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이 내포한 영원성 시조에 담으려 노력”

발행일 2018-04-18 20:02:12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생은 소멸하지만 희망 읊조린 99편의 작품 수록
혼자 살피는 시간 속 세상의 미묘한 떨림 포착해
본향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영원성 구현에 힘써



느티나무/오백년오/백년그늘/아래뜨거/운입맞춤/이시간을/멈추게했/네시간을/멈추게했/네오백년/입맞춤이

이정환 시조시인이 최근 펴낸 열한 번째 시조집 ‘오백년 입맞춤’의 표제시 전문이다.

고목이 된 느티나무 아래 긴 의자가 놓여 있고, 그곳에 청춘남녀가 앉아 있다. 그들은 꼭 껴안고 오랫동안 숨 막힐 듯 입술을 나누고 있다. 영화의 한 장면이다. 화면 바깥으로 뜨거운 그 사랑의 열기가 분출하고 있다.

시인의 눈에 그 장면은 ‘오백년 입맞춤’으로 들어왔다. 오로라의 말은 곧 시가 됐다. 느티나무 오백년 그늘이 만들어낸 사랑의 역사였던 것이다. 무심코 건넨 한마디 말조차도 꽃향기가 실리면서 내밀한 언어의 직조 끝에 한 편의 표제 시로 탄생한 것이다. 또한 그것은 영원과의 오랜 입맞춤의 시작(始作)이자 시작(時作)이며, 시작(詩作)이었다. 설렘 속을 유영하는 시인의 영혼은 자유 그 자체이기에 시인은 꿈꾸기를 그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시조집은 모두 5부로 나뉘어 있으며 총 99편의 시조가 수록됐다.

시조집에는 ‘생은 심히 어둡고 죽음은 소멸이지만 본향을 그리는 마음으로 영원성 구현에 힘쓰고, 또한 그 속에서 희망을 읊조린’ 시인의 시작 40년이 고스란히 압축돼 있다.

혼자 살피는 시간, 혼자 걷는 길, 혼자 보는 영화, 혼자 바라보는 나뭇잎, 혼자 우러르는 산 능선, 바다 물결, 꽃구름과 해풍이 담겼다. 온전히 혼자가 될 때 애월 바다가 눈에 들어오고, 시스루 속의 미묘한 떨림도 들춰낼 수 있다.

이정환 시인의 심연에는 항시 시가 고여 빛나고 있다. 그는 마흔두 해 동안 교단에 섰으며, 등단한 지 마흔 해가 되는 그동안 부단히 글을 썼다.

시인의 말을 통해 그는 “천편천률을 위해 사생결단으로 썼다. 글을 쓰지 않으면 곧 죽을 듯이, 쓰는 일이 마냥 생명의 연장이라는 듯이 천치처럼 부지런히 썼다”며 “정신의 위의를 담기에 가장 적합한 노래의 건반. 모름지기 이 땅에 태어나 우리말과 글을 깨친 이들이 시조를 모른다거나 한 번도 써 본 일이 없다면 이는 명백히 직무유기일 것”이라고 전했다.

이정환 시조시인은 1954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1978년 ‘시조문학’ 추천완료,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시조)로 등단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조집으로 ‘아침 반감’, ‘불의 흔적’, ‘물소리를 꺾어 그대에게 바치다’, ‘가구가 운다, 나무가 운다’, ‘별안간’, ‘휘영청’ 등과 동시조집 ‘어쩌면 저기 저 나무에만 둥지를 틀었을까’, ‘길도 잠잔단다’ 등이 있다. 동시조 ‘친구야, 눈빛만 봐도’, ‘혀 밑에 도끼’ 등이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으며, 대구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이호우시조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금복문화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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