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대전 수상작]

장려상 - 포석정지 / 류현서

2018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2018.11.06


봄날의 아침 안개가 높고 낮은 산들을 덮었다.
경주 남산은 안개마저도 신비스럽다.
김처럼 피어올라 한곳으로 쏠렸다가 가늘고 가느린 눈물을 뿌리다가, 금방 이 골짝 저 골짝의 윤곽을 드러내더니, 어느새 감쪽같이 숨어 버린다.
그러기를 몇 차례 반복하다가 길고 짧은 골들을 조심스레 드러낸다.
마치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부분을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것처럼.
고목들이 하늘을 덮고 있는 포석정지이다.
애초에는 기와를 이은 포석정이라는 정자가 있었고 남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석구 ‘石臼’로 흘러들었다고 한다.
격랑을 겪은 세월 앞에 정자는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물줄기마저 끊겼다.
지난 시대를 상상하며 안타까운 마음에 석구둘레만 빙글빙글 돌고 있는 나를 향해, 그 정도의 세월은 하루아침이라는 듯, 석구는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무만이 수구를 끼고 투박한 껍질로 지나간 시간을 껴안았다.
어릴 때는 생각 없이 보아 넘겼으나 오늘 다시 찾고 보니 의문이 인다.

침묵으로 일관하고 석구의 형태를 유심히 보면 북두칠성을 떠올리게 된다.
찬란했던 신라 불교 문화 내면에는 칠성 신앙이 함께 있었다.
북두칠성과 비슷한 모양을 띤 석구를 보면 알 수 있다.
예전 할머니는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칠성에게 가족의 안녕을 빌었다.
칠성은 우리 민족에게 생명 탄생과 “생사화복”을 준다고 믿었기에 탄생에서 죽음까지 함께했다.
사람의 얼굴에 구멍이 일곱 개인 것은 칠성을 받아서 태어났기 때문이라 하였다.
아이를 낳으면 한 칠을 이레로 정하고 일곱 칠, 사십구일을 지나야 부정을 타지 않는다고 믿어왔다.
사람이 죽어서 제를 지낼 때도 칠일씩 일곱 제, 사십구 제를 지낸다.
이 모든 것이 칠성 신앙에서 비롯되었다.

칠성 문화는 여기만 있는 게 아니다.
여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첨성대도 별자리를 살피는 건축물이지 않은가. 첨성대도 화강석으로 조성한 기단 위에 곡선으로 원통형을 쌓아 올렸다.
맨 위 꼭대기 중앙에 장대석을 걸쳐 칠성별을 기점으로 천문을 관찰하였다.
이렇듯 신라인들은 하늘의 별자리를 신성시 여기며 우러러 받들고 가까이하고자 했다.

첨성대 윗부분이 하늘에서 보면 흡사 사람이 상투를 꽂은 모양이라고 한다.
상투에 있어서 머리는 땅이고 틀어 올린 상투는 하늘이라 칭했다.
상투를 꽂을 때 머리카락을 둥글게 말아 동곳으로 지른다.
정수리에 말아 올린 상투는 우주를 상징하며 동곳으로 중앙을 가로지른 모양은 우물 정‘井’ 자를 나타냈다.
상투는 우주와 땅과 우물을 상징했다.
옛적에 결혼을 하면 남자들은 상투를 틀었다.
그래서일까. 아내는 남편을 하늘에 비유하며 받들어 섬겨왔다.
이렇듯 하늘과 땅과 인간이 함께 공유하고자 했으리라.
칠성 문화는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살아 남아있다.
인천에 가면 일곱 개의 등대가 북두칠성 모양으로 설치해 두었다.
우리나라 등대 중에서 가장 높은 선미도 등대를 비롯하여, 영흥도, 소야도, 팔미도, 소청도, 연오랑 등대, 가장 낮은 월미도 등대에 이르기까지 하늘에서 보면 영락없는 칠성별이 반짝거리는 것 같다고 한다.
우리나라 서해안의 최북단에 위치하여 육지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등대들이다.
망망한 대해를 지나는 배들의 길라잡이, 일곱 개의 등대에서 일곱 색의 빛을 뿜어낸다.
이런 것을 봐도 우리는 바다에서나 육지에서나 하늘의 칠성을 중요시하며 살아오고 있다.

북두칠성을 본떠서 물이 돌아 흘렀던 포석정지의 석구. 땅에 뜬 북두칠성. 이것은 사사로움이 없는 하늘과 땅을 우리 인간이 본받고자 했던 것이다.
하늘은 사사로움 없이 만물을 덮어주고, 땅은 사사로움 없이 만물을 심어주며, 해와 달은 사사로움 없이 만물을 비추어 주지 않는가. 만물은 하늘과 땅에 뿌리를 두고 사람은 그에 의존하여 조상에 뿌리를 두고자 했다.
이곳에서 순수한 인간의 마음이 읽힌다.
어쩌면 우리들은 자연을 잠시 빌려 쓰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예부터 사람들은 하늘을 숭배하고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과 더불어 생존하려고 했다.
하늘과 지심‘地心’을 합한 우주.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여기에 있다.

