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된 자신 흔들어 생동감 있는 글 쓰려 노력”

발행일 2018-05-22 19:50:1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46> 김은주 수필가

김은주 수필가는 “수필은 꼭 ‘나’라는 화자가 중심에 있어야 하고 경험한 바, 체험한 바, 본 바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르다. 힘이 닿는 데까지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하면서 꾸준히 글을 쓸 계획이다”고 말했다.


엄마로서 1남1녀의 자녀를 충실히 키우고, 맏며느리로서 매년 여덟차례의 제사와 각종 기념일을 챙기는 등 늘 몸과 마음, 생각이 가정 어딘가에 묶여 있었다고 했다.

그의 삶에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한 것은 2000년 글을 쓰면서부터다.

김은주(56) 수필가는 “수필을 쓰면서부터 내 안에서 끓고 있던 용암같은 것들이 분출하듯 일어났다. 삶 가운데 굉장히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고 말했다.

2009년부터 추석과 설 등 명절 전후로 두달가량 강정과 한과를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틈틈이 글을 쓰면서 3년 전부터는 바느질과 뜨개질을 함께 하고 있다.

“세상에 평범하고 뻔한 얘기는 너무 많잖아요. SNS로 소통하는 세상에 살다보니 누구나 하는 말을 하면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것 같았죠. 스스로 낯선 얘기는 늘 했던 것 같아요. 끊임없이 무언가를 썼고, 남들과 다르게, 낯설게 쓰고자 했죠. 그래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것 같고 지금처럼 일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수필’로 나를 깨우다

“글을 쓰기 전에는 읽는 것 자체를 즐겼어요. 장르 구분없이 중독된 것처럼 엄청나게 읽었죠.”

김은주 수필가는 특히 소설읽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독자였다.

그래서일까. 독자들은 그의 수필이 단편소설 같다고 말하곤 한다.

“소설에 천착했던 시간들이 무의식적으로 녹아 나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만의 이야기를 한 것뿐인데, 사람들이 제 수필에 소설의 향이 물씬 풍긴다고들 하죠. 이런걸 보면 마음이나 의식 안에 있는 어떤 생각이나 느낌 같은 것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수필을 쓰기 전 소설을 먼저 시작했다는 그는 소설 동호회도 들락거리고 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고 했다.

2000년 수필을 쓰면서부터는 다른 장르는 일절 넘보지 않았다.

시작은 가벼운 마음이었지만 점점 깊이 있게 써내려 갔다. 무엇인가에 한 번 빠지면 본격적으로 해내고야 마는 성격과 예사롭게 보지 않는 눈, 늘 샘솟는 호기심이 한 몫 했다.

그에 따른 결실로 2005∼2007년 신춘문예 당선 등 연거푸 상을 받기 시작했다.

수필을 쓰기로 한 것은 문학 비전공자가 그나마 쉽게 이해하고 쓸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수필이 결코 가벼운 장르가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김 수필가는 “만들어 낼 수 있는 공간의 영역이 넓어 사유의 확장이 가능한 다른 장르와는 달리 수필은 꼭 ‘나’라는 화자가 중심에 있어야 하고, 경험과 체험, 본 바를 토대로 써나가야 하다보니 한정적일 수 밖에 없다. 소재의 고갈이 빨리 오는 장르가 수필이다”고 했다.

김 수필가는 주로 새벽녘 글을 쓰는 편이다. 의식을 깨우기 위한 도구로 매주 월요일 새벽 5시 경전을 읽기도 하고 108배를 하기도 한다.

“글을 쓰는 작업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에요. 뇌가 구태의연하게 고정된 상태로 늙어가는데 흔들어 깨워주지 않으면 정말 말도 안되게 뻔한 얘기만 쓰게 될 거예요. 흔들어 깨워줘야 새로운 이야기들이 나오지 가라앉아있는 상태로는 변화무쌍한 그림을 그려낼 수 없는 게 글쓰기에요. 분명한 것밖에 쓰지 못하죠.”

◆다가올 환갑 반갑고 설레기만 해

수필을 쓰기 시작하면서 분출된 욕구는 음식만들기와 함께 뜨개질과 바느질로 이어졌다.

김 수필가는 “무엇인가 하고 싶은 내 안의 욕구가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다가 새로운 방향으로 끊임없이 치솟다보니 그 틈 사이에서 글이 계속해서 나온다. 맏며느리의 삶을 다룬 수필과는 전혀 다른 색깔의 음식 관련 수필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 봄이 되면 꽃이 피고 겨울이면 눈이 오는 등 계절이 똑같이 반복되는데 그 얘기를 20년 동안 주절거리고 있다면 독자들이 얼마나 재미없고 지루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현재 바느질이 가장 즐겁다는 그는 바느질에 관련된 수필 원고가 쌓여 한 권 분량이 되면 수필집 한 권을 펴낼 계획이다.

그는 따뜻하게 좋아하는 마음이 어느 분야든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고 말한다. 일부러 수필 소재를 찾기 위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자연스럽게 즐기다 보니 빠져들어 갔고, 수필의 소재가 됐다는 것.

“글을 놓지 않고 20년 넘게 꾸준히 쓴 것을 보면 삶이 한 곳에 한정적으로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삶과 환경, 일이 끊임없이 바뀌어 갔죠. 한 가지 일만 끊임없이 했다면, 10년이나 15년 쓰다 중단되지 않았을까요? 돌아보니, 어느 소실점에서 멈추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좋아하는 무언가에 마음이 꽂히면 대충하는 법이 없는 그는 바느질 다음에 또 무엇에 가슴 설레고 마음을 다하게 될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는 “최근 들어서는 다가올 환갑을 어떻게 맞이하고, 얼마나 설레게 맞이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부쩍 많아졌다. 책 한 권을 다시 꾸리든지 좋아하는 음식과 바느질 공간을 가져볼까 싶다. 환갑잔치까지는 아니더라도 특별하게 맞이하고 싶은 설렘이 있다”며 웃었다.

김 수필가는 기운이 있는 동안까지는 하고 싶은 일을 계속 찾으면서,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글도 ‘이제 그만 써야겠다’ 느껴지는 날이 오겠죠. 지금은 글에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 계속 쓰고 있지만, 사랑하는 마음도 옅어지고 글의 색깔이나 깊이도 점점 스스로 판단했을 때 아니다 싶은 순간이 오면 그만 써야겠죠.”

글ㆍ사진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김은주 수필가 약력

1963년 경북 경산 출생

2005년 평사리 토지문학 수필부문 대상

2007년 부산일보, 전북일보 신춘문예당선

2008년 불교문학상 수상

수필집 ‘미뢰’, ‘분첩’, ‘다만, 오직, 그냥’

현 김은주 수제강정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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