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산 리홍재 “글씨에 혼을 불어넣으면 살아움직이는 예술 됩니다”

발행일 2019-01-07 19:43:5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1m 넘는 큰 붓으로 휘호 ‘타묵 퍼포먼스’로 유명세봉산문화회관 등서 전시100여 점 작품 만날 기회세필로 1만 글자 써넣은 만자행 시리즈 시선 끌어 “늘 평생 나 자신과 싸워붓 한자루 들고 외길인생”



서예가 율산 리홍재는 화려한 타묵 퍼포먼스로 유명하다. 거리로 큰 붓을 들고 나가 온몸으로 붓을 휘두름으로써, 전통 서예에 거리감을 느끼는 일반 대중에게 서예 진수를 온몸으로 와 닿게 만든 장본인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작가”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장소만 바뀌었을 뿐 늘 타묵을 했다고.

퍼포먼스는 관중에게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관념이나 내용을 신체 그 자체를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예술 행위이다. 즉 서예를 통해 현장에서 관중과 소통하는 것이 서예퍼포먼스이다. 물론 과거 당나라의 장욱이나 회소도 퍼포먼스에 가까운 휘호를 했지만 현대 한국서단에서 1m가 넘는 큰 붓으로 휘호하는 생생한 모습을 현장에서 관중들과 함께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것은 율산이 처음이다.

그런 그가 서예 인생 60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회는 2008년 서울 인사동 서울미술관에서 연 개인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전시회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리홍재 작품 10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개인전 준비에 여염 없던 그를 중구 봉산동에 있는 도심명산장에서 만났다.

“서예는 음악이요, 춤이요, 스포츠다. 사람들은 서예가 붓으로 글을 쓰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글씨 안에는 음률과 리듬이 있고, 그 안에 인생철학이 포함돼 있다. 우리는 흔히 활자가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악보를 갖고 연주하면 살아 움직이는 음악이 되듯, 글씨 또한 혼을 불어 넣으면 살아 움직이는 예술이 된다.”

리홍재는 서예를 이렇게 정의했다.

그의 말처럼 그의 작품들을 글자로만 정의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글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또 그림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림과 글은 동문이다. 글자의 시작이 그림이다. 과거에는 그림으로 글자를 대신하지 않았느냐.”

만자행 작품에서는 글 한자한자가 모여 그림이 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다. 만자행은 한 장의 작품 안에 세필로 일만 글자 가까이 써 넣은 공력이 들어간 작품이다. 여기서 만(萬)은 많다는 뜻이다. 만자행 시리즈에서는 붓으로 그릴 수 있는 가장 작은 글씨로 화폭을 가득 메운다. 그는 이번 개인전에서 만자행 시리즈를 대거 선보인다.

그저 보기만 해도 그 수고가 느껴졌다. 왜 만자행을 쓰기 시작했을까 물어보니 “나를 찾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고. 그가 좋아하는 글자들을 쓰면서 마음을 닦고 많은 사람들의 복을 기원한다는 것이다. “남과 하는 싸움은 싫어한다. 늘 평생 나 자신과 싸우는 중이다.”

리홍재 선생이 만자행 작품들을 한 장씩 넘겨 보여줄 때, 곁에서 함께 지켜본 그의 지인은 “미치지 않고선 할 수 없다”고 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을까? “만자행 작품을 처음 한 것은 30여 년 전 부친의 환갑을 기념해 천수천복, 수(壽)자를 천 자, 복(福)자를 천자 써서 병풍을 만들어 드렸을 때였다. 그 당시 부친의 건강과 복을 기원하면서 한 자씩 써내려갔듯, 지금은 주변 사람들, 세상 모든 사람들의 평안을 기원하며 글을 쓴다.” 그는 아버님이 타계한 뒤 술을 줄이고 수시로 작업에 매달렸다.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한 글자씩 부모님의 극락왕생과 모든 사람이 잘 되길 소망하면서 잠자는 시간 외엔 작품제작에 몰입했다.

작품 덕(德)은 덕(德)자를 가운데에 크게 휘호한 뒤 오행(五行)에 따라 동서남북 중의 오방색으로 수많은 작은 글씨를 썼다. 중앙의 중앙 토(土, 黃)는 황제를 상징하는 색상인데 덕을 세상에 베풀면 곧 세상의 주인이 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렇게 제작된 목, 일심, 불, 일신, 충, 도덕, 수복, 화, 덕, 선, 진, 애, 공생, 중, 덕, 기, 정, 봉덕, 얼굴, 별, 도, 화, 락, 길상, 수복 등의 큰 글자를 주제로 한 30~40점의 작품은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뒤 5년 이상 정성을 쏟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진정한 평화, 행복, 건강, 화목을 기원하는 작가의 간절한 마음이 들어가 있다.

1957년생인데 왜 서예 인생 60년일까라는 의문이 들던 참에 그는 “누가 몇 년을 하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만큼 했냐가 중요하지 않나요, 지금까지 하루 30시간 글을 썼다. 그래서 저는 항상 제 서예 이력을 나이와 같이 계산한다”고 했다.

하루 30시간이라는 표현은 그가 얼마나 서예에 미쳐 살았는지를 잘 표현한다. 작품마다 그의 수고와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 없었다.

작품을 그린 후 끝인가? 그것도 아니다. 그는 “완성한 작품도 몇 번이고 다시 보면서 왜 내가 그랬을까? 이 여백의 의미는 무엇일까? 등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고민한다”고 했다.

“붓 한 자루에 모든 것을 걸고 외길을 걸어왔습니다.”

한편 서예 인생 60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개인전 명품전은 8일부터 13일까지 봉산문화회관과 도심명산장에서 함께 열린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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