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 / 정호승

발행일 2014-08-21 01: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서울에 푸짐하게 첫눈 내린 날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은

고요히 기도만 하고 있을 수 없어

추기경 몰래 명동성당을 빠져 나와

서울역 시계탑 아래에 눈사람 하나 세워놓고

노숙자들과 한바탕 눈싸움을 하다가

무료급식소에 들러 밥과 국을 퍼주다가

늙은 환경미화원과 같이 눈길을 쓸다가

부지런히 종각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껌 파는 할머니의 껌통을 들고 서 있다가

전동차가 들어오는 순간 선로로 뛰어내린

한 젊은 여자를 껴안아주고 있다가

인사동 길바닥에 앉아 있는 아기부처님 곁에 앉아

돌아가신 엄마 얘기를 도란도란 나누다가

엄마의 시신을 몇 개월이나 안방에 둔

중학생 소년의 두려운 눈물을 닦아 주다가

경기도 어느 모텔의 좌변기에 버려진

한 갓난아기를 건져내고 엉엉 울다가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은

부지런히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와

소주를 들이켜고 눈 위에 라면박스를 깔고 웅크린

노숙자들의 잠을 일일이 쓰다듬은 뒤

서울역 청동빛 돔 위로 올라가

내려오지 않는다.

비둘기처럼

- 시집『이 짧은 시간 동안』(창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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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은 일생의 지표를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로 삼으셨다.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삶을 사셨고, 마지막 가는 길까지 그리 사시다가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세요”란 짤막한 말을 남기고 2009년 겨울 우리 곁을 떠났다. 당신께서는 가난하고 외롭고 아픈 사람들과 늘 함께하고자 했으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였지만, 실상은 그렇게 잘하지 못했다는 참회에 가까운 술회를 자주 했다. 항상 낮은 곳을 보듬으시며 종파를 초월해서 정의와 평화를 위해 노력하신 분이었다. 그리고 인간답게 사는 길을 몸소 보이고 가르치면서 우리 사회 민주화 역사의 버팀목이 되어 주셨다.
시인은 이 시를 쓸 무렵인 10년 전, 시를 통해 밑바닥에서 고통받는 사람을 감싸 안는 추기경님의 마음을 노래하면서 추기경님께 더 많은 치유의 손길을 요청한 듯 보인다. 동시에 그 존재만으로 어려운 사람에게 힘이 되고, 슬픔과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위안이 되는 분이란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분의 ‘기도하는 손’을 자주 그리워할 뿐, 당신이 계시지 않는 적막한 세상에 살고 있다. ‘한 시대의 어른이신 당신이 계셔서 우리는 덜 부끄러운 역사를 살았’지만, 그뿐만 아니라 우리를 품어주고 가려주던 날개들을 모두 잃은 느낌이다. 김응룡 감독의 유행어처럼 ‘김수환 추기경도 없고 법정스님도 없고…’
어른이 그리운 시대에 어른이 통 뵈지 않는다. 그분들은 역사의 고비 때마다 억압받는 이들과 정의의 편에 함께 섰기에 성직자로서의 직분이 더욱 빛났으며 사회적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 우리에겐 추기경이 두 분이나 계시지만 아쉬움이 적지 않다. 왠지 명동성당의 종소리도 예전 같지 않다. “교회는 말과 행동을 통해서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개입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신발에 거리의 진흙을 묻힐 수도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교황님이 바티칸으로 떠나신 허전한 뒤끝이라 김수환 추기경님이 더욱 그립고 그 부재의 자리가 또렷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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