이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시를 썼을 것이다.
시를 써야만 살아가는 사람, 시를 통해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듯 시를 쓰는 이유가 다양한 것처럼 시를 읽고 접근하는 방식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각자 자기만의 세계가 있기에 자기 세계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노력하고 써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해하거나 해석하기 어렵게 쓰인 시 때문에 시를 읽는 이들이 줄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시가 난해해졌기 때문에 시를 읽는 인구가 줄었다고 할 수 없다.
세상 자체가 난해해졌다.
정서와 감각이 달라지고 여러 매체 자체가 달라졌다”며 “그에 맞는 감각이나 글쓰기 자체가 맞지 않겠느냐”며 반문했다.

이어 “정답을 찾으려고만 하다 보면 시가 어렵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시인의 의도와 달라도 생각하는 대로, 보는 대로 시를 읽고 해석할 수 있다.
누가 읽더라도 정해진 것을 읽는 것이 아니라 각자 다른 해석을 하고, 다른 제목을 붙이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시의 매력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권 시인의 목표는 계속해서 자신 스스로 만족할 만한 시를 쓰는 것이다.
그리고 늘 현실을 부정하면서 시를 써나가야 하기에 시 쓰기 방식은 계속해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당신 예술의 난해성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나에게는 대중이 나를 평가하는 것에 대한 조절능력이 없다.
단지 다음 단계로 나아갈 뿐’이라고 말한 미니멀 아티스트 스텔라의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쓸쓸하고 외롭지만 내가 찾은 길들이 계속 이어져 결국에는 어느 지점에 다다를 수 있기를 바란다.

글ㆍ사진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권기덕 시인 약력

-대구교대 미술교육과 졸업
-2009년 ‘서정시학’에 시 당선
-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창작기금 수혜
-2015년 시집 ‘P’(문예중앙)
-2017년 제9회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에 동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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