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섭 소설가 “타인의 생각·행동 이해하려면 소설 읽어야죠”

발행일 2017-02-22 01: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18> 박희섭 소설가

박희섭 소설가는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관심을 잃을 때 독재와 부정이 창궐한다”며 “다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이 할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문학작품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네팔의 포카라라는 아담한 동네에 여장을 푼 지 열흘가량 지났을 때였다. 밤 공기가 서늘하게 내려앉을 즈음 그의 얼굴은 마치 취기가 오르듯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안나푸르나 설산 트레킹을 통해 영혼이 맑아져서 머릿속을 헤매던 이야기들이 쏟아지듯 흘러나왔다. 미완성 소설 속 모든 상황과 이야기들이 키보드 위 그의 손보다 더 빨리 펼쳐졌다.

등장인물들은 열이 나는 두 볼에 손을 갖다대 볼 틈도 주지 않은 채 제각기 자신들의 처지에서 말과 행동에 충실했고, 박희섭(59) 소설가 역시 소설 전개에 붙은 가속도를 맘껏 즐겼다. 자다가도 이야기 전개가 번뜩이면 머리맡에 놓아둔 필기구에 손을 뻗어 1시간 정도 메모를 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는 추위가 몰아닥치기 시작하는 12월 한국을 떠나 봄기운이 일렁이는 춘삼월에야 돌아왔다.

“소설 쓰는 것은 연애하는 것과 비슷해 온전히 매달리지 않으면 제대로 쓸 수 없다. 자료를 수집하고 구상해 인도나 네팔로 글을 쓰기 위해 떠난 지도 벌써 15년째다. 그곳에서는 물질, 세속에서 벗어나 진정한 것은 마음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집중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문학적 세례를 받다

박희섭 소설가는 27세에 등단했다. 그것도 1987∼1988년 세 군데에 당선돼 이름을 알린 그였다. 박 소설가는 20대에 등단한 비결로 일기쓰기와 독서를 꼽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10년간 한결같이 일기를 썼다고 했다. 일기장에는 누구나 일삼는 ‘나는 오늘 무엇 무엇을 했다’는 행위 위주의 나열 대신 상황 묘사에서 나아가 관찰에서 비롯된 유추가 담겼다.

박 소설가는 “이를테면 그날 버스를 탔을 때 처음 보는 이들의 옷차림이나 행동 등의 모습을 관찰하고 유추한 것을 쓰거나 끊임없이 펼쳐진 생각의 흐름을 떠올려 적는 식이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그의 일기장은 곧 문장 연습장이 됐다.

동네 어귀에 있던 대본소(도서대여점)에서 책을 빌려보는 재미에 푹 빠져 살기도 했다. 어느 작가의 소설에 마음이 빼앗기면 동명의 작가가 쓴 모든 작품을 읽어야 직성이 풀렸다.

그는 소설을 쓰기 전 시를 먼저 썼다. 등단하기 전인 20대 중반 신문사에 보낸 시가 신문에 실려 소개되기도 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글에 대한 미련과 갈증이 남아있던 차 쓴 소설들이 세 군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당선되는 문학적 세례가 괜히 이뤄진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일주일이라는 휴가를 신춘문예에 온전히 투자한 결과였지만 그 기쁨은 세상 어느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시간적 자유가 많아 여유로운 삶을 산다는 것도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소설 속 한 세계, 한 사회를 만들고 창조주, 조물주처럼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은 소설가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자 특혜라는 것을 알았다.”

당장 어려움이 닥쳐도 정신적 만족감이 있어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이후 소설가의 삶을 걷기 시작한 그는 간간이 신문사에 칼럼이나 여행기 등을 연재하기도 했다.

대구일보와의 인연도 1997년 소설을 연재하면서 시작됐다. 일제시대부터 6ㆍ25 전쟁을 다룬 시대소설 ‘동천’을 대구일보에 연재했던 것.

1990년대에는 대구 소설계에서는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반월문학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초창기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반월문학회는 1992년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확대되며 지금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연애소설을 제외하고 시대소설 동천부터 추리, 역사소설에 이르기까지 한 주제에 천착해 쓰지 않고 다방면으로 써왔다.

성장기소설 ‘축제의 언덕’은 1970∼1980년대 박 소설가가 대구에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보내온 2년여의 이야기가 담겼다.

박 소설가는 “작가적 정신과 관광객의 시선으로 낯선 장소를 다니며 풍토와 사는 모습이 다른 삶을 관찰해야 한다. 시장뒷골목 등 서민 사람들을 관찰하는 게 작가의 몫”이라며 “사회현상 등이 작가의 마음속 프리즘을 통과해 나오는 것이 바로 문학작품”이라고 말했다.

◆소설가, 이해와 공감에 주목하다

그는 소설가를 과거의 시간을 기록한 사람 혹은 미래의 시간을 기록하는 사람인 동시에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관심을 잃을 때 독재와 부정이 창궐한다. 현대인이 자폐적 타인에 대한 공감력이 떨어지고 공격적인 성향이 짙어진 것은 타인의 생각을 공감하려 하지 않고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좁아지면서다.”

그는 소설을 통해 타인과의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것이 소설가의 역할이라고 역설하며,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독서라고 강조한다.

“책 자체가 스승이 될 수 있지만 오늘날 현대인들은 독서를 거의 하지 않는 분위기다. 스마트폰 사용 등으로 단어를 파괴하고 줄여쓰는 만큼 사고의 폭도 좁아지고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감정을 담아두는 언어를 쓰는 것이 바로 문학이다. 책을 통해서라면 톨스토이부터 공자, 맹자 등 성인들도 바로 만날 수 있다. 특히 다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이 할 것인지를 알기위해선 소설을 읽어야 한다.”

그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문화적 현상인 스토리텔링에도 주목하고 있다.

“스토리텔링이란 녹슨 과거를 닦아내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과거의 것을 조금 더 소중히하고 읽는 것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후배 소설가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경험도 많아야 하지만 글쓰는 사람들 역시 타인을 이해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독서를 통해 자기만의 색채를 만들 수 있다. 고흐가 노란색을 많이 쓰듯 작가도 자기만의 세계를 펼쳐보일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단어를 많이 알기 위해 사전을 찾아보는 등 언어의 세계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작가가 노력을 기해야 할 부분이다. 일반 사람들이 12가지 색깔의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린다면 작가들은 50가지 이상의 색을 사용해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전했다.

박희섭 소설가 약력1958년 서울 출생198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서 ‘뫼비우스 혹은 음모의 띠’ 당선으로 등단1988년 스포츠 서울에서 SF 소설 ‘사라진 사람들’ 당선 1989년 대구문학상 수상2002년 장편소설 ‘관방비록’ 출간2010년 장편소설 ‘백악기의 추억’ 출간2013년 장편소설 ‘동동’ 출간2014년 장편소설 ‘축제의 언덕’ 출간 2011년∼2017년 2월 대구소설가협회 제7대 회장글ㆍ사진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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