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가 전태현 “오늘만 노래하고 안 할 사람처럼 온힘 다해”

발행일 2018-12-11 19:34:3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9> 성악가 전태현

2015년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 바르톨로 역을 맡았다.


“브라보!”

그의 노래가 끝나자 오디션장은 미국과 대만, 홍콩 출신 심사위원들의 환호와 찬사로 가득했다. 무대가 아닌 오디션장에서 박수가 터져나오기란 쉽지 않은 일일 터.

그는 오페라 ‘사랑의 묘약’의 ‘약장수의 노래’를 불렀다. 심사위원들에게는 약장수 둘카마라가 돼 약 대신 준비해 간 코카콜라 캔을 내밀었다. 두 번째 오페라 ‘카르멘’의 ‘투우사의 노래’를 부르기 전에는 꽃을 대신할 빨간펜을 심사위원 한 명에게 빌린 후 건넸다.

유쾌한 퍼포먼스는 그의 노래에 더욱 힘을 실었다.

지난 9월 세계 유명 오페라극장과 오페라단이 오페라가수를 발굴하기 위해 한국에서 열린 나얍(NYIOPㆍNew York International Opera Audition Program)에서 전태현(38) 성악가는 실력을 발휘했고, 인정받았다.

미국 뉴욕시티오페라, 캐나다 밴쿠버오페라, 미국 스폴레토 페스티벌, 대만 가오슝 필하모닉, 서울시오페라단 등 세계 유수 극장 5곳에서 러브콜을 받은 것. 이들 극장 및 단체와의 계약은 스케줄 조정과 작품 협의를 통해 이르면 내년께 성사될 예정이다.

그는 “‘저 좀 봐주세요’라는 발악의 흔적이었던 것 같다. 수많은 오디션을 봤지만 박수를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 그동안 오디션에서 수없이 떨어졌고, 거절을 많이 당해봐서 아직 얼떨떨하다”고 했다.

성악가의 꿈은 중학교 시절 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시작됐다. 재능을 눈여겨 본 음악 선생님의 권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저는 노래를 잘하는 줄도 몰랐어요. 선생님께서는 2학년 형들이 아닌 저를 단장으로 세워주셨어요. 그전까지만 해도 공부도, 운동도 딱히 잘한다는 게 없었거든요. 무언가를 잘 한다고 인정 받아본 게 처음이었는데 그게 노래였던 거죠. 노래에 소질이 있다고 격려해주시며 예고 진학을 권하셨어요.”

그는 타고난 음색으로 고1 때 이미 베이스 역할을 맡기 시작했고, 경북예고 성악과로 진학 후 첫 시험인 예고 실기시험에서 남자 1등을 했다.

◆혹독했던 유학 시절

나얍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독일 유학생활 당시 수백 번이 넘는 도전과 좌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준비할 무렵, 갑작스런 화재로 부모님이 운영하던 가게가 한순간에 잿더미가 됐다. 가세가 기운 가운데 아내와 함께 떠난 유학길이었기에 취업에도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원해주고 싶어도 지원해줄 수 없는 부모님의 심경은 오죽했겠어요. 강직하셨던 아버지가 어느날 국제전화를 걸어와 미안하다고 하시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베를린 국립 음대에 합격해 다니면서도 극장 전속 가수가 되기 위해 수도없이 오디션을 봤지만 매번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탈락 이유를 알기위해 오디션에 들어갈 때마다 녹음을 했고, 어떤 것들이 문제였는지 파악하려 했다. 오페라 오디션을 통해 그는 노래가 아닌 연기를 곁들인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이사, 도배, 운전, 가이드까지 닥치는대로 일해야 했죠. 둘째 아이가 생겼을 때는 어깨에 내려앉은 책임감 때문에 못할 게 없었고 두려울 게 없었던 것 같아요.”

심지어 졸업 연주 이틀 전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독일 베를린에서 600㎞ 떨어진 뒤셸도르프까지 갔다가 결국 졸업연주회 당일 무대에서 코피를 쏟기도 했다.

그는 “같은 실력이면 절대 될 수가 없고, 월등히 뛰어나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자금 압박도 있었고, 다음달 집세 걱정을 안해 본 적이 없었다. 독일 뉘른베르크 국립극장 전속 솔리스트로 합격 소식을 듣고는 정말 많이 울었다.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었다”고 떠올렸다.

독일 뉘른베르크 국립극장 전속 솔리스트로 있으면서 오페라 무대에만 250여 회 올랐다. 공연을 위해 아침 내내 연습을 하고, 저녁에는 무대에 서야 하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초심 잃지 않으려 노력

한국 무대는 2015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뉘른베르크 국립극장 전속 솔리스트로 활동하던 중 그 실력을 알아본 대구오페라하우스로부터 러브콜을 받으면서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바르톨로 박사 역으로 한국에서의 데뷔 신고식을 치렀다.

이어 서울시오페라단 30주년 기념 괴테 작품 오페라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 펠레스 역할을 맡으면서 한국 오페라 무대에서의 입지를 다졌다.

그는 “메피스토 펠레스 역은 음역대를 아우를 줄 알아야 하는 것은 물론 연기도 잘해야 했다. 코믹함과 악랄한 모습 등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걸 표현해내는 역할이었다. 베이스가 맡을 수 있는 고난이도의 역할이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러브콜이 이어지기 시작, 전국 각지를 누비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오는 15일 성주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베토벤 9번 합창 교향곡 무대와 21~22일 울산현대예술관 대공연장 국립오페라단 제작 오페라 ‘라보엠’ 공연, 내년 1월 중에는 대구시립합창단 공연 ‘천지창조’에서 협연자로 나설 예정이다.

전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경북예고, 서울예고 출강하는 등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성악을 시작 후 분한 역할만 40여 개가 넘지만 그의 신조는 변함없다.

“무대에 서는 사람에게 큰 무대, 작은 무대를 떠나 중요하지 않은 무대는 없다고 생각해요. 오늘만 노래하고 안할 사람처럼 노래하는 게 제 신조에요. 사람이 변한다는 게 가장 무섭다고 하잖아요. 초심을 잃지 않기위해 노력할 거예요. 지켜봐주세요.”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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