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알파벳, 가부장제 질서 만드는 무기였다?

함무라비법전·구약 등 여성 가치 허무는 역할 문자 사용시 좌뇌 사용…남성 공격성 강해져



우리는 흔히 문자를 쉽게 흔들리고 잊혀질 수 있는 사실이나 기억을 기록해주는 문명의 유용한 도구라고 말한다. 문자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인류가 이토록 장대한 지식과 지혜를 쌓지 못했을 것이다. 문자는 권위와 권력을 창출하는 강력한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다.

문제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볼 때, 문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들은 대부분 여성혐오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최초의 성문법인 함무라비법전도, 알파벳으로 기록된 최초의 문서인 구약도, 아랍문명에 알파벳을 보급한 이슬람의 꾸란도, 가톨릭의 타락에 반발해 탄생한 경건한 프로테스탄트들도 한결같이 이미지를 배척하고 가부장적 질서를 도입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거시적인 역사적 패턴을 관찰하면서 우리가 미처 생각치 못한 놀라운 질문을 던진다. 알파벳이라는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확산될 때마다 가부장제와 여성혐오가 증폭된 것은 과연 우연일까? 알파벳이라는 도구를 쓰는 과정에서 그 무엇이 인간의 의식 속에 숨어 있던 여성혐오라는 관념을 자극하고 강화한 것은 아닐까?

저자는 뇌과학적 접근을 통해 알파벳을 쓰고 읽는 동안 우리 뇌는 세상을 선형적, 분석적, 순차적 방식으로 접근하도록 자극한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러한 인지기능은 좌뇌에 의해 강화되는데, 좌뇌는 오른손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더욱 증폭된다. 이러한 좌뇌의 기능이 강화될수록 세상을 전체적, 동시적, 종합적인 방식으로 인식하는 우뇌의 인지능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된다. 공고롭게도 좌뇌는 남자들의 공격적 사고를 담당하고 우뇌는 여성들의 통합적 ‘가부장제’와 ‘여성혐오’를 자극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세계는 여신들이 주관했다. 선사시대는 물론이고 역사시대 초기까지도 인류는 여신을 섬겼다. 공동체 종교의례를 집전하는 사제도, 신탁을 전하는 이들도 여성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여신들이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다.

인류의 위대한 진보인 ‘문자의 발명’이 여신과 여성에겐 재앙적 사건이었다고 말한다. 문자 시대 이전의 모든 농경 문명에선 어머니 여신이 최고신이었으며, 양성은 평등하고 조화로웠다. 문자의 발명은 사회에 폭발적 변화를 가져왔지만, 치명적 부작용도 동반했다. 문자의 사용으로 추상적ㆍ분석적 사고가 구체적ㆍ종합적 이미지보다 우월한 지위를 점했고 음양의 균형이 깨지지 시작했다. 문자가 여성의 가치와 권력을 약화시키고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질서를 강화하는 무기로 활용됐다는 것.

저자는 독특한 가설을 논증하기 위해, 인류의 고대문명과 창조 신화,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에서 문자의 등장과 여신의 몰락, 알파벳과 한자의 역사, 유일신 체계와 종교적 불관용, 힌두교ㆍ도교ㆍ불교 등 동양의 종교, 르네상스와 마녀 사냥, 20세기 광기의 역사까지 전방위적인 인문지식의 향연을 펼친다. 신경해부학 지식과 뇌수술 경험을 바탕으로, 좌뇌(분석)와 우뇌(종합)의 특성, 남녀 간 사고방식의 차이와 문자 사용의 연관성에도 주목한다. 저자는 그러나 20세기 이후 영화와 티브이(TV), 컴퓨터 등 이미지 시대를 맞아 가부장제는 갈수록 힘을 잃고 여신의 시대가 부활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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