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려상 - 쉼표 하나 찍고 / 유진선

발행일 2018-11-25 19:27: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2018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오래된 사찰이나 교회는 사람을 불러들이는 힘이 있다. 수도자들의 맑은 영혼이 가득한 곳이라 그런 것일까. 그곳에 들어설 때면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특히 수도원은 세상과는 동떨어진 다른 사람들이 은거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왜관의 성 베네딕도 수도원을 찾은 건 이른 봄날이었다. 귀촌 후에 같은 일상이 단조로워지면 사찰이나 성당을 보러 다녔다. 깊은 산중이나 호젓한 길 끝의 여느 곳과는 달리 수도원은 시내 가운데 있었다.

가톨릭 수도원은 그들만의 색깔이 있다. 무채색의 시간이 멈추어 있는 듯 고요한 가운데 나름의 기품을 안고 있다. 수도자들이 생활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사찰과 다르지 않지만, 명칭부터 세상과 떨어져 오롯이 자신을 찾는 일에 전념하는 곳이라는 느낌이다. 종교가 사람들의 삶과 함께해야 함은 공통된 과제인 것일까. 살다가 쉼표 하나쯤 찍고 싶을 때 쉬어 가라는 안내가 반갑게 느껴진다.

이곳은 이탈리아에서 시작한 공동체로 백여 년 전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수도회의 수사나 신부는 공동생활을 하고 독신으로 지내며 사유재산을 가질 수 없다. 삭발하고 정진하는 스님의 삶도 같을 것이다. 세상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선택한 수도생활은 어떤 것일까. 호기심이 인다.

연륜이 쌓인 고찰이나 성당은 문화재로 지정되곤 한다. 그러나 성당은 이국적인 외관 때문인지 신도가 아닌 사람이 선뜻 다가가기 쉽지 않다. 마당 한가운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구 성당으로 갔다. 문고리를 당겨본다. 잠겨 있는 문틈으로 세월을 품고 있는 마룻바닥과 가지런히 놓인 의자들이 보인다. 한낮이 지나 기울어진 햇살이 정교한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아지랑이로 흔들리는 그것이 음표로 바뀌어 우아한 칸타타의 음률이 흘러나올 듯하다. 문을 열면 상기된 얼굴로 바라보던 기억 속의 소년을 만날 것만 같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절의 단청은 다른 듯 닮았다. 단청이 목재의 단조로움을 보완하고 사찰의 아름다움과 위엄을 알리려 했다면, 여러 종류의 색유리를 짜 맞추어 그림이나 무늬를 만든 스테인드글라스는 종교적 의미가 더해진다. 성서를 쉽게 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것은 성모를 상징하는 장미창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화려하게 보이는 조각 하나하나에 각기 다른 뜻을 담고 있다고 하니 무심하게 바라보곤 했던 창문의 의미가 새롭다.

경내를 천천히 둘러본다. 곳곳에 수도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일터가 보인다. ‘기도하고 일하라’는 수도원의 지침이다. 이곳은 전국의 수도원에서 필요한 성물을 제작 공급하여 자족하는 공동체로 살아간다. 유리공예를 하는 곳도 있고 성작을 만드는 금속공예와 *이콘을 제작하는 작업실도 눈에 띈다. 몇 년 전 화재로 곳곳이 무너져 새로 지은 본당 앞에는 베네딕도 성인이 동상으로 재현되어 나그네를 맞이한다. 이 층의 대성당에는 이곳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신부들의 연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백 년이 넘는 시간은 얼마나 긴 혼돈의 시간이던가. 파란 눈의 신부도, 젊음을 바친 수사의 모습도 보인다. 세상의 유혹을 노동과 기도로 지켰던 그들. 사진 속 그때도 교회의 종은 울렸고 기도는 노래가 되었으리라. 실내에는 수도원과 함께 나이 먹어가는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 주일에는 그윽하고 웅장한 성가가 천상의 소리처럼 울려 퍼지겠지.

본당을 나오면 침묵으로 이어진 복도 끝에 전시관이 보인다. 겸재의 산수화 스물한 점이 이곳의 역사가 담긴 유물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수도원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산수화는 성물이나 라틴어 문서와 함께 묘한 일치를 이룬다.

