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대전 수상작]

장려상 - 명주(明紬) / 문은주

2018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2018.11.07


하얀 운동화에 오디 물이 배였다.
새벽에 이슬 머금은 뽕잎을 따는 일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누에는 대식가였다.
‘쏴’ 마치 합창하듯 들려오는 그 소리에 엄마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비설거지를 하러 나가곤 했다.
소나기 소리에 번번이 속았다며 새벽하늘의 별을 바라보던 엄마의 곁이 그립다.

누에의 뽕잎 갉아 먹는 소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누에가 산고를 겪으며 실을 토해내는 그 순간의 기억이 나를 이곳에 오게 했다.
수많은 기억이 흑백사진으로 되살아난다.
여기는 상주 함창 명주 박물관이다.

함창은 신라 시대부터 명주의 산지로 널리 알려진 고장이다.
한 필의 명주를 얻기 위해서는 여러 번의 단계를 거쳐서 비로소 완성된다.
누에고치를 뜨거운 물에 넣고 실 끝을 풀어 명주실을 만든다.
좋은 날을 택일하여 마당 한가운데서 펼쳐지는 베매기 작업은 이웃 아낙의 힘을 빌려야 할 만큼 능숙한 손놀림과 세심한 기술이 필요하다.
베매기한 실을 도투마리에 감고 베틀에 얹는다.
그다음부터는 오직 직녀의 몫이다.
베틀 앉을 개에 앉아 부테를 허리에 건다.
베틀 신을 신고 발을 앞뒤로 밀고 당기며 날실을 아래위로 나눈다.
북으로 운반한 씨실을 바디로 치면 명주가 짜이게 된다.
사람들의 시간, 풍경을 기억하는 골목처럼 그 모든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있다.
한국 전통 명주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그곳에서 나의 어린 시절을 만나고 시어머니의 지나온 삶을 마주한다.

함께 간 박물관 안에서 시어머니는 오롯이 혼자였다.
몇 번이나 불렀지만, 대답이 없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으려는 단호한 몸짓이 나를 주춤거리게 한다.
어느 한 곳을 응시하고 있는 시선을 따라갔다.
베틀 앞이었다.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듯 고요하기만 한 어머니의 표정에 알 수 없는 애환이 스민다.
베틀에 앉은 여인의 모습은 곱고 젊다.
정갈하게 빗어 뒤로 넘긴 쪽 찐 머리에 얌전히 꽂은 옥색 비녀가 유난히 눈에 띈다.
그 여인 앞에 선 어머니의 세월에 바랜 은회색 머리칼이 대조를 이룬다.
어머니는 저 여인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나는 거기서 지금 읽고 있는 소설, 혼불의 인월댁을 만났다.

방죽에 몸을 던진 인월댁을 다시 살린 건 베틀이었다.
인월댁은 스러져가는 생명의 한 부분을 엮듯 북을 움직였다.
새벽녘, 닭이 홰를 치는 소리를 듣고서야 베틀에서 내려왔던 인월댁이 만든 것은 한 필의 명주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기구한 운명에 저항한 그녀의 삶의 방식이었고 명주실처럼 질긴 목숨을 연장해가기 위한 선택이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건 그뿐이었다.
나는 베틀에 앉아 있는 저 여인이 아득하기만 하다.
어머니가 살았던 시대에서 동떨어진 나의 세월만큼 서로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 또한 멀리 있다는 걸 느낀다.

서로의 침묵에 익숙할 때쯤 나직하게 흥얼거리는 노래 한가락, 어머니는 베틀가를 부르고 있다.
원래부터 노랫가락이 처량했는지, 어머니의 음색에 미처 뱉어내지 못한 웅얼거림이 더해 허공에는 슬픔이 가득하다.
세월의 강을 훌쩍 넘어 기억의 한 자락을 움켜잡고 하염없이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에 코끝이 찡해온다.
“피를 매어 짠 명주일진대 어찌 이리 곱고 희냐.”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서러움이 엉긴다.

