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빈들 / 강연호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누구도 그립지 않은 날/ 혼자 쌀을 안치고 국 덮히는 저녁이면/ 인간의 끼니가 얼마나 눈물겨운지 알게 됩니다/ 멀리 서툰 뜀박질을 연습하던 바람다발/ 귀 기울이면 어느새 봉창 틈새로 기어들어와/ 밥물 끓어 넘치듯 안타까운 생각들을 툭툭 끊어놓고/ 책상 위 쓰다만 편지를 먼저 읽고 갑니다/ 서둘러 저녁상 물려보아도 매양 채우지 못하는/ 끝인사 두어줄 남은 글귀가 영 신통치 않은 채/ 이미 입동 지난 가을 저녁의 이내 자욱이 깔려/ 엉긴 실꾸리 풀듯 등불 풀어야 합니다/ 그래요. 이런 날에는 외투 걸치고 골목길 빠져 나와/ 마을 앞자락 넓게 펼쳐진 빈들에 나가지 않으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누구도 그립지 않은 날/ 웅크린 집들의 추위처럼 흔들리는 제 가슴 속/ 아 이곳이 어딥니까, 바로 빈들 아닙니까

- 시집『비단길』(세계사, 2006)

.

두 달씩 묶인 캘린더의 마지막 남겨진 한 장, 저것마저 뜯겨지면 문인수 시인의 어느 시에서처럼 잠시 ‘공백이 뚜렷’하겠습니다. 그 빈자리엔 잽싸게 또 다른 1년이 걸릴 테지만 가끔 세월의 유예, 시간의 진공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성선 시인은 ‘입동 이후’란 시에서 ‘가을 들판이 다 비었다. 바람만 찬란히 올 것이다. 내 마음도 다 비었다. 누가 또 올 것이냐’라면서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였습니다. ‘그리운 사람아, 내 빈 마음 들 끝으로 그대 새가 되어 언제 날아올 것이냐’ 하지만 그 자신 새가 되어 먼저 날아올랐습니다.

그런데 강연호 시인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누구도 그립지 않은 날’이라고 합니다. 잠깐 문장의 스텝이 꼬이면서 형용모순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실은 지독한 그리움에 대한 역설적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말로 누구도 그립지 않다면 편지를 쓸 일도 없겠거니와, 쓰다만 편지에 ‘매양 채우지 못하는 끝인사 두어줄’ 따위가 남겨질 턱이 없겠지요. 어쩌면 시인은 시 쓰는 일에 골똘해져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마감처리 되지 않은 바느질 같은 시를 들여다보며 ‘밥물 끓어 넘치듯 안타까운 생각’들만 들썩입니다.

‘엉긴 실꾸리 풀듯’ 풀어야할 것들을 풀기 위해 ‘마을 앞자락 넓게 펼쳐진 빈들에 나가’보기도 하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누구도 그립지 않은’ 양방향 모두 차단된 그런 날엔 굳이 빈들에 나갈 필요도 없겠다 합니다. ‘웅크린 집들의 추위처럼 흔들리는 제 가슴 속’이 바로 빈들인데 애써 ‘외투를 걸치고’ ‘골목길을 빠져나와’ 빈들로 향할 이유는 없겠지요. 더구나 ‘혼자 쌀을 안치고 국 덥히는 저녁’을 맞이하는 사람에게는 다만 등을 웅크리고 몸을 오므리면서 적요의 공백에 기댈 도리 밖에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이제 해는 더 짧아지고 밤은 더 길어질 테지요. 빈집, 빈 의자, 빈들, 빈 가슴은 더 늘어날 게 뻔합니다. 그러나 비워져있기에 아름다운 것은 새로운 수확을 위해 길을 맑고 환하게 터주는 넉넉한 무욕의 마음 아니겠는지요. 저 ‘빈들’이야말로 주고 가는 이의 넉넉한 그 무욕의 들판이 아니겠습니까. 자칫 요행에 마음이 쏠릴 게 아니라 천지간 무엇 하나 분간할 수 없는 순연한 들판의 어둠에 맑고 정갈한 등불 하나 풀어 스며들게 한다면 황량했던 공백이 충만함으로 눈부실 날이 또 오지 않을까요.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