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남이가”

발행일 2017-03-27 20:04:54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지역감정 부추긴다는 부정적인 말이지만경북도지사에겐 절실한 말”



“우리가 남이가.” ‘우리는 한 식구다, 남남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경상도 사람들 사이에선 ‘같은 일을 도모하거나 친한 사이를 과시’하기 위해 흔히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부정적인 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정치판에서는 더욱 그렇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상도 정치인들이 지역감정을 부추기기 위해 사용하던 경상도 사투리라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구미시 장천면이 고향으로 정권마다 킹메이커 역할을 해 온 허주 김윤환씨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대구를 찾아 영남권 단결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는 1995년에도 같은 발언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긴다며 언론의 뭇매를 맞았었다.

허주의 발언은 그나마 양반 축에 든다.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불과 일주일 앞둔 1992년 12월, 부산 초원복집에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등장해 정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의 당선이 확실치 않던 상황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부산지역 기관장들을 초원복집에서 만나 한 발언이 문제가 됐다. 이날 모임에서 김 전 실장은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당시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 김대중 민주당 후보 등 야당 후보들을 비방하는 내용을 유포시키자는 등의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권선거 의혹이 일었다.

경상도 사람들 사이에서 같은 일을 도모하거나 친분을 과시하기 위해 흔히 쓰이는 말이지만 이 말이 정치를 만나면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부정적인 말로 바뀐다. 하지만 부정적인 말임에도 어떤 이에게는 절실한 말이기도 하다. 현재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김관용 경북도지사에게 이 말은 절실할 것이다.

김 도지사의 한 캠프 인사는 “다른 지자체는 자신들의 고향 사람을 대선후보로 만들기 위해 똘똘 뭉치는데 대구시는 경상북도와 한 뿌리이면서도 적극적인 지지를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같은 자유한국당 후보인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김진태 의원의 대구 서문시장 방문을 보고 난 후 섭섭함에서 한 말이다.

정치인 출신 후보에 비해 전국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오랜 현장행정 경험’과 ‘대구ㆍ경북의 민심’이 김 지사의 가장 든든한 ‘우군’이다. 보수의 중심으로 자처해 온 대구의 민심이 이번 자유한국당 대선 경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도 김 도지사다. 이인제 후보가 범충청권을 아우르는 후보라면 김 도지사는 영남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보수의 중심, 대구ㆍ경북의 후보라는 자존심을 찾고 싶어 한다.

김 도지사는 최근 권영진 대구시장과 대구시의회 의원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답, 시원한 답은 구하지 못한 것 같다. 김 도지사나 그의 경선 캠프가 갖는 대구에 대한 섭섭함은 대구ㆍ경북이 걸어온 발자취에서 찾을 수 있다.

1981년 대구시가 직할시로 승격하기 전까지 대구시와 경상북도는 경제나 사회적인 측면에서 하나의 행정구역이었다. 조선시대 경상감영이 대구로 옮겨오고 1896년 13도제가 시행되면서 대구시와 경상북도는 한 권역으로 묶였다. 그리고 100여 년간 지리적, 문화적으로 공동체 의식을 갖고 성장해왔다. 물론, 대구직할시 승격 이후에도 경상북도청은 대구시에 오랫동안 머무르며 상생의 기반을 다졌다.

이 같은 밀접함 때문에 대구ㆍ경북을 묶어서 ‘대경권’이라 부른다. 우리나라 보수를 대변하는 정치 세력인 ‘TK’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나왔다. 이 같은 맥락에서인지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마다 대구ㆍ경북 통합론이 힘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자유한국당 입지가 전에 비해 좁아지긴 했지만 아마도 김 도지사는 이 같은 배경을 가진 대구가 TK를 대표하는 후보로 나선 자신을 지지해 줄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지역감정을 부추긴다는 부정적인 시각에도 지금 김 도지사의 마음엔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떠나지 않을 것 같다.신승남중부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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