긴 세월을 안은 포석정지에서 역사를 더듬는다.
신라 경애왕 4년에 포석정에서 술잔을 띄워 놓고 흥을 즐기다가 후백제의 견훤이 쳐들어와서 천년 사직을 무너뜨렸다고 전해졌다.
흥청망청하다가 적에게 당한 거라고. 너무 안이했다고. 여태까지 나는 그렇게 믿었다.
이제야 생각을 깊게 해보면 삼국사기에는 927년 음력 동짓달에 쳐들어왔다고 되어 있는 것을 보면 더욱 의아해진다.
동짓달이면 추위가 만만찮을 때다.
물이 얼어 부풀고 설한풍이 치는 날씨에 실내를 두고 야외에서 유상곡수연을 벌였겠는가. 하물며 한 나라의 왕이 정치에 눈귀가 어둡기로서 적들이 쳐들어오는 것을 까맣게 몰랐을 리가 없다.
변방을 지키는 군졸들이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국가의 경사스러운 일이나 어려운 정사에 부딪히면 포석정에서 하늘과 땅과 우주, 즉 천신에게 제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아마 그날도 제를 지내지 않았으랴. 호시탐탐 노리는 주변국들의 침입에, 나라의 위기를 헤쳐 나가게 해달라고 제를 올렸다는 점에 더 무게가 실린다.

어디 이뿐만이 아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선과 악이 밝혀지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패자는 어느 시대나 할 말을 잃는다.
패자는 말 그대로 패자이기에 진실을 말해도 먹혀들지 않는다.
인간세계는 고대, 근대, 현대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이런저런 점을 비춰 보면 포석정의 비운이 사실대로 전해졌겠는가. 여태 석구의 형태를 놓고도 잘못 전해졌다.
석구의 형태는 북두칠성 형상이라는 견해가 있는데, 전복 모양이라고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을 듯하다.
더군다나 패자는 천년의 존망이 무너져 버렸는데, 입이 열 개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었을 터다.
그렇다면 포석정에서도 때가 때인 만큼 왕이 국가 대신들을 모아 제를 올린 것을 연회를 베풀었다고 소문을 퍼뜨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천 년 역사를 무너뜨린 승리감에 들떠서 … .
예나 지금이나 민초들은 순수하고 어리석다.
그 단순함을 발판삼아 소문을 왜곡시켰을 수도 있다.
요즘같이 너도, 나도 손쉽게 촬영이나 녹음을 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고, 소문이 떠돌아도 백성에게 진실을 밝혀 보여줄 증거자료가 없었을 터. 떠도는 소문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을 통해 흘러 흘러서 오늘날까지 이어졌으리라.
유상곡수연은 고대 중국에서 아홉 구비가 도는 강가에서 문인들이 술잔을 띄워 놓고 술잔이 본인 앞에 흘러올 때까지 시를 지어 읊지 못하면 벌주를 마시며 즐겼다고 한다.
물론 신라인들도 태평성대로 이어질 때는 유상곡수연을 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중국이나 신라나 태평할 때 즐기는 놀이였지, 나라가 어지러울 땐 어디 감히 생각이나 했겠는가.
곰곰이 짚어보면 여러 사건이 사실대로 전해지기도 하겠지만 혹 잘못 전해졌을 가능성도 있다.
승자는 우월감을 과시하기 위하여 패자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남산의 서쪽 기슭에 가면 안개에 숨어 눈물 흘리는 포석정지가 있다.

“쇳덩이 갈아 바늘 만드는 마음으로 작품 빚을 것”
수상소감

수상 소식에 만감이 교차됐습니다.
작품의 주제가 비운의 아픔이 배인 포석정이 눈앞에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저로서는 경북문화체험에서 몇 번 입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큰상은 저와는 인연이 먼 것 같습니다.
갈 길이 멀게만 느껴집니다.
그래서 몇 번 수상이란 점에 무게를 두고 싶습니다.

어느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야구도” 하룻밤에 아홉 번을 일어났다 누웠다 해야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홉 번은 고사하고 한 두 번씩 일어나는 밤도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제 신경이 그만큼 둔하다는 증거이기도 하겠지요. 
앞으로는 쇳덩어리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마음으로 작품을 빚어야 되겠다고 나 스스로에게 다짐해 봅니다.

꽃 진 자리 꽃이 피고 잎이 진 자리에 잎이 피어납니다.
수필가들에게 매년 넓은 글 마당을 펴주신 대구일보사를 비롯해 여러 관계자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수필의 향기와 함께 해마다 승승장구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2016년 청림울산남구문학상 수상
△2017년 포항스틸에세이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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