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표정을 바꿀 수 있는 대통령

발행일 2017-04-24 20:19:3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작년 이맘때. 남미 콜롬비아 제2의 도시 메데진의 볼라도르공원을 산책하고 있는데 한 중년 신사가 사진을 부탁했다. 낡은 디지털카메라를 받아들고 몇 장 찍어줬다. 만족해하면서 연방 고맙다고 했다. 얼굴이 너무 밝아 보여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게 됐다. 50대 중반의 그는 우루과이에서 온 사업가였다. 우루과이라운드나 축구보다 더 유명한 페페 할아버지 즉 전직 대통령 무히카 코르다노에 대한 얘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농부였던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뜨자 꽃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던 그는 1960년대 독재 정권 아래서 도시 게릴라로 활동했으며 1970년대 군사 정권에서 14년간 수감되기도 했다. 대통령이 된 2010년 6월 우루과이 정부가 공개한 그의 재산은 1987년식 자동차 한 대뿐이었다. 재임 시엔 월급의 90%를 기부하고 대통령궁도 노숙자들을 위한 쉼터로 사용하게 했다. 취임할 때 52%였던 지지율이 퇴임 시 65%로 높아졌다. 지금은 그의 프로필에 적힌 직업(농부)대로 자신의 텃밭을 일구고 있다.

비록 그는 가진 게 없을지라도 그를 가진 우루과이 국민들은 세상 어느 부자가 부럽지 않을 것이라고 쉽게 짐작이 갔다. 중년 신사의 표정을 밝게 만들었던 이유 중엔 페페 대통령에 대한 기억도 포함돼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침을 튀어가면서 페페 할아버지를 자랑하던 그 신사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대조적으로 우리 정치에 대해 한마디도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됐던 기억도 난다.

자신의 재산을 다 헌납하고 농사를 짓는다고 좋은 대통령이란 법은 없다. 그러나 퇴임 후 자신의 시골집에 찾아온 스페인 전 국왕에게 “당신은 어렸을 때부터 왕이 되는 불행을 겪었군요”라는 말을 할 정도의 권력관을 가졌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보름도 남지 않은 대선을 앞두고 페페 할아버지와 같은 대통령을 우리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각 후보 캠프 관계자들은 시기가 시기인 만큼 앞다퉈 내려오고 있다. 자신들의 후보만이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그들과의 대화에서 국민이 빠져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그들의 논리만 놓고 보면 국민 우선인 것처럼 생각된다. ‘뮤지컬을 보려면 초대권 얻을 생각 말고 티켓을 사라’는 것이 일관된 설명이다. 쉽게 말해 지역 발전이란 뮤지컬을 보려면 무임승차 하지 말고 자신들의 후보를 주인공이 되도록 찍어야 한다는 말이다.

문제는 앞좌석을 선점한 관계자 입장에서는 당연하겠지만 배우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 뒷좌석에 앉아야 하는 국민 입장에선 그들의 말이 선뜻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TV 토론에서 나타난 행태만으로도 뮤지컬보다 질 낮은 코미디 공연이 예상되는 데다 그동안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배운 ‘슬픈’ 학습효과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보다 후보들의 공약에 성의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현재 후보들은 통합을 위해 혹은 약세 지역이어서 등등 이유는 다르지만 각자 전략지역에 막바지 공을 들이고 있다. 함정은 정작 공약 대부분이 전국구라는 것. 지역 맞춤형 공약은 찾아보기 어렵다. 있다고 해도 가슴에 와 닿지 않는 뜬구름 공약들뿐이다. 몇 달치 지역 신문만 대충 훑어보면 누구나 낼 수 있는 것들이다.

지역에 대한 학습이 부족할 뿐 아니라 성의도 없다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국민은 자신이 사는 지역의 ‘등’을 긁어주길 바라는데 후보들은 그저 모든 국민의 ‘다리’만 주무르는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갑자기 치르게 된 대선이라서 그렇다는 건 이유 같지 않은 이유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네거티브 공세에 들이는 품의 반만 들였어도 참한 약속들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지방분권에 목소리를 높이면서 지방이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대한 고민이 없다는 건 입장권만 사면 멋진 무대가 펼쳐질 것처럼 부추기는 호객꾼과 다름없다. 지역의 ‘등’을 긁어줄 수 있는 지도자, 나아가 화려한 뮤지컬 주인공으로 탄생해 국민의 표정을 환하게 바꿀 수 있는 지도자를 만들기 위한 마지막 노력을 보고 싶다.김승근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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