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층 할머니들의 동행

발행일 2016-02-12 01: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황혼의 덫에 걸린 할머니들동문서답 대화 길어질지라도그녀들만의 동행 오래 지속되길”



이층에는 할머니들이 많이 계신다. 하지만 눈여겨보는 할머니는 ‘죽자사자’ 할머니와 ‘아차차’ 할머니, ‘귀여운 할머니’ 등 세분이다. 이름이 따로 있지만 할머니들을 대할 때마다 부르는 그녀들의 애칭이다.

여든이 갓 넘은 ‘죽자사자’ 할머니는 약간의 치매가 있는 가냘픈 여인이다. 건강할 때는 나이나 주소를 다소곳이 말하지만 정신이 온전치 못할 땐 욕설도 서슴지 않는다. 무릎 치료를 받으면서 자신의 곧은 다리를 넌지시 뽐내기도 하고 가끔은 ‘언니’라고 부르라며 농담도 던진다. 젊은 내가 봐도 매끈한 다리다. 윗눈시울이 축 쳐져 웃으면 눈이 숨어버린다. 눈 좀 뜨라는 말에 호탕하게 웃는다. 덕분에 즐겁다. 이름에서 따온 별칭으로 세분 중에 나이는 가장 적지만 까랑까랑한 목소리만은 대장이다.

‘아차차’ 할머니는 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여든 중반 접어든 할머니는 노래를 즐겨 부른다. ‘죽자사자’ 할머니보다 치매가 조금 더 심해 대화 자체가 유머다. 이름을 물으면 나이를 말하고 볼 때마다 나를 어디서 많이 본 사람 같다고 해서 웃게 만든다. 생각은 시집와서 아이를 낳고 고생하던 그 시절에 늘 머물러 있다. 자식의 이름이나 가족들의 숫자는 바뀌어도 유일하게 ‘얼씨구절씨구 아차차’ 노래가사만은 변하지 않는다. ‘얼씨구절씨구 차차차’라고 알려 드려도 무조건 ‘아차차’라고 우긴다. 거기다 손뼉까지 치면서 선창을 하니 이젠 ‘아차차’라고 따라 부른다.

두 분과는 달리 ‘귀여운’ 할머니를 보면 시간이 멈춘 듯하다. 아흔아홉의 나이로 머리만 백발이지 젊은이 못지않게 정정하시다. 허리도 꼿꼿한 편이고 안경 없이 바늘귀에 실을 꿰어 양말을 기워 신는다.

가는귀가 조금 먹은 게 흠이지만 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생활이 가능하다. 잘 못 들어 가끔은 엉뚱한 대답을 하지만 다행히 치매는 없다. 아들이 외국에 있어 요양원에 머문다는 소문이 마음을 짠하게 한다. 두 할머니가 닥대면 할머니는 여지없이 중재에 나선다.

오늘의 다툼은 먹는 것 때문이었다. “나는 한 개 주면서 옆에 누워있는 말 못하는 할망구는 왜 두 개나 주노” 하면서 ‘죽자사자’ 할머니가 먼저 시작한다.

그 말에 “당신은 어제 작은딸이 사온 떠먹는 거 혼자 다 먹었잖아” ‘아차차’ 할머니가 되받아친다. 서로의 감정적인 다툼을 한참이나 보고 있던 ‘귀여운’ 할머니가 조용히 한마디 건넨다.

“아따, 디게 시끄럽네” 짧은 그 말에 할머니들은 입을 꾹 다물어 버린다. 그러면서 두 분을 번갈아 보며 “한 살 더 먹는 게 반갑지 않데이. 우리는 살아있는 송장인기라” 하시며 앞장서서 나가신다.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조용히 뒤를 따른다.

세월이 할머니들의 젊음을 많이도 거두어갔다. 아직까지는 반듯한 대답을 더 많이 하는 이층 할머니들. 할머니들의 뇌를 위축시킨 것도 퇴행성 뇌질환 알츠하이머병이다.

이 병은 언어기능 운동기능을 퇴화시키는 위협적인 질병인가 하면 서서히 뇌세포를 파괴시켜 결국은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하고 집을 찾지도 못하게 하는 기억장애를 초래한다. 정상적인 사람이 점차 어리석게 변해간다는 치매. 황혼의 덫이라 불리는 치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희망은 정말 없는 것일까.

얼마 전,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던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으려는 안타까운 사연을 뉴스에서 접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할 만큼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고통에 빠뜨리는 치매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기도 하다. 치매 인구 60만명 시대. 고령화가 가속화 되면서 15분에 한명 꼴로 치매환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통계에 중년으로 접어드는 나도 은근히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말 못하는 가축도 정을 주면 친구가 되고 식구가 되는 세상이다. 부딪히는 현실 앞에서 가족이 더 사랑하라는 메시지가 들어 있는 치매. 생물체의 조직이나 세포의 기능 감퇴로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치매환자에게 있어 가족은 인생의 바다에서 건진 가장 큰 월척이 아닌가 싶다.

온종일 세상을 비춘 태양이 서산에 걸려 있다. 곧 넘어갈 태세다. 이층 할머니들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 어렴풋한 기억으로 동문서답의 대화가 길어질지라도 그녀들만의 동행이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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