시아버지가 네 살 때, 시숙부는 유복자로 태어났다.
홀로 된 시할머니가 두 아이를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은 베 짜기였다.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해거름이 시작되면 달캉거리는 베틀 소리가 어둠을 갈랐다.
바다에서 노를 젓듯이 한번 베틀에 앉으면 쉽게 내려오지 못했다.
망망대해에 표류해 있는 삶은 불안했다.
비바람과 맞서야 하고 성난 파도와 싸워야 했다.
흠집 내고 입방아 찧기 좋아하는 외부와 단절된 세상을 자처하며 살아야 했던 여인의 인생이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내면에 가두고 베틀 위에서 부테로 허리를 단단히 묶었다.
베틀에 앉아 갓난아이의 젖을 먹이고 어린 자식이 고사리손으로 챙겨주는 갱식이를 먹으면서 발을 움직이며 바디를 쳤다.
누에가 실을 뽑아내듯 시할머니의 손끝에서 곱디고운 명주가 짜였다.

어머니는 열여덟에 시집와서 시할머니의 베틀을 물려받았다.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혼자서 모든 일을 감당했던 억척스러운 시할머니를 모시는 어머니의 시집살이는 고단했다.
늦은 밤, 모두가 잠든 그 밤에 들리는 건 바디와 북이 지나가는 소리뿐 적요하기만 하다.
가끔 우두둑 뼈 어긋나는 소리가 움직이는 몸을 따라 전해져온다.
부테를 감은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파져 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말코에 감기는 피륙의 두께가 두꺼워질수록 배와 다리에 전해져 오는 무게는 엄청났다.
어머니는 닷새에 걸쳐 한 필의 명주를 짰다고 한다.
솜씨가 좋아 함창 장에 내어놓기가 바빴다.
그 솜씨는 어머니의 몸을 서서히 신음하게 했지만, 길쌈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인월댁의 베 짜기는 남편을 여읜 청상의 한을 달랜 것이었다면 어머니의 길쌈은 자식을 굶기지 않으려는 마음이었으리라.
오랜 세월 명주를 짜면서 어머니는 단 한 벌의 명주옷을 만들었다.
시할머니의 수의였다.
평생을 베틀에서 보냈지만, 살아생전 비단옷 한 벌 걸치지 못한 팍팍한 삶의 위로였다.
고치 속에서 견뎌내고도 결코 눈부신 나방이 되지 못했던 누에의 운명처럼 생을 다한 육체에 걸친 비단 수의는 극락왕생을 비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베틀에 앉은 어머니가 새색시처럼 곱다.
환하게 웃는다.
어머니의 실크 스카프에서 오디 빛 날개의 나비가 화르르 날아오른다.

“우리의 전통 명주 기억하는 사람 많아졌으면”
수상소감
명주 페스티벌 축제에서 가져온 한 올의 명주실이 화장대 서랍 손잡이에 묶여 있다.
누에고치에서 갓 뽑아낸 명주실은 부드럽지 않고 뻣뻣하고 거칠다.
어머니는 명주를 짜면서 손끝이 성할 날이 없었다고 한다.
 
나는 이 글을 준비하기 전에는 명주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우연히 들른 상주 함창명주박물관에서 알게 된 명주의 역사는 우리 어머니 삶의 한 부분임을 알게 됐다.
열심히 자료를 수집하고 공부했다.
한 필의 명주를 얻기까지의 과정은 노동과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다.
 
꿈속에서조차 베틀에 앉아 바디를 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글을 썼다.
머릿속의 생각과 펜의 움직임이 부딪치면 명주실을 손끝으로 느꼈다.
베를 짜는 심정으로 글을 짰다.
한 편의 글을 떠나보내고 심한 몸살을 앓았다.
말코에 감긴 명주를 벗어 낸 어머니의 허벅지가 시리듯이 생각보다 더 알 수 없는 마음의 공허함이 컸다.
 
명주가 사라져가는 안타까움이 크다.
이 글을 통해 명주를 기억하는 사람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대구수필문예회 회원
△2016 달서 책사랑 전국주부수필 공모전 동상
△2017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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