수도원을 돌아보던 중에 산책하던 수사 두 분과 마주쳤다.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 반갑게 내미는 투박한 손에서 노동의 흔적이 전해진다. 좋은 시간 되라는 인사와 함께 들고 있던 묵주를 선물로 쥐여 주고는 총총히 사라진다. 긴 *수단자락을 펄럭이며 돌아서 가는 뒷모습에 흐릿하게 감춰져 있던 모습 하나가 겹쳐진다.

여러 개의 댐이 감싸 안은 춘천은 어디를 가든 그림자 같은 안개가 따라왔다. 가끔 가방을 받아주던 남학생이 일부러 나를 기다렸다는 사실은 한참 후에 알았다. 나 역시 아침 안개로 가려진 길 저 편에 모자를 눌러쓴 소년의 모습이 보이면 속절없이 가슴이 뛰었다. 소나기에 우산을 건네기도 하고 소월의 시집을 수줍게 내밀기도 했다. 대학 진학 후 얼마 되지 않아 학교를 중퇴하고 수도원으로 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나의 첫사랑은 그렇게 마침표를 찍었고 잊혀졌다. 지금은 만난다 해도 기억나지 않겠지만, 해질녘 어느 날 골목 어귀에서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리던 소년의 맑은 눈빛만큼은 어제처럼 떠오른다.

그도 아까 만난 수사의 모습으로 살고 있으리라. 무엇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이런 곳으로 오게 했을까. 젊음의 뜨거운 가슴을 기도로 채우게 한 힘은 무엇일까. 가난과 정결, 그리고 순종의 삶을 스스로 택한 심연의 마음을 어찌 짐작할 수 있을 것인가. 깊은 묵상의 가치가 가슴을 울린다.

수도원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쉽게 찾아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사찰에 비해 특별한 곳이라는 생각 때문에 벽이 높았다. 수도원을 돌아보면서 그곳이 평화로운 휴식의 장소임을 알게 된 것은 귀한 발견이었다. 지친 여행길에 동네 어귀에 있는 강건한 느티나무 그늘을 만나 쉬어 가듯 마음 밑바닥에서 청량한 바람이 일렁인다. 느린 걸음에 여유로움으로 충만했던 시간이었다. 소란스럽지 않게 오롯이 나를 만날 수 있어서 더 소중했다.

봄이 찾아드는 수도원 뜨락에 때 늦은 봄눈이 꽃잎처럼 날린다. 막 푸른 잎을 내미는 고운 잔디밭에 살며시 내려앉은 눈꽃은 잠시 머물다가 금세 물방울로 몸을 바꾸어 버렸다. 그 시절, 내 곁을 스친 소년이 그랬던 것처럼.

*이콘: 성모님이나 그리스도, 또는 성인들을 그린 그림이나 조각을 일컫는다.

*수단: 가톨릭 사제들이 입는 길이가 발목까지 오는 정복. 겨울에는 검정, 여름엔 흰색을 입는다.

“마음에 휴식 찾아준 수도원의 고요함에 감사”수상소감


그날은 꽃잎 같은 봄눈이 내렸드랬습니다. 오늘은 꽃잎 같은 낙엽이 내립니다. 

수도원 뜰을 걸으면서 한없는 정적 속에 내 마음도 쉬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날의 느낌을 글로 옮겨 보려 했지만 다는 옮길 수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제 능력의 한계이기도 하고 채 여물지 않은 마음의 끝이기도 하겠지요.

그런 글을 여러 편의 글 중에서 올려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더 잘 해 보라는 격려로 알겠습니다. 든든한 지원자 남편이랑 두 아이와 기쁨과 고마움을 나누겠습니다.

이번 겨울엔 다시 수도원을 찾아 순백의 고요함을 느끼며 감사의 기도라도 올려야겠습니다.

수고하신 심사위원 여러분과 대구일보 담당 선생님, 고맙습니다!!

△서울 출생

△대구 수필문예대학 22기 수료

△2014, 2016년 등대 문학상 입상

△2014년 주부수필 입상

△2018년 수필미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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