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의 따따부따]시범케이스 걸린 육군 대장

“공관병 짐승 취급 당했다는 뉴스믿기지 않는 장군과 사병의 관계찌질하고 유치한 행태 까발려져”

2017.08.10

이경우
언론인


‘집합!’. 제대 후에도 한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집합’ 소리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다.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은 다 안다.
그놈의 ‘집합’이 얼마나 징그러운지를. 글쎄, 오락에도 군기가 있다는 둥 군인은 쉴 틈을 주면 사고 칠 생각만 한다는 둥 그러면서 잠시도 편안히 내버려두지 않는데 그 비법이 바로 ‘집합’이다.
오죽하면 ‘집합’과 ‘구보’만 없으면 군 생활도 할 만하다는 얘기가 나왔을까.
병사 중에서도 ‘집합’에서 열외 되는 특수층이 있으니 바로 ‘공관병’이다.
집합뿐 아니라 야간 경계근무나 힘든 유격 훈련 같은 것도 죄다 열외다.
병영생활,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내무생활 자체에서 열외 되니 말만 군인이지 병사 누군들 그들을 부러워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런 공관병이 되기 위해서는 스펙이 좋아야 한다.
그리고 빽도 좋아야 한다.
아무나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게 고작 대대장 공관병이었는데, 지금은 얼마나 변했는지 몰라도 전방 부대에서는 중대장도 당번병을 두고 그는 훈련이나 집합에서 열외라는 특별대우를 받는 것이 군의 실상이었다.
그러고 보니 군대라는 특수 사회에서 부대 조직에 따라 수많은 공관이 있고 공관병이 필요할 것이다.

요즘 그 공관병이 연일 뉴스의 중심이 되고 있다.
육군 대장이면서 육군 서열 3위인 제2작전군사령관의 공관병이 사령관과 그 부인의 비인격적이고 몰가치한 갑질에 짐승 취급을 받고 있다는 기사가 종편TV를 도배하고 있다.
패널들이 침을 튀기며 나열해대는 갑질이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그렇게 아까운 전파를 낭비할 만한 뉴스거리인지 모르겠다.
4성장군과 사병간의 관계라고는 믿기지 않는 찌질하고 유치한 행태가 낱낱이 까발려지고 있다.
내가 너무 인간성과 인격화에 무개념해서 그럴까 걱정스러울 정도다.

대장은 군대에서는 물론 사회에 나와서도 하늘의 별이다.
그 험한 난관과 어려운 과정을 돌파하고 올라선 자리일 것이다.
그런데 박 대장은 몰랐던 것 같다.
아니면 깜박 잊었을까. 군대에서 신병들도 다 아는 ‘시범 케이스에 걸리지 마라’는 금언을 말이다.
알았다면 정권이 바뀌었을 때 진작 전역지원서를 냈어야 했다.

대통령이 현직에서 쫓겨 내려오고 촛불로 일궈낸 새 정권과 그 추종세력들은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걸고 골목골목까지 헤집고 있다.
프랜차이즈 기업 오너들의 줄소환과 구속으로 이어지는 갑질 청산이 그런 일련의 사회 흐름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하긴 문재인 대통령도 갑질이 군대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전 부처 차원에서 실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우리 사회의 갑들이 하나같이 “가족 같이 대했다”는 을인 비서들, 운전사들의 “그동안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다”는 폭로가 잇달고 있다.
한때는 스스로 휴일을 반납하고 (물론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겠지만) 상사의 김장을 도와주거나 이삿짐을 날라줬던 을들의 반란이다.
목줄을 쥔 교수로부터 학점과 학위를 받기위해 사노처럼 부려지던 일부 대학원생들의 이야기도 터져 나올 것이다.
의과대학이나 공과대학, 예술대학에서는 벌써 몇 차례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하청업체에 단가와 수주라는 목줄을 쥐고 갑질을 하던 제조업 건설업계에서도 갑질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박찬주 육군대장이 최근의 군 인사에서 전역 대신 정책연수 명령을 받고 피의자 신분으로 군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그의 갑질이 어디까지 사실이고 또 그의 변명을 군과 사회가 얼마나 진정성 있게 받아들일지는 앞으로의 조사가 밝혀 줄 것이다.
그를 전역 시키지 않은 것은 군에서 보호해 주겠다는 선의도 있겠지만 그로서는 불명예스럽고 치욕이다.
숲 속에 있어야 할 호랑이가 저자거리에 나와서 돌팔매에 쫓기고 있는 꼴에 다름아니지 않은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아대는 북 김정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드 배치보다 더 급한 것이 군대 내의 비리 청산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판이고 보면 군 인권센터로서는 시범 케이스 치고는 괜찮은 전과다.
이경우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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