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사는 긴 석축이 계단식으로 쌓여져 많은 건물을 받쳐주고 있다. 경사가 급한 지형에 여러 채의 법당을 건축하려니 자연히 석축을 많이 쌓게 되어 그 웅장함을 더 한다. 한편으론 아기자기한 고향마을을 연상하게도 해준다. 오래되어 보이는 석축은 자연석이 중심을 이루고 돌쌓기는 모두 면 쌓기 방식이다. 직육면체의 돌로 쌓은 곳이 있는가 하면 모양이 각기 다른 평범한 모양의 돌로 이뤄진 석축도 있다. 전면 긴 구간의 석축은 막돌을 사용하였는데 큰 틈 없이 잘 맞추어져 놀라울 정도로 면이 반듯하고 고르다. 더욱이 이끼가 살아있고 담쟁이 넝쿨이 어우러져 녹색 옷을 입은 듯 깔끔하고 정갈해 보인다. 석축의 견고성은 돌끼리 맞물리는 데 있다. 틈새가 생긴 곳은 반드시 작은 돌을 맞게 끼워 흔들림이 없이 괴어졌다. 따라서 틈새를 맞춘 작은 돌들은 아랫돌과 윗돌의 버팀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접착 재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순수 자연미를 살리는 데 도움을 주지만 석축이 지지한 집터의 지면에 숨을 쉬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처음 집터를 닦아 성토를 하고 지면을 고르면 자연히 시간이 흘러 다져지면서 물줄기가 생겨나면 석축 틈은 배수로 역할을 하게 되고 틈 사이에 이끼와 잡풀이 자라면서 견고성을 더 하게 되는 것이다.
사찰의 돌담 역시 마찬가지다. 얇은 돌을 옆으로 깔아 쌓기도 하지만 막돌을 엇갈려 쌓아 튼튼하게 했고 마무리는 기와를 올려 자연미와 인공미를 가미한다. 석축 담을 천천히 걸으며 면면을 살펴본다. 돌 틈 사이에 벌레도 살고 잡풀도 산다. 공생의 교훈이 저절로 완성된다.
살아가야 한다는 이유가 우선이지만 비행기를 탄다는 호기심으로 해외취업 도장을 찍었다. 중동바람은 가난한 많은 근로자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일반직이라 면접 볼 때 모래자루를 메고 30미터를 왕복하는 신체이상 여부만으로 합격 불합격을 판단했다. 시간을 재는 면접관이 내겐 구세주였다. 온 힘을 다한 끝에 당당히 합격하고 떨리는 손으로 도장을 찍었다. 해외 취업은 지독한 가난을 벗어나는 가정의 기초가 되었다. 15년 동안 이어진 반복의 중동 취업, 두 여동생은 대학을 졸업했고 장남인 형은 교사가 되었다. 스물일곱에 시작하여 마흔둘이 되어서야 지겨운 출국을 마감했다. 내 도움은 작은 일부분이었지만 부모님이 쌓았던 가정의 작은 부분을 이어주어 마무리하는 건물 기초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결혼도 못한 사십 중반의 내게 남겨진 것은 없었다. 이제 나 자신의 기초를 쌓아야 될 차례다. 요행히 중동 취업 중 배운 기술이 도움이 되어 쉽게 일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돌로 된 기초는 생명이 길다. 고대로부터 잘 보존되는 유적들은 대다수 돌로 만들어진 것이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돌의 건축물은 시공 방식만 다를 뿐 재료는 여전히 한 가지다. 그런 면에서 사찰에 사용된 돌 다루기에 옛날에는 일일이 망치와 정만으로 제련했을 테니 시간과 노력이 몇 배로 들었을 것이다. 사찰을 방문할 때 주로 문화재나 웅장한 건축물만 보게 되는데 그 모든 것의 저변에는 돌 기초가 있음을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물론 탑도 돌로 만들어져 수백 년 수천 년이 지나도 멀쩡하게 우리 앞에 그 위용을 자랑한다. 돌에 새겨진 망치나 정 자국들 속에 석공들의 장인 정신이 깃든 땀방울을 보아야 할 것이다. 돌에 시간과 역사가 새겨지기 때문이다. 세수한 듯 깨끗한 보광명전 뒤쪽의 돌계단은 보물이 있는 대장전으로 이어져 있다. 보물인 삼존목불좌상과 목각탱을 모신 귀한 곳이다. 보물보다 자꾸 돌계단과 석축에 눈이 더 간다. 동쪽에 있는 진영당과 명부전을 참배하고 위쪽에 위치한 16나한상을 모신 전각 응진전, 다시 보광명전 좌측에 있는 원동전과 극락보전, 그리고 응향각을 보고 앞마당으로 내려왔다. 자운루와 해운루, 범종각, 그리고 영남제일강원은 같은 위치에 있다. 요사채와 박물관 사이에 서서 경내 전체를 바라보았다. 갖가지 역사와 많은 사연을 담고 있었지만 건물을 받치고 있는 석축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형형색색 단청의 건물은 형용키 어려운 감탄을 자아낸다. 나무와 나무를 깎아 끼워 맞춘 기둥과 서까래는 못 하나 없이도 견고하다. 그 건물의 무게와 중심을 지탱해주는 초석이 있음을 안다. 올려다보는 것도 좋겠지만 내려다볼 때 겸손과 자비의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수많은 세월 동안 전쟁과 천재지변 속에서 고귀한 문화재를 간직한 사찰과 건물을 지켜온 시간의 파수꾼은 누구였을까. 별 탈 없이 잘 지켜주는 것은 물론, 화마로 인해 소실된 건축물을 복원할 수 있는 것은 초석이 되어 준 돌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질문명의 파도 속에서 잠시 항해를 멈추고 다가간 예천 용문사에서 천년의 자비를 만나고 겸손의 돌을 본다.
“각기 다른 삶 배운다는 마음으로 경북문화알리기 앞장”수상소감수필이라서 그렇습니다. 가슴으로 써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됩니다.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기쁨 보다는 아픔이 훨씬 많은 까닭입니다. 무심히 지나쳤던 작은 돌멩이 하나가 내 삶속 어디엔가 깊은 상처로 남겨질 수 있으니까요. 당선소식을 받고 밤새 뒤척이다 새벽을 만났습니다. 부족한 글을 선택해주셔서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경북을 자주 가게 된 것은 처가가 대구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연히 경유하는 곳곳 문화가 꽃피웠던 곳이 많아 일부러 찾게 되고 감탄과 경이를 몸으로 직접 느끼게 되었습니다. 기회로 경북문화에 관한 관심을 갖고 더욱 수필에 정진하게 될 것입니다. 각기 다른 삶의 모습을 알아가고 배워 간다는 마음으로 경북문화를 아끼고 널리 알리기를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수상의 영예를 주신 ‘경북문화체험수필대전’ 관계자 모든 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12년 월간 ‘신문예’ 동화 신인상
△2012년 제23회 월하시조백일장 장원
△2017년 중앙일보 시조백일장 9월 장원
△2018년 샘터시조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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