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인 먹고 살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죠”

발행일 2017-11-21 20:05:3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34> 정훈교 시인

정훈교 시인은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자기 발언조차 낼 수 없는 이 시대 예술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픈 마음에 시인보호구역을 열었다. 비정규직인 예술가들에게 비정기적이지만 기회의 장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했다.


“지역 문인의 소멸을 우려한 점도 있지만 문화권력이 서울에 집중되면서 만들어진 문화적 질서에 편승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러한 현상은 모든 문화예술 장르에서 나타났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어요. 지역 예술인이 설 곳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게 뻔히 보이는데 어떻게 모른 척해요. 당장 막을 순 없더라도 늦출 수 있겠다 싶었어요.”

정훈교 시인의 의지는 확고했다. 지역 시인들을 보호하고 문인들을 보호하자는 것.

정 시인이 2012년 김광석 거리에 ‘시인보호구역’을 처음 열었던 이유다. ‘시인보호구역’은 이후 문학뿐 아니라 미술, 음악 등 장르 구분없이 지역 예술인을 보호하자는 취지를 공고히 다지며 지금의 위치(대구 북구 호암로 40)에 공연카페ㆍ출판사ㆍ프리마켓ㆍ시집서점ㆍ갤러리로 자리 잡았다.

그는 “젊은 예술가들 가운데 비정규직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시인 등 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자기 발언조차 낼 수 없는 이 시대 예술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픈 마음이 가장 컸다. 비정규직인 예술가들에게 비정기적이지만 기회의 장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인보호구역으로 지역 예술인 보호

경영학을 전공한 정 시인은 시인보호구역을 시작하기 전까지 일반 회사에서 인정받는 임원직으로 경영관리업무를 맡았다. 12년간 잘 다니던 회사를 하루아침에 박차고 나오기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시인보호구역 대표직을 맡으면서 다른 일을 병행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시인이면서 지역 유일의 문화예술경영자가 됐다.

“시인이면 시집이 나와야 하고, 등단하면 지면 발표도 해야 하는데 지역에서는 상황이 어렵다 보니 서울로 떠나는 시인들이 많았다. 대구ㆍ경북에는 시인 등 문인들이 60대 이상은 많지만 40대 이하는 보기 드문 것도 이 때문이다. 시인을 보호하지 않으면 대구ㆍ경북의 문학은 사라져 버릴 것이고 지역 문인 역시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함께 가야할 길을 혼자 걸어가면서 쓸쓸함을 느낄 때도 있다.

정 시인은 “처음 시작할 때 지역 문단에서 시인이 시를 써야 하는데 자꾸 쓸데없는 것 한다고 욕도 많이 먹었다. 그 설움은 말로 다 못한다. 더는 대출도 어렵고 당장 빚밖에 안 남았는데 ‘부자라서 그런다’라는 말은 비수가 돼 가슴에 꽂혔다”고 말했다.

돈의 유혹이 있거나 삶이 부대낄 때면 시인보호구역 설립 취지를 다시 펼쳐보곤 한다.

시인보호구역 설립의 첫 번째 취지는 신진 예술가를 발굴하고, 적극적으로 후원하기 위해서였다. 예술가를 적극 채용함으로써, 꿈을 지킬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했다. 지역 문학의 발전적 미래를 위해, 작가 양성 및 문학의 저변 확대는 두말할 나위 없었다.

지역 문화가 중앙에 예속되지 않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 협업 등을 통한 새로운 시도로, 지역의 문화적 보수성을 탈피하기 위한 뜻도 취지에 녹아들었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시민과 예술인, 그리고 독자(관객)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좀 더 따뜻한 세상을 꿈꾸고자 시인보호구역을 만들었다.

‘시인보호구역 지킴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인문예술공동체를 지향하는 시인보호구역과 시인 등 문화예술인들을 보호하는 데 후원을 받기도 한다.

정 시인은 경영학 전공자답게 시대가 바뀌었으면 기존 질서를 존중하되 뒤에 오는 질서도 일정 부분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가 문인들에게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문학을 하면서 먹고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 시로 된 상품, 문학 프로그램 등이 나와야 시인들도 쓰고 싶은 글 쓰면서 살 수 있다. ‘잘못된 것은 바꿔 나가야 한다’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하다 보니 많이 느린 편이긴 하지만 계속 걷다 보면 5년 뒤에, 10년 뒤에 처음 한 걸음보다 훨씬 많이 나아가 있을 것을 믿는다.”

◆후진 양성 없이는 지역 문단 미래 없어

정훈교 시인은 지역 문화예술 발전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대경문화예술포럼 출범에도 앞장섰다. 지난해 10월부터 문화예술 단체장, 대학 교수, 연구원, 기업 대표, 문화기획자, 예술인, 언론인, 정치인 등 각계각층의 전문가를 직접 만나 취지를 설명하고 제안해 지난 5월 발족했다.

포럼에서는 문화예술 전반을 주제로 연구ㆍ토론한 결과를 바탕으로 지역 내 문화예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문화예술 정책이 관광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제안할 계획이다.

정 시인은 대경문화예술포럼에서 상임 대표직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그는 “문화는 돈이 목적이 아니라 백년대계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포럼 발족을 계기로 역사에서도 살아남는 지속 가능한 문화예술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또 대구ㆍ경북 지역 내 문단이 나아가려면 문학인의 길을 꿈꾸는 청년들을 보살피는 등 후진 양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 시인은 “문학 청년들이 있어야 지역에도 문학이 있는데 문학 맥이 끊기게 생겼다. 문학인의 길을 걷고 있는 선배들이 후진들을 위해 힘을 써줘야 할 때다. 문학청년들이 나아갈 길, 그들이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도록 관심을 둬야 한다”고 했다.

단 한 순간도 시를 잊어본 적이 없다는 그는 휴머니즘 가득한 시를 계속 쓰고 싶다고 했다.

“휴머니즘 가득한 시를 통해 모두가 따듯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그리고 가장 바라는 것은 많은 예술인이 정치계에 입문하는 것이다. 예술인들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더 많은 사람이 인간적이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바꾸는 데 동참했으면 좋겠다.” 글ㆍ사진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정훈교 시인 약력>

-경북 영주 출생

-2010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

-2012년 시인보호구역 설립

-2013년 경북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석사)

-2014년 시집 ‘또 하나의 입술’ 펴냄

-2016년 월간 ‘시인보호구역’ 발행

-2016년 시 에세이집 ‘당신의 감성일기’ 펴냄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작가와의 만남’ 대구ㆍ경북 대표기관으로 선정

-2017년 독립문예지 계간 ‘더 해랑’ 발행

-2017년 ‘대한민국 문학주간 2017’ 대구ㆍ경북 대표기관으로 선정

-2017년 대구시 북구청 ‘버스킹 축제’ 기획 및 주관

-2017년 시인보호구역(출판사, 시집서점, 갤러리, 카페 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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