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이 남긴 것

“‘구질서의 종언·민주주의의 진화’자랑스러운 한국인임을 자각하고성장통에서 벗어나는 계기 삼아야”

2017.03.20

홍석봉
편집위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장으로 마무리 국면을 맞았다.
국회청문회, 특검, 촛불과 태극기 집회, 대통령 파면 등 숨 가쁘게 달려온 탄핵열차가 마침내 종착역에 다다른 것이다.
국민도 그동안 심한 가슴앓이를 했다.

광장의 촛불은 유사 이래 첫 대통령 파면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가 지적됐고 고장 난 3권분립과 정경유착 등 적폐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냈다는 평가도 나왔다.

최순실이 우리 사회에 남긴 생채기는 컸다.
그러나 잃은 것 못잖게 얻은 것도 적잖다.

‘이게 나라가’라고 할 정도로 최순실에 놀아난 대통령과 국정 시스템에 대해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한국은 외국 언론에 조롱거리가 됐다.
국정은 표류했다.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구속과 잇단 재벌 수사는 대기업의 근간을 흔들었다.
그로 인한 손실도 컸다.

정(正)이 있으면 반(反)도 있고 합(合)도 있는 법. 얻은 것도 적지 않다.
우리가 얻은 것들은 자산으로 삼아 두고두고 되새겨야 한다.
다시는 이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한 그 가신들과 부역했던 이들이 적지 않았던 대구ㆍ경북은 이참에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얻은 것의 첫째는 현행 대통령제의 한계를 국민 모두가 절실하게 깨달았다는 점이다.
70년 헌정사에서 11명의 역대 대통령 중 8명이 비운을 겪었다.
우리 대통령들은 영광보다는 치욕의 상처만 안고 물러났다.
우리 대통령의 잔혹사는 세계 유례가 없을 정도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다.
이젠 몸서리날 정도로 확인했으니 법과 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
권력 분산과 감시 및 견제 기능을 확실하게 만들어야 한다.

둘째는 정경유착의 고리 차단이다.
재벌의 한계를 다시금 확인했다.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구속으로 정경유착의 경종을 울렸고 고리를 끊는 계기는 마련됐다.
재벌의 눈부신 성과는 그동안 국민과 국가의 희생을 딛고 이룩한 것임을 직시하고 특권과 반칙의 대명사로 불린 오명을 벗어야 한다.
물론 위정자도 더 이상 재벌의 돈을 제 주머니 속의 돈으로만 인식해서는 안 된다.

셋째는 부패와 척결의 대상이었던 새누리당이 해체됐다는 점이다.
보수의 각성으로 힘 받은 여당 측과 박사모를 중심으로 새누리당을 재건하려는 시도가 있긴 하지만 새누리당의 해체는 국민 명령이고 운명이다.
새누리당은 집권 여당으로서 오만과 독선이 망쳤다.
곰팡내 나는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이라는 간판을 바꿔달았지만 지지율 10%도 못 미친다.
집권 여당의 적자(嫡子)치고는 최악이다.
정치에 종언을 고했다고 봐야 한다.

넷째는 보수의 반격이다.
광화문의 촛불은 잠자던 보수를 깨웠다.
기득권층으로 매도당했고 쉰내 나는 뒷방 늙은이 취급당하던 노년층이 일어섰다.
더 이상 밀리면 죽는다는 절박감의 산물이다.
산업화와 선진국으로 이끈 세대들이 박근혜의 실정과 잘못은 인정하지만 국가 안위가 위협받는 상황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리로 나선 것이다.
그러나 탄핵이 좌빨 언론들의 선동에 의한 것이고 마녀사냥이었다는 극단적인 주장은 진정성을 의심받기에 이르렀다.
확인된 보수의 힘은 앞으로 이슈와 쟁점에 따라 목소리를 높일 것이고 진보를 압박하는 지렛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는 청년층의 각성이다.
삼포세대의 청년들이 공정의 가치를 인식하게 됐다.
사회를 보는 눈을 뜬 것이다.
‘정유라’는 공정성을 일깨웠고 절망하고 있던 젊은층에게 공정의 가치를 인식케 하는 계기가 됐다.

마지막으로 국격을 높였고 민주주의를 새로 각인시켰다는 점이다.
헌재 선고 당일 불미스러운 사고가 옥의 티 격이지만 광장의 질서정연한 집회와 평화적인 시위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국민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정치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선진적인 시민 의식을 세계에 알린 것이다.

‘구질서의 종언과 한국 민주주의의 진화’라는 외신 평가가 세계인들이 한국을 보는 시각이다.
이제 자랑스러운 한국인임을 자각함과 동시에 성장통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홍석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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